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조, 시한폭탄 터지나?

2014. 8. 25. 14: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공립대 학생들이 이미 낸 기성회비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내고 잇따라 승소하고 있습니다.

이후 줄소송 전망도 우세하다. 본래 학교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 성 격의 기성회비를 등록금에 포함시켜 일괄 징수해 온 결과입니다.

모든 졸업생과 재학생 이 지금까지 낸 기성회비를 돌려받겠다고 할 경우 그 금액이 13조원에 이를 전망.

학교 측은 기성회를 파산시키는 편법으로 책임을 면하려 하고 있고, 국립대학의 교육 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에도 기성회비는 등록금 고지서에 찍혀 나왔습니다.

대학들은 최종판결이 패소로 끝나더라도 국고지원이 미약한 여건에서 기성회비 없이는 학교운영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며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개인에게 공 교육비용의 부담을 더 지게 하는 우리 공교육정책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 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

국립 부산대학교.

정문 바로 옆, 대형 건물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학교 본부와 바로 내부로 연결되는 이 건물은 지난 2009년 부산대학교가 수익형 민자사업으로 지은 겁니다.

민간 사업자가 건물을 지은 뒤 부산대에 기부하고, 대신 30년간 관리, 운영권을 갖는 형식.

대학재정도 확충하고, 노후된 문화, 복지시설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취지였지만 학교는 오히려 이 건물 때문에 큰 빚더미에 앉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상가 분양이 차질을 빚으면서 민간 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금융권이 보증을 선 학교측에 빚을 대신 갚으라는 소송을 낸 겁니다.

소송에서 질 경우 갚아야 할 돈은 대출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모두 848억원에 달합니다.

◀ 이병운 / 부산대 교수 ▶

"법인화를 대비해서 학교 재산을 늘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BTO사업을 해야 한다고 저 사업을 벌이게 된 거죠. 교수회 측이나 대학 구성원들 반대가 있을까봐 밀실에서 결정을 해버렸죠."

그런데 부산대가 담보로 제공한 것은 학생들에게 걷은 기성회비였습니다.

◀ 최재원 / 부산대 기획처장 ▶

"소위 현금성이라고 할 수 있는 기성회비에 대해 담보를 제공해달라고 요청이 있었고, 그래서 좀 급박한 상황이었던 걸로 해석됩니다. 당시 상황이."

학생들은 교육시설도 아닌 상업시설 때문에, 자신들이 낸 기성회비 수백억이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 황당해 하고 있습니다.

◀ 이승백 / 부산대 총학생회장 ▶

"진짜 답이 없죠. 계산을 해보니 학생들이 거의 한 학기에 내는 돈이더라고요. 아예 날려버린 거니까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겠다 답도 사실 안 나오고.."

'기성회비',

대학들이 부족한 학교 재정을 보완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걷어온 돈입니다.

사실 법적으론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인데도 마치 등록금처럼 일괄적으로 부과해 왔습니다.

최근 대학가가 이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 학생 ▶

(기성회비가 어떤 건지 알고 계세요?)

"학교에 투자되는 기금? 정확히 몰라요."

◀ 학생 ▶

"그냥 고지서에 있으니까 필요하니까 내는 걸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2학기 등록금 고지서.

수업료는 8만 5천원에 불과한데 기성회비는 그 30배가 넘습니다.

◀ 고재영 / 서울과학기술대 2학년 ▶

"보면서 의문점을 가지긴 했죠. 도대체 어디다 쓰는 건지를 모르는데 이렇게까지 많이 내야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기성회비는 애초 우리나라 모든 대학이 수업료와 별도로 부과했었지만, 사립대학들의 경우 지난 99년 기성회비 항목을 아예 없애고 등록금으로 일괄통합해 징수하고 있습니다.

반면 국공립대는 50년 넘게 기성회비를 분리 징수하면서 갈등이 누적돼 왔습니다.

지난 2012년 4년제 국공립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411만4500원,

이 중 기성회비가 전체 등록금의 75%에 달합니다.

기성회비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46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밭대, 한경대, 강릉원주대, 경북대 등도 350만원을 웃돌았습니다.

이렇게 전국 42개 국공립대학에서 한 해에 거둬들인 기성회비는 모두 1조 3천여 억원.

국공립대학 전체예산의 35%에 달합니다.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 성격이어야 할 기성회비가 언제부턴가 학교 재정의 주수입원이 된 겁니다.

◀ 김남근 /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

"국가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편법으로 기성회비 제도라는 것을 만들었는데,자발적으로 성금을 내는 형태가 아니라 사실상 학생이라면 반드시 내야 하고 내지 않으면 대학을 다닐 수 없게 하는..."

문제는 이렇게 기성회비를 부과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

고등교육법 11조에서는 등록금을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으로 한정할 뿐, 기성회비와 관련한 법규는 없습니다.

◀ 하주희 / 변호사 ▶

"우리 나라 법에는 그게 예컨대 산학협력기금이라든지 모두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고 모두 기금의 운영방식이 규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기성회계만 법적근거도 없이.."

이렇다 보니 쓰임새에 대한 범위도, 책임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국가 재산으로 정부의 엄격한 관리, 감독을 받는 수업료와 달리, 기성회비는 비국고회계에 분류돼, 운영에 관한 세부 사항은 각 대학 기성회 규약을 따를 뿐입니다.

대부분은 학교 시설비나, 교직원 인건비 등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강원도 4년제 국립대인 강릉원주대학교.

이 학교는 지난해 새 총장공관으로 아파트를 구입하고, 식탁, 밥솥, 에어컨 등 집기를 들이는데 기성회비 2억 4천여 만원을 무단으로 썼다가 감사원에 적발됐습니다.

심지어 관리비 4백50만원과 공관 외의 개인 주택에서 사용할 4백만원 상당의 벽걸이 TV까지 기성회비에서 빼 썼습니다.

◀ 장예지 / 강릉 원주대학교 학생 ▶

"부모님도 피땀 흘려서 버신 돈으로 저희 등록금 내주시는 거잖아요. 그 부분을 자기의 사적 용도로 썼기 때문에 저는 이해가 안 가고..."

문제가 되자 학교측은 관리비 지원을 중단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려 했지만 교수와 학생들은 총장을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 김근중 / 강릉 원주대학교 교수 ▶

"학생들의 교육과 교수들의 연구를 지원하도록 마련돼 있는 기금인데 이걸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 그건 배임을 한 겁니다. 자기 사재가 아닌데 그 돈을 가지고 자기의 생활비 용도로 사용했다면 횡령에 해당이 되죠."

이 곳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공립 대학이 교직원들의 명절 휴가비를 지급하거나, 각종 수당이나 활동비 보조 등에 기성회비를 써 온 것으로 교육부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 하주희 / 변호사 ▶

"대학들이 굳이 이걸 운영하는 매우 큰 이유 중에 하나죠. 원래 국립대학교라면 예산에 의해서 배분을 하고 그 예산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이게 감독이 돼야 하는데 기성회비는 비국고 회계로 관리되기 때문에 감독이 사실상 거의 되지 않았던 거죠."

기성회 규약에는 학부모들을 회원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기성회 운영에서 학부모들은 사실상 배제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 박범이 / 참교육학부모회 ▶

"기성회의 회원이 학부모인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학부모나 학생은 거기에 대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어떠한 통로도 없고 그런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학교도 한 군데도 없습니다."

결국 학생들이 직접 나섰습니다.

기성회비 징수도 불법이고, 집행에도 문제가 많기 때문에 기성회비를 돌려달라는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방송통신대학교에 다니는 강동근씨.

강의가 주로 인터넷으로 이뤄지는 방통대에서 기성회비로 학생들에게 매년 2천억원 가까운 돈을 걷어가는 건 심하다고 생각했고, 전국을 돌며 소송인단을 모았습니다.

◀ 강동근 / 방송통신대학교 ▶

"지난 40년간 200배 이상 기성회비를 인상한 거에요. 국고 지원은 계속 줄이면서. 지금 2010년 이후에 10%의 국고 지원금밖에 못 받고 있거든요. 그 부족분을 학생들한테 바가지를 씌워서 기성회비로 충당한 거에요."

강씨를 포함한 방통대 학생들은 지난 해 학교 기성회를 상대로 기성회비 반환청구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법원은 연달아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8개 국공립 대학 재학생 4천여명이 한꺼번에 낸 소송에서 2심까지 학생들이 이겼고, 최근 서울대, 카이스트 학생들이 별도로 낸 소송에서도 그동안 낸 기성회비 전액을 반환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 이경환 / 서울대 ▶

"기성회비 소송 1심이나 2심에서 학생들이 거의 다 이겼어요. 이게 또 기준이 돼서 계속 이런 기성회비 소송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고.."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지금까지만 20여건에 달하는 기성회비 반환소송은 점점 더 늘 것으로 보입니다.

기성회비를 낸 졸업생과 재학생 전원이 소송에 참여할 경우, 무려 13조원 규모의 초대형 소송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습니다.

추후 기성회비 납부 거부운동으로 번질 공산도 커졌습니다.

◀ 김민규 / 전남대 ▶

"기성회비를 안 내는 것은 불법이니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고, 일단 수업료만 지불하고 납부거부 투쟁을 준비하고 있고요."

대학들은 비상에 걸렸습니다.

반환 규모가 얼마나 커질 지도 문제지만 당장 돌려줄 돈도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 공동 대책회의를 연 42개 국공립대학이 유력하게 검토하기로 한 타개책은 '차라리 기성회를 파산시키자'는 겁니다.

◀ 지병문 / 전남대학교 총장 ▶

"대학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혼란이 올 수가 있어요. 학교 기성회가 감당할 수 없는 액수를 반환해야 되기 때문에 결국은 기성회는 파산할 수밖에 없고 파산하게 되면 반환을 못 하는 거죠."

더 우려되는 건 법원판결 이후에 벌어질 상황입니다.

대학들은 재판에서 최종 패소해 앞으로 기성회비를 걷을 수 없게 된다면 학교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정부나 정치권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머지않아 커다란 시한폭탄이 터질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각 학교 기성회 차원에서 감당할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

◀ 최은희 / 교육부 대학정책과 ▶

"기성회가 가지고 있는 잔여재산으로 정리를다 해야 되겠죠. 국가가 부족한 부분을 반환해 준다든지 그렇게 갈 수는 없는 사안이고요."

그러나 대학들이 부족한 정부 지원을 보완하기 위해 기성회비를 걷어온 만큼 정부가 최종 책임자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 이병운 / 전국국공립 대학교수연합회 회장 ▶

잘못 됐죠, 전제가. 국립학교 설치령에도 국가가 세운 국립대학은 재정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근데 책임을 방기한 거죠. 여태까지."

정부여당이 재작년 발의한 법안입니다.

국공립대도 사립대처럼 수업료와 기성회비를 통합 징수하고, 이 돈을 대학이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교육부는 이 법만 통과되면 향후 기성회비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 최은희 / 교육부 대학정책과 ▶

"법적근거가 확실한 수업료로 통합을 하는 방향, 통합해서 징수해서 국립대학의 교육은 할 수 있도록 해줘야 되겠다..."

하지만 이런 방안은 불법적인 기성회비를 합법화하는 꼼수에 지나지 않을 뿐, 모든 부담을 학생과 학부모에게만 떠넘긴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유은혜 / 국회의원 ▶

"국립대가 말만 국립대였지 사실 반 사립대 정도, 다 학부모들에게 전가시켜왔던 것인데, 판결이 난 지금에도 국가가 이렇게 포함시켜서 다 부담시키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공교육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해왔던 우리 교육정책의 방향을 이 참에 국가가 더 많이 부담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 지병문 / 전국국립대총장연합회 회장 ▶

"미국도 대학의 80%가 주립대학이라는 겁니다. 20%만 사립대학입니다. 우리는 이게 뒤바뀌어 있습니다. 결국 선진국과 비교하면 국가가 대학교육에 대한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 넘겨온 것이다.."

곧 불법이 될 가능성이 큰 기성회비는 이번 새 학기에도 학생들에게 부과됐습니다.

공교육의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 없이 땜질식 처방에 그친다면, 머지않아 더 큰 갈등을 불러올 거란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MBC (www.im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