[취재파일] 서해 5도 어민들의 절규.."올해 조업도 틀렸다"

김학휘 기자 2014. 11. 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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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선 수백 척 우리 어장까지 침범..통발까지 싹쓸이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육지에 나왔다"

지난 11일 오후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백령도와 대청도를 거쳐 출발한 여객선이 도착했습니다. 이 배를 타고 50명이 넘는 대청도 어민들이 육지로 들어왔습니다. 대청도 어민이 1백 명이 안 된다고 하니 올 수 있는 어민은 다 온 겁니다. 서해 5도에서 11월은 막바지 꽃게 철이라 조업에 한창 바빠야 할 시기인데, 어민들이 육지로 들어왔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이 이상한 일은 중국어선 때문입니다.

중국어선이 우리 영해로 들어와 그냥 불법 조업만 한다면 우리 어민들도 피해를 보면서도 조업은 계속했을 테지만, 중국 어선들이 우리 어민이 설치해 놓은 통발 같은 어구까지 싹쓸이했습니다. 조업을 하고 싶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 정말 기가 막히는 상황입니다. 우리 바다, 그것도 섬에서 가까우면 10분 거리에 있는 어장에서 어구를 도둑맞은 겁니다.

어민들은 너무나 화가 나고 답답해, 누구한테라도 하소연하기 위해 육지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그날 저녁 바로 인천 옹진군청을 찾았습니다. 군수가 직접 어민들을 맞았습니다. 군수 역시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치며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보자고 어민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하지만, 어민들 처지에선 답답한 마음이 쉽게 풀리진 않습니다.

"올해 조업은 포기했다"

중국 어선들의 횡포는 어제오늘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닙니다. 수년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여러 번 보도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서해 5도 어민들이 왜 그렇게 답답해하는지 직접 확인하려고 백령도를 찾아가 봤습니다. 올해 어민들의 절규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습니다.백령도 두무진에서 만난 어민은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내가 인터뷰를 몇 번이나 했는데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 아무리 떠 들어봐도 소용없다." 잔뜩 화가 나 있었습니다.

두무진 포구나 장촌 포구를 둘러보면서 만난 어민들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어민들의 손길은 분주해 보였는데 조업 때문에 바쁜 게 아니었습니다. 다들 부러진 부표며 엉킨 통발 줄, 망가진 통발을 고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막바지 꽃게 철인데 어민들이 정작 조업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중국 어선들이 그냥 영해를 침범하는 정도였다면, 올해는 달랐습니다. 소청도 아래쪽과 백령도 왼쪽에 우리 어장이 있습니다. 지난 3일과 7일, 중국 쌍끌이 어선 5백 척 정도가 우리 어장을 휘저었습니다. 쌍끌이란 서로 그물을 연결한 어선 두 대가 나란히 이동하면서 바닥까지 모조리 훑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5백 척이 넘는 쌍끌이 어선이 우리 어장을 휘저으면 요즘 철인 꽃게나 가리비는 물론 우리 어민들이 설치한 통발까지 그물에 끌려가게 됩니다. 보통 부표에 깃발을 엮고 밑으로 2백 미터 정도 되는 긴 줄을 연결합니다.

그 긴 줄에 통발 50개를 일정한 간격으로 묶습니다. 마지막으로 줄 끝에 작은 닻을 연결한 뒤 어장에 던져 놓습니다. 어민들은 이 통발 50개를 연결한 부표 하나를 1틀이라고 부르는데, 백령도에서 만난 어민들 대부분은 10틀 넘게 어구를 잃어버렸습니다. 보통 어민 한 명이 15~16틀 정도 설치하니까 자신이 가진 어구의 절반 이상을 도둑맞은 겁니다. 그나마 어장 근처에 떠도는 어구를 찾는다 해도 중국어선 때문에 망가져 당장 조업에 쓸 수 없습니다. 어민들은 올해 조업을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중국어선, 막무가내 불법 조업

백령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중국 어선들은 살벌했습니다. 낮에는 10척도 안 되는 중국 어선이 앞바다에 띄엄띄엄 보였지만, 해만 지면 수평선 끝에서 끝까지 중국 어선들로 가득했습니다. 서해 5도 지역은 군사 지역이라 우리 어민들의 야간 조업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밤바다에 보이는 불빛은 모두 중국 어선들입니다. 조명을 하나씩 세어보다가 너무 많아 포기했습니다. 5백 척은 거뜬히 넘어 보였습니다.

중국 어선들은 주로 늦은 밤과 파도가 거센 날에 불법 조업을 일삼습니다. 해경의 단속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아주 가까운 거리라 안 그래도 적극적으로 단속하기 어려운데, 기상 악화까지 겹치면 해경이 단속에 나서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중국어선 역시 이런 사실을 아는 겁니다. 서해에 풍랑 주의보라도 내려지면 귀신같이 서해 5도 코앞까지 들어옵니다. 심할 때는 섬 1백 미터 근처까지 들어오는데, 이런 날엔 해병대에서 원래는 대북 방송용으로 쓰는 스피커를 통해 중국어로 중국어선 물러나라고 방송까지 합니다.

매년 반복되는데…대책은?

대청도 어민들이 옹진군청을 항의방문한 지 며칠 지난 뒤 옹진군수는 '중국어선 불법 조업과 관련한 어업인 피해 대책 건의 서한문'을 내놓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겁니다. 이 서한문의 일부를 옮기겠습니다.

"해양경찰청이 해체되는 전환기를 틈타 서해 최북단 어장에서 유례없는 대규모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이 다시 기승을 부려 서해5도 어업인들의 피해가 막심한 상황입니다."

"최근 중국어선 5백~7백여 척이 대규모 선단을 이뤄 백령·대청 어장과 서해 특정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고 있으며 과거 북한 해역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나들며 조업하던 중국어선은 최근 더욱 대담해져 우리 어장 내부에 들어와 치어까지 싹쓸이하고 있는 상황은 물론, 우리 어민이 설치한 어구를 통째로 훔쳐가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옹진군은 당면한 이러한 난관들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옹진군 서해5도 어민들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과 관련하여 관계 당국에 수차례 건의하였음에도 우리 어선들은 야간조업 불허하고 월선 조업에 대한 통제는 강력하게 하는 반면 중국 어선들에 대하여 미온적인 정부의 대처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한문에서는 크게 6가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어선 서해5도 어장 진입 적극 단속

-대청도 해경 전진기지 구축

-NLL 부근에 중국어선 조업 방지시설 설치

-서해5도 조업구역(어장) 확장

-성난 민심 달랠 수 있는 지원 방안 마련

-어업지도선 대체건조 지원

옹진군청이 대책으로 내놓은 사항 가운데 몇 가지나 받아들여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천의 한 시민단체는 국가를 상대로 어민 피해에 대한 손해 배상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국어선 불법 조업으로 생긴 어민 피해에 대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시민단체 역시 국가를 상대로 소송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서해 5도는 물론, 군산 앞바다, 목포 앞바다까지 서해 전체에서 매일 밤만 되면 중국어선 수백 척, 아니 수천 척이 불법 조업을 일삼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해경과 어업 지도선이 나포한 중국어선은 1년에 3백 척에서 5백 척 정도입니다. 단속을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민들과 시민단체는 정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더욱 적극적으로 우리 어민을 보호해주고, 중국과 대화해 외교적인 해법을 도출해달라고 주장합니다. 정부도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 실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른 시일 안에 정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어민들이 절규하지 않도록 해주길 바랍니다.김학휘 기자 hw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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