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은 어디로?

2014. 10. 2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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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7만의 동해안 도시 삼척이 시끄럽습니다.

지난 2010년 선정된 원전 부지를 백지화하라는 주민투표에서 85%가 압도적으로 찬성한 것.

정부는 이미 선정된 부지를 주민투표 결과 때문에 철회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시 부지 선정에 큰 영향을 미쳤던 주민들의 원전유치 찬성 서명부의 상당부분이 조작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몹시 꼬여버렸습니다.

국책사업이냐 민의냐, 산업이냐 안전이냐. 화약고로 떠오른 삼척은 제 2의 부안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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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7만의 작은 도시, 강원도 삼척.

겉으론 평온한 여느 시골과 다를 바 없지만,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습니다.

이웃들 사이에도 속터놓고 하지 못하는 얘기들이 생겼습니다.

"서로서로 다 눈치보고. 내색을 못하죠."

"속내는 드러내지 않아요. 맨날 보는 사람들인데 분란 일으킬 필요 없죠."

원전 유치를 둘러싸고 벌어진 풍경입니다.

지난 9일, 삼척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주민투표.

원자력 발전소 유치에 찬성할지 반대할지를 묻는 투표입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선거인 명부는 지역 선관위가 아닌 삼척 주민들이 만들었습니다

투표율은 68%,

개표결과 85%의 반대표가 나왔습니다.

◀ 정성헌 / 주민투표관리위원장 ▶

"원전유치 반대로 확정입니다. 탕탕탕"

◀ 김양호 / 삼척시장 ▶

"지금 나온 결과를 가지고 중앙 정부를 설득하고 만약에 안 될 때는 삼척 시민들이 강경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그러자 당초 원전 유치를 추진했던 전 시장측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주민투표 자체가 선관위의 인정을 받지 못했으니 무효라는 것입니다.

◀ 김대수 / 전 삼척시장 ▶

"이런 식으로 주민투표를 한다고 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 이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무법천지가 된다고.."

정부 역시 원전건설은 국가 사업이기 때문에 주민투표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 윤상직 장관 / 산업통상자원부 ▶

"이렇게 다시 문제를 삼는다고 하면 상당히 앞으로 일하기 어렵다, 국책사업하기 어렵다, 그래서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동해안의 작은 도시 삼척이 시끄럽습니다.

주민투표까지 마쳤지만, 본격적인 갈등은 이제 시작일 뿐이고,

10여년 전 핵방폐장 문제로 격렬히 대립했던 부안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가파른 절벽과 아기자기한 해변,

동해에서도 대표적인 절경으로 꼽힙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관광객들과 낚시꾼들로 북적입니다.

◀ 김봉환 ▶

"수심이 깊고 절벽이 있다보니까 경치가 빼어나죠. 공기도 좋고 물도 깨끗하고."

삼척의 갈등은 바로 이곳에 원전 유치를 추진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작은 도랑을 경계로 유치 찬성과 반대로 나뉜 마을.

예정 부지에 포함된 주민들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찬성하는 사람들은 도랑 쪽 사람들이지. (보상 받고) 이 동네 안 살라고 그랬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원전 바로 옆에서 살아갈 일이 걱정입니다.

"농사짓고 사는데 반대해야지. 농사를 지을 수 있어 소를 키울 수 있어.."

이런 입장 차이는 오랜 기간 동거동락했던 마을 사람들을 냉랭하게 갈라놨습니다.

"마을회관 같은데 모이면 싸움 나고. 서로 보면 얼굴 붉히고.."

삼척시가 원전 유치를 신청한 것은 지난 2010년.

150만KW급 경수로 4기 이상이 건설되면 삼척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유치 동의안을 가결시켰습니다.

단, 조건은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다는 것.

◀ 정진권 의장 / 삼척시의회 ▶

"제가 의원이면서 의원을 믿지 못해서 주민투표 찬성 서명부를 본회의장 안에 다 입실해 있는 상태에서 받은 겁니다, 이게."

하지만 삼척시와 원전추진협의회는 주민투표 대신 찬성 서명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 김대수 / 전 시장 ▶

"우리 삼척 시민의 영혼이 결집된 96%의 이것이 반드시 우리 정부에 전달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삼척시는 이듬해 신규 원전 후보지로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지역 여론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격렬한 반대 집회가 벌어졌고, 시장에 대해 주민소환 투표까지 진행됐습니다.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긴 했지만, 반대측 주민들은 당시 서명을 받는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며 서명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 방순광 ▶

"저 같은 경우는 세 번 했어요. 사인을. 그 때는 동네마다 통장이 따로 하고, 청년회 따로 하고, 뭐 방범대 따로 하고."

정부에 제출한 서명 결과입니다.

전체 유권자는 5만 8천명인데, 이보다 8천명이나 더 많은 6만 6천명이 서명을 한 걸로 돼있습니다.

중복서명을 제외했더니 실서명율은 96.9%,

삼척 유권자 거의 전부가 찬성 서명을 했다는 겁니다.

◀ 김승호 / 원전백지화범시민연대 대표 ▶

"주민등록은 돼 있어도 돈벌이 때문에 타지에 가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의 10~20%. 그럼 96.9%가 어떻게 나옵니까. 나올 수가 없는 수치죠."

비슷한 시기 '한국수력원자력'의 여론조사에서 찬성율이 60% 정도였던 것과는 큰 차이였습니다.

2580은 당시 서명부를 추적해봤습니다.

원본의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황.

◀ 이연우 / 삼척시원자력산업추진협의회 대표 ▶

"저희들은 안 가지고 있습니다. 보관하기도 그렇고, 우리가 보관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파일도 안 가지고 계세요?) 파일..나는 컴퓨터를 몰라서 잘 모르겠는데 파일은 없앤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전 추진협의회는 당시 서명부를 복사해 청와대와 산업부, 국회 등 다섯 기관에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받았다는 곳은 없었습니다.

최근 국회의 한 문서창고에서 복사본이 발견되긴 했지만, 그마저도 전체 12권 중 4권은 없었습니다.

◀ 국회 산업통상위 관계자 ▶

"(어디 있었어요?) 이렇게 싸여가지고 저기 처박혀 있었어요. 이것도 겨우 찾았어요."

서명부를 확인해봤습니다.

이름 외엔 아무 것도 안 씌여 있는가 하면, 서명에 동그라미만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삼척 시민이 아닌 사람들의 서명이 있는가 하면,

곳곳에 같은 글씨체가 수십 명씩 반복돼 있습니다.

필적 전문가에게 서명부를 보여줬습니다.

◀ 서한서 / 필적전문가 ▶

"연관성이 있는 필적으로 보이고, 조금 더 나가서 추정을 한다면 동일인이 작성한 페이지다."

서명부에 적혀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자신의 글씨도 아니고, 서명을 한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서명하신 기억이?) 이거 아닌데, 내 필체가 아니에요. 사인도 나 이렇게 안 해요. (이 분은?)이건 내 아들이고. (아드님은 서명 하셨어요?)글씨가 아니에요."

"이 사람들 글씨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한 사람이 다 썼네 이거."

같은 글씨로 서명된 한 아파트엔 서명부에 적혀 있는 주소와 전화번호가 실제 살고 있는 사람과 모두 달랐습니다.

"내 이름 아니에요. 지금 502동으로 돼야 하는데 501동으로 돼 있네. 다 502동 사람들인데."

◀ 염부운 ▶

"황당합니다. 내가 어떤 의견도 표명 안 했는데, 일방적으로 올렸다는 건 순 엉터리죠. 이래선 안 되지."

주민들이 직접 서명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거짓 정보로 서명부를 채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 김제남 국회의원 ▶

"서명부는 삼척 시민의 민의를 조작, 왜곡한 내용입니다. 바로 잡기 위해 서명부를 그동안 찾았는데 아무데도 없다고 얘기를 했던 거죠."

그럼 서명부는 누가 쓴 걸까.

당시 삼척시 공무원들과 통/리/반장들이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자의적으로 작성했다는 것이 원전유치 반대측의 주장입니다.

◀ 심우청 / 공무원노조 지부장 ▶

"무슨 리는 무슨 과, 무슨 리는 무슨 과 이런 식으로 배정돼서 실제 움직였습니다. 시장이 재촉하니까 명부를 가져다 놓고 대필 서명을 하지 않았나."

하지만 서명을 주도했던 원전추진협의회는 여전히 서명부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 이연우 / 삼척시원자력산업추진협의회 대표 ▶

"전화해서 이 서명받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좀 해달라, 나도 좋아, 나도 좀 해줘 이런 경우가 있거든요. 대리 서명이지만 본인 의사가 반영된 거니까.."

원전 유치를 반대하는 쪽에선 서명부의 조작, 왜곡이 드러난 만큼, 이를 근거로 한 원전 유치 신청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김승호 / 원전백지화범시민연대 대표 ▶

"이런 서명을 해놓고 주민수용성이다 국가에서 선동을 한 겁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에요. 이건"

이들은 전 시장등을 공문서 훼손은닉 파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반면 일부 주민들은 이번 주민투표에 현 시장과 공무원들이 개입됐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공은 정부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제와서 원전 후보지를 철회하기도, 그렇다고 주민투표 결과를 대놓고 무시하기도 부담스러운 것이 정부의 고민입니다.

◀ 윤상직 장관 / 산업통상자원부 ▶

"계속 설득하고 저희가 시간을 갖고.."

불똥은 다른 지역으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삼척과 함께 원자력 발전소 후보지로 선정됐던 경북 영덕군.

예정 부지는 유명한 대게 마을 바로 옆입니다.

◀ 이용락 어촌계장 / 대게마을 ▶

"영덕 대게로 먹고 사는 이런 곳이기 때문에 나쁜 영향을 끼칠가 염려되고."

삼척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부 주민들은 이곳에서도 찬반투표를 하자는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됐습니다.

◀ 박혜령 집행위원장 / 핵발전소반대대책위원회 ▶

"우리도 뭔가 해야겠다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품고만 있다가 속앓이 하다가 표출되기 시작한 거죠."

낙후된 생활여건이 개선될까 찬성했던 주민들의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 이미상 ▶

"사실 고향을 두고 어딜 간다는 게 보통 쉬운 건 아니잖아요. 정부에서 빨리 해결이 안 되면 진을 빼지 말고 백지화 시키던가.."

우리 나라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23기.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원전 비중을 26%에서 29%로 올린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선 현재 짓고 있는 5기와 건설 계획이 집힌 6기 외에도, 추가로 7기 정도가 더 필요합니다.

전력 수요를 감당할 다른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는 겁니다.

◀ 윤상직 장관 / 산업통상부 ▶

"원전을 가동하지 않으면 대체전력원을 확보해야 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석탄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등 많은 국가들이 원전을 줄이는 흐름속에서, 우리도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 간 나오토 / 전 일본 총리 ▶

"일본에서도 원전은 안전하고 싸다고 했습니다. 깨끗하다고도 했습니다. 이제는 안전하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사고 위험,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안전성 강화 비용 등을 고려하면 전혀 싸지 않습니다."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진만큼, 원전 정책의 방향과 속도엔 문제가 없는지,

무엇보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 박태순 소장 / 사회갈등연구소 ▶

"위험이란 것은 몇 푼 보상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발전이 이뤄졌다고 보여지고요. 존중한 상태에서 접근해야지 국가 말을 안 들어? 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절대 안 됩니다."

가을 전어잡이가 한창인 부안 격포항.

10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지만, 한 번 새겨진 깊은 골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 김양술 / 핵폐기장 반대 ▶

"투기꾼들 같은 사람들이 찬성을 많이 했었고, 위도에 땅 있는 사람들이 주로.."

◀ 정풍실 / 핵폐기장 찬성 ▶

"제대로 다니지를 못하고..무조건 반대를 했었어. 악랄하게, 너무나 지나치게."

극심한 대립의 중심에 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대안 에너지를 만들어 생활하고 있는 이현민 소장.

삼척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걱정이 앞섭니다.

◀ 이현민 / 부안시민발전소장 ▶

"어쨌든 지역 주민들로서는 이해 당사자가 갈렸다는 거예요.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런 갈등들을 원칙에 맞게 주민적 입장에서 해결한 사례가 아직 없다는 사실입니다."

10년 전 부안처럼 격랑에 휩싸일지,

원전을 둘러싼 오랜 갈등을 새로운 차원에서 해결하는 계기가 될지, 삼척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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