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남의 나라 얘기? 한국은 괜찮고?

양민철 김동우 기자 2014. 9. 11.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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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거주 외국인 157만 시대.. '흑형 치킨' '짱개'의 그늘

'누군가 듣고 있다.'

지난달 12일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 쉐인 유먼(35)은 등에 이렇게 쓴 티셔츠를 입고 부산 사직구장에 나타났다. 티셔츠 앞엔 '말조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인 선수가 인터넷 방송에서 "유먼이 웃으면 하얀 치아와 공이 겹쳐 보인다(유먼은 흑인이다)"는 발언을 하는 등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 분위기에 항의하는 표시였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2004년 72만여명에서 지난해 157만명으로 급증했다. 단일민족국가로 보기 어려운 다문화 사회가 됐지만 다른 인종·민족·문화를 수용하는 자세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간 미국 퍼거슨시의 인종차별 소요사태도 더 이상 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전히 생소한 인종차별의 개념을 정립하고 체계적인 교육에 나설 때가 됐다.

◇한국 사회의 외국인·인종 차별="짱개(자장면)나 시켜 먹자."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김모(21)씨는 지난 6월 교내에서 친구들과 음식 배달을 주문하려다 중국인 유학생의 항의를 받았다. '짱개'란 표현이 중국인을 비하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10일 "'쪽바리'(일본인을 비하하는 속어) '김치녀'(한국 여자를 비하하는 속어) 같은 표현이 인터넷에서 흔히 사용되기에 '짱개'란 말도 흔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차별적 언어는 인터넷을 타고 젊은층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지난 1월 튀김옷 색깔이 검은 '흑형(남자 흑인을 부르는 은어) 치킨'을 두고 벌어진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 메뉴를 본 미국인이 트위터에 인종차별적이란 글을 남기면서 인터넷에서 논쟁이 붙었다. '흑형'이 흑인을 친근하게 대하는 표현이란 주장에 한 네티즌은 "흑형 치킨을 뉴욕 뒷골목에서 팔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생각해보면 인종차별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의 에볼라 바이러스 논란은 인종차별 문제에 둔감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프랭크(23·콩고민주공화국)씨는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해 아프리카인은 출입을 금한다'는 어느 식당의 안내문 사진을 친구가 보내줘서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한국에 있는 아프리카 사람은 모두 격리 대상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는 53개 나라로 이뤄진 거대한 대륙이다. 한국인도 아프리카에 한번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성균관대에서 국어학을 전공하는 말레이시아인 소열녕(33)씨는 한국인의 '집단성'에 여러 번 불편한 경험을 했다. 그는 "한국인과 의견 차이가 생기면 '너는 외국인이라 우리 정서를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며 "우리가 살면서 분명히 차이를 느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상대방의 종교나 국적을 탓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기가 마치 5000만명 한국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집단이 아닌 개인의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3명 중 1명 "외국인 이웃 싫다"=지난해 5월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은 3명 중 1명(32%)이 "외국인을 이웃으로 두기 싫다"고 답했다.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미국(5%)에 비하면 6배 정도 많았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은 은밀하게 전개된다. 이주민 노동자가 저소득층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며 경제 논리를 앞세우거나 다른 문화권 국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지면 '인종차별인 줄 몰랐다'고 해명하는 경우도 많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다. 아일랜드 출신 존 파워 기자는 지난 7월 뉴스위크 한국판에서 "한국인은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됐을 땐 '악의 없는 농담'이라고 주장하지만 피해자가 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는 "외국에선 설사 인종주의적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그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를 범죄로 여긴다"면서 "우리는 인종차별을 막는 아무런 법도, 제도도 없다"고 했다. 미국은 1964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을 제정했고, 호주는 75년 인종차별금지법을 통해 '인종주의적 이유로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모욕하거나, 굴욕감을 주거나, 위협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양민철 김동우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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