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학생, 쉬는 시간이면 친구의 빈자리 앞에서..운다..

2014. 10. 1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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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산 사람들도 고통의 늪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6개월째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 운동장에서는 가을 햇살 아래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쉬는 시간을 이용해 교실 밖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부 학생들의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빼면, 겉으로는 여느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250명의 학생을 떠나보낸 참사의 상흔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왁자했을 예전 2학년 교실은 텅 비어 있다.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자리엔 먼저 떠난 친구를 애도하는 쪽지글과 꽃이 빼곡하다. 시계가 4월16일에 멈춘 듯하다.

학생들이 사용했던 책상, 의자, 사물함에는 노란 나비가 그려진 손바닥 크기의 종이가 붙어 있다. 실종 상태인 2학년 1반 조은화(17)양의 책상에는 누군가가 '너 진짜 계속 결석할 거니? 제발 은화야'라고 쓰인 쪽지를 붙여 놨다.

적혀 있는 이름은 다 달랐지만, 날짜는 '2013.3.2~2014.4.16'으로 똑같다. 이들이 단원고에 입학한 날부터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날까지다.

세월호에 탄 단원고 2학년 325명 가운데 75명만 살아 돌아왔다. 단원고 학생들, 특히 2학년 생존 학생들은 아직도 예전 2학년 교실을 찾는다. 거의 매일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2학년 교실을 둘러보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생존 학생 75명과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던 학생 13명은 지금 남녀 반 2개씩 모두 네 반으로 나뉘어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공부하던 교실에 멍하니 서서 꽃이 놓인 친구의 책상을 말없이 바라보다 교실로 돌아가곤 한다. 돌아오지 못한 친구의 책상 앞에서 울기도 한다.

한 생존 학생 아버지는 "딸이 주말마다 이야기도 안 하고 어디를 다녀오곤 했다. 지난주 주말에도 나가길래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안산하늘공원 간다'고 짧게 말하더라"라고 전했다. 하늘공원은 딸과 친했던 친구 5명 가운데 3명이 잠들어 있는 추모공원이다. 그는 "'데려다 주겠다'고 했더니 '싫다'며 혼자 갔다. 가끔 아침에 딸을 보면 밤새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생존 학생 가족들이 최근 자체적으로 생존 학생 75명의 병원 진료 현황을 조사한 결과, 고려대안산병원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는 학생은 52명이나 된다. 피부과나 소아청소년과, 척추외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4~5개 병원을 동시에 다니는 학생도 20여명에 이른다. 장동원 생존 학생 학부모 대표는 "말이 갑자기 줄고 우울해하는 등 아이들은 아직도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평생을 상처와 불신을 갖고 살아가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주말만 되면 말없이 집 나가안산 하늘공원 등으로부모들 매일 돌아가며 학교로불안한 마음에 교실주변 서성희생자 형제자매들도 '마음의 병'채팅방 모임이 유일한 위안

마음이 놓이지 않는 생존 학생 부모들은 매일 돌아가면서 단원고 본관 2층 건물의 교장실 바로 옆 학부모상주지도실에 나온다. 지도실에 앉아 있다가도 불안한 마음이 들면 생존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 주변을 서성댄다. 그러다가 좀 마음이 놓이면 텅 빈 2학년 교실을 돌며 책상에 쌓인 먼지를 닦는다. 생존 학생 부모 몇 명은 자녀를 돌봐야 한다며 직장도 그만뒀다.

경기도교육청은 안산교육회복지원단을 꾸려 단원고에 심리 상담과 치료팀을 운영하고 있다. 안산온마음센터에서도 전체 시민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희생 학생들의 형제자매 가운데 초·중·고 학생만 147명, 친·인척 학생은 187명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막내 동생 최윤민(17)양을 잃은 최윤아(23)씨는 다른 희생 학생들의 형제자매 등 31명과 함께 단체 카카오톡을 한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의 이름은 '안녕하세요'다. 서로 인사를 하면서 안부를 묻다 보니 자연스럽게 채팅방 이름이 그렇게 됐다. 이제는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아픔이 있어서 그런지 서로 속마음을 잘 털어놓는다.

이들은 부모 앞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한다. 형을 잃은 중1 학생의 어머니는 "세월호 사고 뒤 아들에게 큰 문제를 못 느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을 못하고 멍하게 있을 때가 많다'고 했다. (아들이) 부모가 힘들어할까봐 일부러 내색을 안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빠를 잃은 중2 여학생은 같은 반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우리 왜 축제 안 해요?"라고 묻는 것을 보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마치 자신이나 숨진 오빠 때문에 학교에서 축제를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윤아씨는 "아이들이 친구들한테 이해는 얻어도 공감은 못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계속 상처를 받고 있다"며 "매정한 정부와 일부 언론, 극우 성향 누리꾼들도 이들의 상처를 덧내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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