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告訴 당할래, 제품 살래" 내용증명 폭탄.. 영세업체 옭아매는 로펌 '著作權(저작권) 장사'

최연진 기자 2014. 11. 13. 05:4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업체에 다니는 A씨는 지난 3일 회사에 출근했다가 한 법무법인(로펌)이 보낸 우편물을 받고 깜짝 놀랐다. A씨 회사는 포털 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받은 폰트(글꼴) 2개를 이용해 홍보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려 홍보하는 영세 업체다. 로펌 측은 여기에 사용된 폰트를 문제 삼으며 '저작권법을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3일 이내에 경위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깜짝 놀란 A씨는 로펌에 전화를 걸었다. 로펌 담당자는 "400여개 폰트가 들어 있는 99만원짜리 패키지를 사라. 아니면 형사 고소와 함께 300만원 정도를 물어야 하는 민사소송을 진행하겠다"며 협박조로 말했다. '고소' '소송' 이야기에 놀란 A씨는 인터넷에 관련 사례를 검색해봤다. 지난달 말부터 같은 로펌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이 수십 명이나 됐다.

'저작권 사냥'을 막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을 앞두고 일부 로펌이 막바지 저작권 대리소송을 진행하면서 수백~수천 건의 내용증명을 무차별 발송하고 있다. 폰트·이미지·음원·프로그램 등을 무료로 다운받은 사람 중 저작권 침해가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일단 내용증명을 보내놓고, 법적으로 꼬투리를 잡을 만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십만~수백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하거나 고가의 프로그램·패키지 구매를 종용하는 것이다.

로펌들의 저작권 사냥이 최근 들어 더욱 빈번해진 이유가 있다. 지난 4월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문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자 '개정안이 내년 초에 통과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중·소형 로펌들이 '연말 막판 영업'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많다.

현행 저작권법은 경미한 저작권 침해 행위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처벌이라는 말에 아연실색한 일반인들은 로펌 측이 합의금을 수백만원씩 불러도 그에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는 '저작권 침해 행위로 저작권자가 6개월간 100만원 이상의 피해를 보았을 때에만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소한 저작권 위반 행위를 사냥해 왔던 일부 로펌은 더 이상 이를 이용해 돈을 벌 수가 없게 된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부 로펌의 무차별적인 '저작권 장사'를 막기 위해 개정안이 만들어졌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저작권 장사가 더욱 심각해지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내용증명 폭탄' 때문에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금을 로펌 측에 넘겨주고 있다. 특히 법을 잘 모르는 영세업체 관계자들이나 인터넷에서 각종 파일을 다운로드 받는 청소년이 많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는 "무료라고 해서 폰트를 다운받아 썼는데, 갑자기 고소를 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손이 떨려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며 "검찰·법원을 들락날락하느니 차라리 비싼 공부 했다고 치고 99만원짜리 패키지를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개인 블로그에 무료 이미지를 사용했다가 "100만원에 합의하자"는 제안을 받은 대학생 C씨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공정위 답변을 받기도 전에 계속 시달리다가 로펌에 돈을 보냈다. 로펌들은 합의에 실패하면 실제 형사 고소를 진행하고, 수사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사람들이 겁을 먹고 로펌 측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합의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저작권법 개정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비영리단체 오픈넷의 남희섭 이사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 실수를 변호사가 물고 늘어지는 이상한 현상을 없애기 위해 정부와 수사기관이 빨리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저작권 위반을 막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합의금을 뜯어내려는 로펌들을 '권리남용'으로 처벌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 실수에 불과한 저작권 침해라면 검찰도 기소유예하는 경우가 많다"며 "로펌 측이 과도한 요구를 할 때에는 강경하게 맞서고, 패키지 등을 강매하려 할 경우에는 공정위에 '불공정 거래행위'로 신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