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는 경영학 아닌 인문학이 주는 것"

유인경 선임기자 입력 2014. 10. 25. 13:19 수정 2014. 10. 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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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경이 만난 사람] '서울인문포럼' 기획한 보험사 명예상무 배양숙씨

프랑스와 슈네 프랑스 소르본대 철학과 교수, 팡차오후이 중국 칭화대 철학교수, 프레드릭 살드만 의사 겸 작가, 설인생 중국 사마천학회 협회장, 문정희 시인협회 회장, 지식생태학자인 한양대 유영만 교수, 혜민 스님…. 2015년 1월 14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서울인문포럼'에 참여하는 세계 석학들의 면면이다. 최근 이 포럼의 홈페이지가 오픈되자마자 수백명이 참가를 신청했다. 이 포럼을 주최하고 운영하는 이는 대기업이나 단체가 아니라 개인이다. 약 3억5000만원의 사재를 들여 이 포럼을 기획한 주인공은 배양숙 삼성생명 FC명예사업부 상무. 150㎝의 자그마한 키에 부산여상 출신의 보험영업사원이 이런 담대한(?) 일을 기획한 이유가 궁금했다.

보험영업을 하는데 왜 돈버는 법이 아닌 인문학, 그것도 세계적 석학을 모은 인문포럼을 기획했습니까.

"오랜 경험 끝에 경영학이 아니라 인문학이 진정한 부를 준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이 포럼의 모태는 2011년부터 운영하는 '수요포럼 인문의 숲' 강좌입니다. 저는 개인보다는 중견기업, 자수성가한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관리, 상속설계를 주업무로 합니다. 주로 제조업을 하는 분들인데 평생 사업만 하느라 정작 개인의 취미나 교양은 물론 자녀 교육을 할 시간도 없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재산관리나 부의 증식을 도움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분들이 올바르고 좋은 결정을 내리게 돕는 것이 결국 현 종업원과 그 가족의 행복을 키우고,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기업이 아닌지라 전문경영인을 모셔오기도 힘든 그분들이 자연스럽게 2세에게 경영승계를 할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재테크가 아니라 인문학에서 그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세 경영인 멘토링 코스' 프로그램을 먼저 시작했고 그것이 확대된 것이 '수요포럼 인문의 숲'이고, 드디어 세계적 석학을 모셔와 서울인문포럼까지 개최하게 된 겁니다. 수요포럼 인문의 숲은 공짜이지만 이 행사는 20만원의 참가비를 받습니다."

이런 석학들을 초대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제가 다 직접 찾아가 만나서 초대했습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경우에도 꼭 참여하고 싶었는데 마침 같은 시기에 다른 행사가 있어 송구하다며 다음번엔 꼭 참석하겠다고 하더군요. 다들 대기업이나 학술단체가 아니라 개인이 행사를 주최한다는 것에 신기해하고 호의를 보였습니다. 물질만능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지성인과의 만남이라는 제 뜻에 동의해 주셔서 무척 감사했죠. 먼 한국에서 왔다며 맛있는 식사까지 대접해 주셔서 더욱 기뻤습니다.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제가 궁금한 분, 만나고 싶은 분은 어느 나라건 직접 찾아가 만납니다. 오히려 한국의 지성인들은 고졸 출신의 보험영업 전문가가 이런 행사를 한다면 색안경을 쓰고 보거나 노골적으로 견제합니다. 화가 나기보다는 슬픈 현실이죠."

'수요포럼 인문의 숲'도 해마다 강사 초청이나 준비에 1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던데 부자들에게 돈을 들여 인문학 교육을 하는 이유는 뭔지요.

"제가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 '선한 영향력'과 '인간성 회복'입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5000달러 정도였을 때 물질적으로는 곤궁했지만 그래도 다 같이 손잡고 가려고 하고 서로 배려하는 이타심, 측은지심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2만 달러가 넘고 곧 3만 달러 진입을 앞두고 있는데 오히려 이타심, 측은지심을 볼 수 없게 돼버렸어요.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이웃끼리 인사조차 안 하고 리더들 역시 진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성인이나 부자들일수록 자기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헐뜯는 것을 참 많이 봤습니다. 잠시는 잘 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서로 망하더군요. 나도 잘 되고, 남도 잘 되고 모두 행복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인문학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지성인들, 부자들이 먼저 스스로 자각하고 깨쳐야 인간성 회복이 된다고 믿습니다. 해마다 1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지만 그 돈이 제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게 돈을 벌게 해준 분들께 다시 돌려드리면 그분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돈을 들여도 보람이 있으니까 계속하겠지요?

"그럼요. 어떤 CEO는 건설업으로 10년 만에 5000억원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리먼브라더스 파산 등 미국의 금융사태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문의 숲 포럼에 초대를 했습니다. 전 잘 몰랐는데 당시에 완전히 파산을 해서 차비조차 없는 상태였고 세상과 주변에 대한 배신감에 자살을 궁리하는 중이었답니다. 그런데 '오셔서 공부하세요'라는 제 전화를 받고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에서 한 줄기 실오라기 같은 흰빛이 보이고, 나를 찾는 사람이 있구나란 기쁨에 죽기 전에 강의라도 들어보자고 걸어서 왔답니다. 그런데 돈버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철학 강의여서 실망했는데, 거기서 '나는 질문하는 인간인가, 대답하는 인간인가'란 화두를 얻고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더군요. 강의를 들은 후 그 말씀을 하시는데 평소 공개석상에서는 절대 울지 않는 제가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강의 콘텐츠를 짜고 연사들을 섭외하는 것 모두 제 몫이고, 해마다 억대의 돈이 들지만 한 분이라도 생명을 살리는 영향력을 미친 것에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습니다."

배양숙 삼성생명 상무/이상훈 선임기자

인문학이라면 주로 어떤 내용들입니까.

"철학, 심리학, 역사 등 다양합니다."

좋은 일을 해도 오해와 편견을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제가 고졸, 그것도 여상 학력을 극복하기 위해 지식인과 CEO를 모아놓고 대리만족을 한다, 이용을 한다, 돈자랑을 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죠. 특히 참여해서 강의까지 잘 들은 분이 그런 뒷담화나 이간질을 할 때는 당장 그만두고 싶었어요. 여성 지도자들의 모임에 참석했을 때도 '전공이 뭐냐' '어느 대학 몇 학번이냐'란 질문을 받아 '전 여상 출신입니다'라고 말하니 '대체 왜 저런 여자가 이런 자리에 왔나'란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는 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고졸이란 학력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져 8남매 중 둘째딸인 제가 대학에 갈 형편이 못 되었고 그 잃어버린 대학 4년을 보충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면서 정말 이런저런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 결핍감이 저를 항상 자극했고, 더 발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보험영업을 포함한 세일즈의 본질은 '거절'이라고 하더군요. 부자들을 만나기도 힘들지만 재산증식을 해준다는 제안도 숱하게 거절당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거절만이 아니라 성희롱도 당했습니다. 특히 부산에서 일하다 6년 전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외계인 보듯 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이 험난한 보험영업의 세계에서 150㎝에 가냘픈 몸매, 두 아이의 엄마에다 표정이 그대로 읽히는 얼굴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성과 감성을 분리합니다. 개인 배양숙이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제가 제안한 프로젝트가 거절당한 것이고, 거절은 그분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거절당했다고 포기하면 제 직무유기고요. 그걸 슬퍼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고,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망각으로 슬픔을 털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거절하기 힘든 더 훌륭한 프로젝트와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 갑니다. 자신의 재산을 맡기는데 어떻게 한순간의 인상이나 말만으로 결정하겠습니까. 개인이나 지역을 개척하는 데 2~3년이 걸립니다. 재무설계도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내의 문제입니다."

자료는 어떻게 준비합니까.

"제 고객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 분야를 철저히 파악해 관련 자료를 직접 모읍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주로 지방의 의사, 변호사 등이 고객이었는데 그분들의 목표는 10억원대 정도의 건물을 소유해 안정된 수익을 갖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얼마의 돈이 있으면 발전 가능성이 큰 지역의 건물을 가질 수 있으며, 그 돈을 어떻게 모을 수 있는지에 관련된 정보를 다 분석해 보여드렸지요.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월스트리트의 전문가에게 전화해 상황을 묻고 자료를 분석해 알려드립니다."

세계 경제 흐름이나 미래에 대한 자료는 어떻게 구합니까.

"직접 관련 기관에 자료의뢰를 하기도 하고 지인들을 통해 구하기도 합니다만 경제에 관한 정확한 예측을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수시로 외국을 나가서 현장 분위기를 봅니다. 앞으로의 대륙은 아프리카라며 자원외교는 물론, 공장을 이전하는 이들도 많지만 제가 직접 가보니 금융 인프라가 아직 구축되지 않았고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 물류비용도 문제였습니다. 후발주자는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두바이의 경우도 2007년 한창 두바이 신드롬이 불 때 갔습니다. 그런데 곡선 같은 건물 등 환상적인 스카이라인을 보여주지만 거리의 온도가 섭씨 50도에 달했어요. 또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10억원대여서 자칫 사람들이 빠지면 유령도시같이 변할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각 나라를 다녀올 때마다 제가 받은 느낌, 본 내용들을 정리해서 제 고객들께 메일로 보냅니다. 얼마 후 두바이가 휘청거렸을 때 어느 분이 제게 '자리 까세요'라고 하더군요."

수요포럼 이전에 2세 경영인들을 위한 포럼을 먼저 시작했다면서요.

"제 주요 고객은 작은 기계 하나로 시작해 성공한 제조업체 사장들이 대부분입니다. 자기 삶은 없이 납기일 맞추고 직원들 월급 주는 것이 인생인 분들입니다. 굴욕감을 감수하고 사업을 일궈도 자식 코칭하거나 경영학을 가르칠 여유는 없던 분들이죠. 그런데 중견기업들의 직원이 적어도 400~500명이나 되는데 오너나 2세가 잘못 경영하면 그 직원들과 가족들의 삶이 무너집니다. 서울대 등에서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것도 커리큘럼을 짜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재무설계 일을 하면서 많은 기업가들과 소통한 덕분에 때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도 잘 알 수 있었고요. 한국철학사에서 배우는 리더십, 사마천의 사기에서 배우는 리더십, 미래경영 이야기 등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과정을 구성해 '2세 경영인, 그들을 위한 12첩 반상'이란 포럼을 만들어 강의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제게 재산관리를 맡겨주는 고객들에게 보답하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 포럼의 캐치프레이즈는 'For 홍익, 함께 이롭게 더불어 행복하게'입니다. 수업을 들으러 오는 기업 리더분들께 늘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주신 만큼 수업을 듣고 난 후에는 꼭 1명이든 2명이든 고용을 늘려 달라고요. 그리고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 유일한 과제입니다."

연봉 14억원에 연중 최고 실적자에게 주는 '챔피언'으로도 등극했는데, 술·골프 등을 안 하고도 비즈니스를 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제 장점은 단순하고 무식하고 긍정적이라는 것입니다. 만화 여주인공 캔디처럼 항상 웃고 호기심이 동하면 무식하게 앞뒤 안 가리고 달려가죠. 제가 읽은 책, 제가 만나본 사람들, 제가 가본 곳 등에 관한 것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부지런히 전했습니다. 저를 믿고 맡겨 주시는 고객이 있는데 이런 노력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진심은 언제 어디서나 통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65세까지는 재무설계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이왕 시작한 서울인문포럼을 국제적 행사로 성장시키고도 싶습니다."

50세의 나이에도 소녀처럼 해맑게 미소짓는 배양숙 상무. 하지만 저렇게 밝은 웃음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알 것 같다. 에볼라 등 나쁜 바이러스보다 행복 바이러스가 더 빨리, 더 널리 퍼진다는데 배 상무의 긍정 바이러스, 인문학의 따뜻한 바람이 이 삭막한 사회에 널리 퍼지기를….

<유인경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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