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길 함께 찾자" 82살 창간 독자의 '품격 제안'

2014. 6. 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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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한겨레 글쓰기 공모전 이끈 이영구 씨

지난달 초순 백발의 노신사가 한겨레신문사를 찾았다. 말쑥이 차려입은 상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국가적 침몰 위기를 느꼈다는 그는 대한민국호의 좌표를 찾는 글쓰기 공모전을 제안했다. 노신사는 이를 위해 10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한겨레> 창간주주이자 26년 고정독자 이영구(사진)씨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런 공모전을 어떻게 구상하시게 됐습니까?

"제가 활동하는 카톡방이 있어요. 산과 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회원이 150명 정도 됩니다. 제가 1970년대에 직장 다닐 때에는 토요일·일요일도 없이 아침 일찍 출근해서 12시 통금 걸리기 직전에 퇴근해서 신문을 제대로 못 봤어요. 요일 감각이 없으니까. 우리 일행 중에도 혹시 그런 사람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우리 집에 신문이 새벽 4시10분에 와요. 한 시간 걸려 읽으면 중요한 거 다 보고 6시 정도에 카톡방에 두세 건 올려요. 아침에 출근할 때 그거 보고 일과를 시작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카톡방 회원들에게 신문 스크랩을 해주시는 거군요.

"그렇죠. 그런데 얼마 전에 그만둬버렸어요. 세월호 사건 나고 20여일 읽어보니까 정곡을 찌르는 좋은 글이 있는데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걸로 만드는 게 한계가 있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한가하게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부분적으로 옳은 말 해봤자 소용없고 조금 더 적극적인 건 없겠냐, 이런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대한민국호가 침몰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모아서 해볼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공모전에 필요한 돈을 내놓겠다고 <한겨레>에 전화를 걸었죠."

한국전 참전한 산업화 세대이자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열혈회원세월호 참사뒤 위기 대안 찾으려'한국사회 길…'에 1000만원 쾌척"진보·보수 떠나 함께 고민했으면"

-그런데 전제조건이 한가지 있다고요?

"이 일에는 여도 없고 야도 없습니다. 진보-보수 떠나서 온 국민이 하나로 되는 걸 목적으로 돈을 내놓는 거예요."

-왜 '한겨레'에 제안을 하신 거죠?

"내가 한겨레 독자니까."

그의 나이 올해 여든둘. 6·25 전쟁을 직접 겪은 참전용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쟁이 터졌고 '제2국민병'으로 입대해 한국사의 비극을 경험했다. 76년 중령으로 예편해 민간기업에서 수출역군으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 그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이자 환경운동연합, 월드비전, 희망제작소의 회원이다. 참전용사이자 산업화 세대에게는 흔치 않은 이력이다. 그가 동년배들과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걱정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1984년 가을'이라고 했다.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84년에 큰아들이 대학에 입학했어요. 아들한테 남 따라다니는 '운동'은 하지 말라고 했어요. '공부해서 안 다음에 해라. 대학교 3, 4학년 되면 무조건 밀어주겠다'고. 그런데 경찰서에 만날 끌려가더라고. 붙잡혀가는 아들 따라다니다가 저도 그렇게 됐어요. … 원래 사람 본성이 그런 거 같기도 해요."

-한겨레와 인연은요?

"84년에도 조중동 열심히 봤고 3년 동안 믿었지. 그런데 87년 민주화운동 현장 가보니까 현장에서 본 거랑 저녁에 신문 나오는 거랑 정반대예요. 마침 국민주를 모아 새 신문 창간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삼형제 이름으로 30만원씩 모두 90만원을 냈어요. 2005년 제2 창간기금 모금 때는 네 부자 명의로 30만원씩 120만원을 추가로 보냈죠."

-한겨레를 인생의 길잡이로 여기신다고요?

"한겨레에서 책을 소개하면 그 책 사서 보고, 영화 소개하면 그거 보고, 강연 있으면 가봐요. 희망제작소에서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경험담 들려달라고 해서 '은퇴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신문 2가지를 석달만 정독해라. 그리고 신문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 신문사가 하라는 것만 하라. 그러면 큰 잘못은 없다'고 했어요. 제가 사는 것이 그르다면 그건 한겨레 책임이에요. 그만큼 한겨레가 중요해요."

-은퇴자에게 100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닌데 정말로 괜찮으신가?

"연금이 충분치는 않은데 기본은 돼요. 젊은 사람들한테 밥 사준다고 하면 자기들이 화내고 자식들이 손 안 벌리고. 감사하는 마음이에요. 중령으로 예편해서 나이 들어 처음에는 교통비라고 8000원, 1만원, 1만2000원 받았어요. 그다음에는 지하철이 무료로 바뀌었죠. '이거는 국가로부터 혜택을 너무 받는 거다,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에 나눠서 후원을 하기 시작했어요. 한 15년 넘었죠. 요즘엔 월말에 <뉴스타파>에도 후원해요. '고맙습니다'하는 메시지가 오면 엔도르핀이 나와요. 늙으면 전화도 안 오는데."

-300명이 황망하게 죽어간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나라의 존재를 되묻는 이들이 많은데요.

"현충일이면 국립묘지를 찾습니다. 한국전쟁 때 갓 열아홉, 스무살이던 친구들이 누워 있죠. 그 전쟁이 외부로부터 기인한 국난이라면, 세월호 참사는 내부에서 기인한 국가적 위기입니다. 내가 직접 대안을 내지는 못하지만 그런 작업에 필요한 수고비라도 부담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빚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가지고 정말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해봤으면 해요. 이 나이에 이런 거라도 한번 해서 어느 정도만이라도 결과가 나오면 고맙겠어요. 잘되지 않더라도 잘되어가는 싹이라도 보는 게 간절한 소망이지요."

<한겨레>는 이씨의 뜻을 받아 '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에세이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분량에는 제한이 없으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전자우편( way@hani.co.kr)으로 접수한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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