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10만원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요"

2014. 6. 2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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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대희 기자]

인터뷰 중인 한성순 민주노총 충남지역노동조합 태안농협하나로마트 지부장. 우여곡절 끝에 노조가 결성됐지만 조합원은 불과 3명에 그쳤다. 마트측과 정규직의 무시와 회유, 그리고 협박이 걸림돌이었다. 그는 말했다. "밥값 10만원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 정대희

그녀는 얌전한 아줌마였다. 묵묵히 주어진 업무에만 충실할 뿐, 눈에 띄는 직원이 아니었다. 꽤 오랫동안 마트에서 근무했지만 군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본 적이 없었다. 되도록 말을 아끼는 축에 속해 동료들 사이에선 '조용한 언니'로 통했다.

그런 호칭이 붙은 데는 성격이 한몫했다. 남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소심한 여자였다. 기억하기론 학창시절부터 그랬다. 친구들 앞에 서면 얼굴을 붉히고 주뼛거렸다. 그 시절, 흔하게 꿈꾸고 시도해볼 법한 일탈 행동도 해본 적이 없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는 모범생이었다.

성인이 돼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분고분하고 조용한 아가씨였다. 집에서는 그런 그를 말 잘 듣는 딸로 여겼지만 친구들은 '숙맥'이라 놀렸다. 평범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삶이었다.

어렵게 얻어낸 '계약직' 전환... 결과는 식대비 삭감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는 현재 근무하는 대형마트에 취직했다. 이모부가 소개시켜준 직장이었다. 시골마을에서 가정주부가 할 수 있는, 손꼽히는 일터였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여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착실히 일만 한다면 수입은 꾸준히 보장됐다.

교대근무를 하며 안내데스크 일을 맡았다. 납품과 공산품 관리, 고객 안내 등이 담당업무였다. 마트서 하는 일치곤 비교적 고객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적은 편이었다. 꼼꼼하고 내성적인 성향이 도움이 됐다.

직장맘의 일상은 고됐다. 그렇지만 딱히 불만은 없었다. 마트서 일하는 아줌마들은 다들 비슷했다. 죄다 데칼코마니 같은 하루를 보냈으나 오히려 정상적이고 안정된 삶이라 느꼈다.

회사에 순종하며 시간제로 6년을 일한 어느 날. 우연히 남자직원들은 계약직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근로형태에 그런 게 있는지 처음 알았다. 마트 관리자를 찾아가 사정을 물었다.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남자는 한 집안의 기둥이어서 보다 처우가 좋은 계약직으로 채용했단다.

여자가 기둥인 직원이 서너 명 됐다. 그들을 대신해 남녀차별이라고 따져 물었다. 옥신각신 한바탕 소동을 벌어졌고 그제야 마트 측은 근로기간 5년 이상된 직원에 한해 계약직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성순씨도 드디어 계약직이 됐다. 마트 측은 계약직이 되면 처우가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시간제 동료들도 달라질 노동 대가를 기대하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시간제 근무 당시 지급되던 식대비가 삭감됐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다시 '총대'를 메고 마트 관리자를 찾아갔다. 그동안 직원들 사이에 쌓인 서운한 감정을 쏟아냈다. 마트 측은 계약직 고용에 관한 서류를 내밀며, 식비지급은 의무가 아니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처우개선이 불리하게 바뀐다는 설명은 없었다.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구내식당이 아닌 집을 이용하는 직원이 생겼다. 하지만 월급은 하루 식비 3500원이 제외된 금액을 손에 쥐게 됐다. 마트 측은 밥을 먹든 안 먹든 식비는 무조건 제외한다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일 묵묵히 하던 '조용한 언니' 변하게 한 밥값 10만 원

한성순 노조지부장은 노조결성과정에서 마트측과 정규직의 무시와 회유, 협박 등이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한 지부장은 이런 일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기 위해 직접 메모한 종이를 들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우리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지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 정대희

울분이 폭발했다. 한 달 약 10만 원의 밥값이 빌미가 돼 마트 내 비정규직이 뭉쳤다. 회의가 거듭될수록 상식 밖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처럼 월급명세서를 받지 못하는 동료가 태반이었다. 근로 계약서가 아닌 구두 계약서를 작성한 이들도 많았다. 몇날 며칠 모여 궁리한 끝에, 노동조합을 결성해 마트 측에 처우개선을 요구하기로 했다.

비정규직 노조결성 소문이 나돌자 정규직들의 회유와 협박이 시작됐다. 남자직원들은 보통 술자리에 불려가 사탕발림과 윽박질을 당했다. 여직원은 억지춘향으로 탄 퇴근차량이 꼬드김 장소였다. 그렇게 노조 결성이 무산됐고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2년 전 일이었다.

노조 결성 무산 후 상황이 돌변했다. 회사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노골적인 괴롭힘을 감내해야 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휴식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다. 매장 내 CCTV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수시로 전화해 꼬치꼬치 행동을 지적했다.

기가 막힌 일도 일어났다. 추석연휴로 풀 근무(오전 8시30분~오후 10시)를 하게 된 달이었다. 예상보다 월급이 적어 찾아가 이유를 물으니 깜박하고 시간외 수당을 빼놓았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는 일처럼 대하는 모습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됐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노조 결성을 다시 마음먹었다. 말뿐인 처우개선을 더이상 믿을 수 없었다. 또 다시 정규직의 방해가 시작됐다.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모부는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괴롭히다 못해 정당한 권리까지 짓밟으려는 정규직이 미웠다.

우여곡절 끝, 지난해 2013년 12월 드디어 노조를 결성했다. 조합원이 불과 3명뿐이지만 지부장을 맡았다. 정규직에 버금가는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뒤다. 그렇게 그는 민주노총 충남지역노동조합 태안농협하나로마트 지부장이 됐다. 그리고 시간제와 계약직, 무기계약직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싸움을 결심했다. (관련기사 : "CCTV로 감시"... 하나로마트 노동자가 거리로 나온 이유) 한편 마트 측은 CCTV로 직원을 감시했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장 등과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속사포로 말을 이어갔다. 테이블 위 주스와 커피가 이미 바닥을 보인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혹시 빠트린 내용이 있을까봐 공책과 메모장에 적어온 글을 하나하나 손으로 되짚었다. 대화의 후반부는 주로 노조결성 후 6개월 동안 일어난 마트와 정규직의 무시와 회유, 협박 등의 이야기였다. 이때 즈음, 기록을 포기하고 녹음기에 의지해 굴곡진 사연을 귀 기울여 경청했다.

밥값 10만 원이 불씨가 돼 노조지부장이 된 가정주부. 그의 이름은 한성순(39)이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TV서 1인 시위하는 사람 나오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땡볕에 왜 저리고 있나 싶고, 그 시간에 일을 하라고 타박했죠. 근데 지금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아요. 우리가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지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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