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바로 내 앞에서 했다"

입력 2014. 5. 15. 20:17 수정 2014. 5.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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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병한 기자]

세월호 사고 당시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은 인명 피해를 키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생존자 한승석(38)씨는 그 문제의 방송이 어떻게 나가게 됐는지를 바로 코앞에서 본 목격자다. 기자는 지난 2일 제주도의 한 병원에서 한씨를 만났다. 그에게 사고 당시 안내 방송을 언제 들었냐고 묻자 답답하다는 듯이 "바로 내 앞에서 방송했다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4월 16일 오전 자동화물 기사인 한씨는 여느 때처럼 컵라면을 먹기 위해 3층 로비에 있는 매점의 온수통으로 갔다. 다른 제주도 화물기사와 마찬가지로 그는 세월호를 한두번 탄 게 아니었다. 배도, 항로도, 모두 익숙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승객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박지영(22)씨 등 승무원들과도 안면이 있었다.

컵라면에 물을 넣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좌현으로 기울었다. 하필 온수통은 매점의 오른쪽 벽에 있었고, 같이 갔던 동료 2명에게 온수통이 엎어졌다. 문 손잡이를 잡고 버텼던 한씨는 매점을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안내데스크 벽에 기대고 섰다. 동료 2명은 다리에 큰 화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안내데스크에는 박지영씨와 방송 담당 승무원 강혜성(33)씨가 있었다. 한씨의 증언이다.

"지영이한테 그랬다. '야, 뭔일인데? 빨리 무전 쳐봐!' 우린 알거든. 승무원들이 무전기로 서로 왔다갔다 하는 거, 다 알거든. 지영이가 무전을 쳐. 근데 조타실에서 답이 없어. 그 때부터 계속 반복이었다. 무전 쳐봐라, 답이 안와, 또 쳐봐라, 답이 안와... 뭐 이제 와서 선장이 탈출 지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내가 똑똑히 봤다. 처음부터 계속 무전을 쳐도 저쪽에서는 아무런 답이 안왔다. 우리가 계속 벽에 기댄 채 서있었다. 지영이는 죽을 때까지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안내 방송의 발신지는 그곳이었다. 한씨에 따르면, 그 방송은 여기저기서 불안해서는 학생들을 안정시키려는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영이 옆에 안내 매니저 강혜성이 있었다. 지영이가 아무리 무전을 쳐도 답이 없으니까 그 친구도 계속 대기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잖아. 우리랑 똑같은 처지잖아. 무전으로는 아무런 지시가 없고,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울고불고 하니까, 안정시키려고 그 방송을 한거다. 여러번."

한씨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그 방송이... 내가 보기에는 그 친구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선장 오더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선장 새끼는 탈출을 하고..."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갔다. 배는 점점 기울었다. 그런데 왼쪽 갑판으로 나가는 문 쪽 벽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밖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조심조심 미끄러져 내려가보니 이미 3층으로 물이 넘어오고 있었다.

"3층이라고는 하지만 해수면에서는 꽤 높아 약 5층 건물 높이다. 그런데 처음 기울었을 때 거의 가까이 붙었었다. 그러다 점점 더 기울어, 급기야 해수면이 더 높아진 거다. '야, 배 침몰하잖아! 다 뛰어들어!'라고 외치고, 뛰어들었다."

그는 수영을 잘 했다. 해경 구명보트로 구조됐다. 화상을 입었던 동료 2명도 살아나왔다. 모두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로비에는 비치된 구명조끼가 없어, 배의 선두 큰 방에서부터 (구명조끼가) 손에서 손으로 전달됐지만 그 수가 모자랐다고 한다.

한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3층 로비에는 약 30여명이 있었다. 학생들도 많았다. 매점에는 기울어진 냉장고에 깔린 학생도 있었다는 것이 한씨의 증언이다. 그는 안내데스크 벽에 같이 기대있는 한 여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여학생 이름이 박??이다. 왜 이름을 기억하냐면, 내 전화기를 빌려서 전화했다. 그 아이, 아마 못나왔을 거다."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구명조끼는 입혔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내가 뛰어들 때 이미 해수면이 머리 위 2미터였다. 물 위로 뛰어드는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물 사이로 들어가는 거다. 솔직히 겁나더라. 당신 같으면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무서워서 못 들어갈수록 올라가야 할 수면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 배의 우측으로는 갈 수 없었는가.

"상식적으로 위로 올라가면 산다는 건 안다. 그런데 잡을 데가 없었다. 올라가려면 미끌어지고, 미끌어지고."

인터뷰 후 확인한 생존자 명단에는 한씨가 말한 여학생의 이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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