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당신이 인터넷에 쓴 글을 검찰이 모두 들여다 본다면?

김정윤 기자 입력 2014. 9. 27. 08:36 수정 2014. 9. 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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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인터넷에 쓴 글을 검찰이 모두 들여다보겠다면?

그런 일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발족했습니다. "인터넷 등 사이버 공간에서 허위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들을 '선제적'으로 적발해 처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날로 지능화하고 대형화하는 사이버 범죄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가 전담팀을 맡았습니다.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검사가 5명이나 배치됐습니다.

시작은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부터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한다면 국민들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앞으로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밝혀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라고 사실상 검찰에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바로 이틀 뒤, 검찰은 방통위와 미래부 등 관련 정부 부처는 물론 네이버와 다음 같은 민간 포털업체까지 불러서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름 하여 '사이버 유언비어 엄단 유관기관 대책회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허위 사실 유포에 엄정 대응하겠다"면서, "개별 피해자들의 고소·고발에 앞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사이버 공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허위사실 최초 유포자는 물론 중간 전달자까지도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 "검색 가능하면 다 살펴보겠다"는 검찰

검찰의 이런 방침이 알려지자, 사이버 공간에서는 당장 난리가 났습니다. "사이버 상에서 내가 하는 활동을 모두 감시한다는 것 아니냐", "카카오톡도 검찰이 들여다보는 것 아니냐. 해외 메신저로 갈아타자"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검찰은, "메신저 등 SNS의 '사적 공간'에서 이뤄진 대화는, 그 안에서 직접 검색하거나 수사를 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습니다. 고소나 고발이 이뤄진 사건에 대해서만 이 '사적 SNS 공간'을 살펴보겠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더 크게 불거지고 있습니다. 검찰은 '사적 공간' 수사는 제한하는 대신, "포털사이트 등 공개된 곳에서 발생하는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서는 직접 수사하겠다"고 선포한 겁니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간부는, "사이버 상에서 검색 가능한 곳은 기본적인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늘의 유머', '일베', '엠팍', '클리앙'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들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폐쇄형 SNS를 빼고는 거의 모든 사이버 공간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취지입니다.

'다음 아고라' 같은 포털의 토론 게시판은 물론, 관심사에 따라 회원들이 모인 커뮤니티 사이트, 또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이 상대적으로 열린 SNS 공간도 감시와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른바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검찰 설명대로라면, "누구나 검색하면 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 검찰, "선제적으로, 인지 수사 하겠다"

검찰은, "허위사실을 유포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를 수사의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허위사실 유포죄'는 헌법재판소가 이미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0년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옛 전기통신법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미네르바 사건'이 불러온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검찰은 정보통신망법 70조에 나오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를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수사에 나서려 하고 있습니다.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명예훼손죄는 '친고죄'가 아니라 '반의사 불벌죄'입니다. 고소나 고발이 있어야 수사가 진행되고 처벌이 되는 게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도 검찰이 독자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는 죄목입니다. (다만 나중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을 할 수는 없지요.) 검찰은 이 조항을 근거로 피해자의 고소나 고발 없이도 '선제적'으로, 이른바 인지 수사를 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 검찰의 '잣대'는 공정할까?

그러나 검찰이 어떤 '잣대'를 가질지에 대해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상 검색이 가능한 사이버 공간이면 다 들여다보겠다는 가운데, 대체 검찰이 어떤 것을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겁니다. 앞서의 검찰 간부는, "주요 수사 대상은 공적 기관이나 공적 인물, 연예인 등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조작해 유포하는 경우, 특정 개인에 대한 악의적 신상털기, 기업을 대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해 기업의 신용과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 학생과 청소년 등에 대한 집단 괴롭힘 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세간에선, 아무래도 '공적 인물', 즉 정치인이나 공직자, 기업 오너 등에 대한 명예훼손 수사에 검찰의 칼날이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의 보도 파문에 이어서 나온 대통령의 지시에서 비롯한 기획 수사이니 말이지요.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한한 공간인 사이버 상에서 검찰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수사 대상을 선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많습니다. 즉, 현 정권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 같이 특정한 대상을 집중 모니터해서, 허위 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수사 대상에 올릴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검찰이 제시한 수사 대상과 기준이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수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다른 논란도 있습니다. 어떤 누리꾼이 누군가를 풍자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사실'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새로운 내용을 생산해 유통시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없었다는 '사실'을 두고, 누군가는 다른 공무를 보고 있던 게 아니냐, 또 다른 누군가는 대통령이 개인적 일정을 보고 있던 것 아니냐라고 의혹을 제기했을 때, 검찰의 판단 기준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 검찰은 "문제없는 글을 올리면 되잖나?"

이런 우려들 때문에 검찰 수사는 결국 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많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에 대해 검찰 간부는 "왜 위축이 되나? 아무 문제가 없는 글을 올리면 위축될 일이 없지 않나?"라는 대답을 내놨습니다. '잘못이 없으면 켕길 게 없지 않냐?'는 겁니다.

물론 사이버 공간에서도 최대한 예의와 범절을 지키면서 소통을 하면 좋을 겁니다. 또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은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이버 생태계는 무한대로 증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게시판, 커뮤티니 같은 개개의 생태계마다 나름의 질서가 있고, 나름의 언어가 있습니다. 각각의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율적인 규율을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서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 갑니다. 이를 국가 권력이 모두 개입해, 항상 감시하고 언제든 수사 대상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위축을 주는 행위이자 국민에 대한 일상적 검열일 수밖에 없습니다.

■ '권력의 X'라는 비아냥, 다시 듣지 않으려면…

표현의 자유는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입니다. 이미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국가권력이 이를 제약하고 위축시키려 한다면, 그에 합당한 법적 이유가 있어야 할 겁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민의 권리를 제약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검찰이 권력자의 말 한 마디에 과거처럼 수사의 칼날을 마구 휘두른다면, 누군가의 표현처럼 '권력의 X'라는 비아냥이 다시 나올지도 모릅니다.

아울러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IT산업 '창조 경제'를 통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국정 기조와도 어긋날 수 있습니다. 당장, 국내 포털이나 메신저 프로그램 대신, 해외에 서버를 둔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사이버 망명객'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텔레그램'이라는 해외 메신저 프로그램은 애플 앱스토어 국내 다운로드 순위가 200위권 밖이었다가 검찰의 발표 이후 순식간에 1위로 치고 올라왔다고 합니다. 국내 IT 개발자들은 서슬 퍼런 검찰의 칼날 앞에, 지금 울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허위 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피해 당사자에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적인 해결은 필요할 것입니다. 우선 당장은 검찰이 그동안 수사해 오던 관행대로, 고소나 고발이 있을 때에 한해 법리적 판단을 거쳐 수사를 진행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피해 구제는 물론,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지금 수준 이상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이번 일을 명예훼손죄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예훼손 문제에 국가 사법기관이 개입해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민사배상 방식으로 처리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사회 일각에서도 명예훼손죄를 없애거나 최소한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하는 것은 '인격 살인'에까지 이를 수 있는 엄중한 문제이기에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정치권력과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법 남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제에 명예훼손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김정윤 기자 mymov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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