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女의사라서 믿고 갔는데 되레 수치심만.."

양민철 기자 2014. 8.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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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중 성희롱 37%가 '여성 의료진'

"여의사라서 믿고 갔는데 되레 수치심만 느끼고 나왔어요."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A씨는 이달 중순 모교 인근의 산부인과 의원을 찾았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여의사가 '남자들 여럿 만나고 다니느냐, 남자친구는 정상인 사람이냐'고 물었다. A씨는 수치스럽고 모멸감이 들어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A씨는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피해사례를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다. 해당 글은 회원 100명 이상의 추천을 받았고 같은 의원에서 비슷한 피해를 입은 동문 여학생들의 답글이 줄을 이었다. A씨는 25일 "여성 의료진이라기에 편한 마음으로 찾았다가 여의사의 부주의한 표현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산부인과를 찾은 B씨는 여의사에게 특진을 요청했다. 남성 의사의 진료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 초음파 검사 시 사전 양해나 설명 없이 수련의로 보이는 남자 의사가 함께 들어왔고, 진료 과정에서 불쾌함을 느꼈다. B씨는 피해사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고, 해당 여의사의 사과를 받아냈다.

진료과정에서의 성희롱은 주로 남성 의료진에 의해 이뤄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를 받아 실시한 '진료 과정의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진료 과정에서 성적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낀 여성의 37.3%가 '여성 의료진'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의료진이 동성일지라도 성희롱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 환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성 의료진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어 사용, 개방된 공간에서의 탈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남성 의사 및 간호원 등의 협진 등이 주요 불만 대상이었다. 50대 산부인과 여의사는 "일반 여성들이 산부인과에서 성적 굴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낀 경험담이 적힌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의료인 입장에선 당연하다고 생각한 행위를 일반 여성들은 굉장히 두려워하고 불쾌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에서의 성희롱은 대부분 '진료상의 필요성'이란 명분 때문에 성희롱 입증이 쉽지 않다. 의사와 환자만 있는 밀폐된 진료실에서 피해를 당했을 경우 목격자나 증거가 뒷받침되기도 어렵다. 특히 동성에 의한 성희롱 피해는 입증하기가 더욱 까다롭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의사 및 한의사 20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1.5%만이 '환자의 성생활과 관련된 질문이나 대화를 할 때, 환자가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성희롱 피해를 입은 여성의 절반은 일상적으로 자주 찾는 병원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종합병원 등에 비해 규모가 작은 병·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성희롱에 대한 내부 감시체계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예방 대책도 원장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며 "향후 성희롱 관련 대책에서 이런 의료기관의 특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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