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원장 선거법 무죄 선고..정치적 판결 '끝판왕'

2014. 9. 1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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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법 위반 인정해놓고 공직선거법은 무죄, 법리적 모순…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

[미디어오늘 이재진 기자]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정치 개입 혐의 선고 결과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준 꼴이며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판결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판사 이범균)는 11일 원세훈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국정원법에 따른 정치관여 행위는 인정하면서도 공직선거법에 대해서는 무죄를 판결해 징역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 신분을 감춘 채 반대 정치인과 정당 비방 글을 올린 것은 국민의 건전한 여론 조성에 국가기관이 몰래 개입한 것으로, 정당한 직무가 아니다"며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 강조 말씀은 업무 지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지시사항이 차장-국장-팀장-파트장-팀원'의 지휘라인을 통해 일선에 전달된 것으로 봤는데 이를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원 전 원장이 정치개입을 지시하고 국정원 직원이 지시에 따라 국정원법을 어겨가면서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판부는 18대 대선과 관련해서는 선거운동에 관여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한마디로 정치에는 개입했지만 선거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번 선고 결과는 지난해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만 송치 의견을 낸 경찰 발표와 정확히 일치한다.

원 전 원장의 행위가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정치 개입 행위임을 인정하면서 선거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실상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 시비 논란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차장과 국장급이 참여하는 주 월례회의를 통해 '4대강 사업 옹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옹호' '대선을 앞둔 인터넷상 종북세력에 대한 대응' 등을 지시했고,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국정원 직원이 달았다는 것도 확인된 사안이다.

이번 선고 결과는 법리적으로도 모순이라는 비판이 예상된다. 국정원 아이디가 조직적으로 특정 후보에 관한 내용을 포함한 게시글에 대해 '반대' 추천을 눌러 '오늘의 유머' 사이트 베스트 게시판에 가지 못한 행위를 확인한 바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 같은 행위가 "소속 직원 또는 선거구민에게 교육 기타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공직선거법 86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 60조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원천 금지하고 있다.

재판부가 국정원법보다 폭넓게 공무원의 선거 금지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재판부는 "특정 후보자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고는 볼 수 없고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서도 선거운동을 지시한 내용을 찾을 수 없다"며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당장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충분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는 반론이 나왔다.

▲ 원세훈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는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당선과 낙선 의도는 드러난 행동을 가지고 추론을 하는 것"이라며 "굉장히 조직적으로 댓글 행위가 이뤄졌고, 선거 시기에 집중된 것을 보면 결국 박근혜 후보의 당선과 문재인 후보의 낙선 의도를 가졌다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데 대선의 정당성 문제와 같은 정치적인 파급 효과를 고려해 일종의 정치적 타협을 한 판결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처음부터 법무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채동욱 검찰총장의 찍어내기 의혹까지 불거지면서까지 검찰이 적용 의견을 냈는데 법원도 대선의 정당성 문제를 고려해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집권 여당은 무죄에 가까운 '깨끗한 판결'을 받았다며 부정선거 및 정통성 시비 논란에 대해 적극 대처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이 사실상 무죄로 결론났다면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원천차단하고 정치적 공세라고 적극 방어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 행위에 대해 철퇴를 내리지 못한 판결로 해석되면서 향후 선거에서 나쁜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들고 부정선거 개입을 허용한 판결이라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진영은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을 국기기관이 선거 국면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지 못한 헌정 문란 사건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 행위를 애매모호하게 용인해준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1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 대해 국민적 의혹을 받았고, 청문회와 특검까지 했는데 법적으로 깨끗하게 만들어버렸다"면서 "심증은 명백한데 물증은 지워버리는 청소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평론가는 "국정원 댓글 사건은 여야의 유불리가 아닌 민주주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가기관의 정치적 개입에 대해 재판부가 허용하는 분위기를 용인해준 것이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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