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나고 모욕당해도, 딸을 위해 버틸 거예요

2014. 5. 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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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르포

어느 구걸인의 하루

▶ 지하철에서 구걸인을 만나면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마음이 불편해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여기 시각장애인인 동시에 오른손마저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대학생 딸과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에서 껌을 파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그의 하루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취재는 지난달 10일에 했지만 세월호 사고 때문에 기사 게재가 많이 미뤄졌습니다.

덜커덩덜커덩. 육중한 철들의 마찰 소리와 함께 서울 지하철은 어두운 터널을 뚫고 달린다. 열차 내 승객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휴대전화 화면에 빠져 있거나 잠을 청한다. 소음 한가운데에 건조한 적막함이 공존하는 곳이 지하철이다.

열차 벽을 따라 길게 배치된 의자에 앉은 승객들 앞으로 한 여인이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 걸어온다. 손가락이 두개만 남은 오른손은 종이 무더기를 쥐었다. 여인은 왼손으로 종이 한장을 집어들어 허공에 종이를 들이밀다 이내 떨어뜨린다. 승객들은 자신의 허벅지나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들어 익숙한 듯 살펴본다. 몇몇 이들은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든다.

지하철에 뿌려진 종이 전단지는 승객에게 말을 건다. "죄송합니다. 저는 왼쪽 눈 실명과 오른쪽 눈 1m 식별 불가능한 의료 (시각장애) 1급 판명자로 오른쪽 손 절단과 어린것도 엄마 같은 시력장애자입니다. 식생활을 해결할 수 없어 이렇게 나섰습니다. 모녀에게 희망을 주시면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눈 실명으로…모녀에게 희망을 주시면…"누군가가 천원짜리를 준다그는 400원짜리 껌을 건넨다껌을 안 받는 사람도 있다2013년 구걸행위 단속 319건2008~2012년 단속 74건 불과경범죄처벌법이 개정된 뒤지하철 구걸 단속이 늘었다그는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방향감각 잃고, 이미 지나온 열차 칸으로

전단지를 쓴 이는 20년째 지하철 구걸인의 삶을 살고 있는 심명자(가명·60)씨다. 그는 승객에게 천원을 받고 400원짜리 껌을 건넨다. 껌을 받는 승객도 있고 받지 않는 이도 있다. 심씨는 일주일에 서너번 나와 구걸을 한다. 그에게는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딸(24)이 있다. 딸이 돌을 맞던 1991년부터 구걸을 하며 딸을 키웠다. 딸은 이제 대학생이다. 심씨는 딸이 대학을 졸업해 자력이 생길 때까지만 구걸을 하고 싶다.

우리 눈의 홍채는 카메라의 조리개 구실을 한다. 이게 없으면 약한 빛에도 눈이 부셔 앞이 안 보인다. 심씨는 어렸을 때부터 무홍채증을 앓았다. 오른쪽 눈은 24년 전 백내장을 앓아 실명 상태고 그나마 시력이 조금 있는 왼쪽 눈마저 최근 백내장과 녹내장이 함께 왔다. 아주 약하게 존재하던 왼쪽 눈의 시력도 곧 실명이 될 예정이다.

"앞이 1m도 안 보여요. 어두움과 밝음 정도만 구별할 수 있지요." 심씨를 만난 것은 지난달 10일 서울 지하철 당산역의 한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그는 구걸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자가 손을 잡기 전까지 기자가 옆에 와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손을 잡자 그에게 오른쪽 손가락이 두개만 남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28살 때 한 식품회사의 기계실에서 일했어요.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잘려버렸어요." 남은 손가락 두개도 온전하지 않고 손가락 형태만 간신히 남았을 뿐이다. 구걸은 어떻게 시작한 것인지 물었다. "아이 아빠는 돈을 벌 능력이 없었어요. 아기 분유라도 사 먹여야 해서 시작했어요. 시내에서 껌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는 앞이 잘 안 보여서 버스에 비해 좀 덜 흔들리는 지하철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딸을 업고 껌을 팔러 다녔어요. 동네 복지관의 어린이집에 딸을 맡기고 싶었지만 신청이 늦었다며 받아주지 않았어요."

오후 1시30분. 심씨는 당산역에서 잠실 방향의 2호선 열차를 탔다. 오후라서 열차 안은 크게 혼잡하지 않았다. 겨우 눈앞의 아른거리는 불빛 정도만 식별하는 심씨는 승객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향해 걸어갔다. 승객들은 그가 내려놓은 전단지를 바라보았다. 승객들은 대체로 호의적인 듯 보였다. 열차 한칸에 2~3명의 승객이 심씨에게 천원짜리 한장을 건넸다.

심씨가 책을 읽고 있던 여성(39) 앞을 지나갔다. 여성이 들고 있던 책 위에 전단지를 내려놓았다. 여성은 심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원짜리 한장을 쥐여주었다. 심씨가 "고맙습니다" 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여성은 미국에서 십여년 만에 한국으로 들어온 동포였다. "아직도 한국에 어려운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네요." 그는 독서를 방해받았지만 짜증을 내지 않았다. "승객이 붐비는 시간대가 아니니까 이 정도는 국가에서 봐줘도 되지 않을까요."

심씨는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 승객 무릎 앞에 떨어뜨린 광고지를 제대로 수거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몇몇 승객들은 주워주기도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승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심씨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오후 2시께 심씨는 방향 감각을 잃고 이미 지나온 열차 칸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한 승객이 "여기 다녀가셨어요" 하고 알려주자 그는 원래 가던 방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오후 2시10분께 심씨는 처음 탄 열차에서 내렸다. 잠실나루역 승강장의 빈 의자에 앉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준다'고 말을 건네자 심씨는 "오늘은 운이 좋다"고 답했다. 평소의 두배 정도 손님들이 돈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심씨는 말했다. 심씨는 그러나 웃지 않았다.

"(구걸을) 단속하는 지하철 보안관이 있어요. 단속을 당하면 경찰에 고발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날 번 돈을 홀랑 벌금으로 내야 해요."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3월 구걸하는 사람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가난을 처벌하는 법'이라는 비판이 일었지만 법질서 강화라는 명분에 밀려 이제 구걸은 범죄 행위로 단속 대상이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심씨의 지갑 주머니에는 범칙금납부통고서 두장이 담겨 있었다. '2013년 4월18일 신림에서 봉천으로 가는 열차에서 구걸을 하다 단속돼 5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적힌 서울 관악경찰서 발행 통고서와 '2013년 10월15일 뚝섬역을 지나던 지하철에서 구걸을 하다 단속돼 8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고 적힌 서울 성동경찰서 발행 통고서였다. 적용 법조는 경범죄처벌법 3조1항18호였다.

"3월11일 밤 12시께 열차에서 구걸을 하면서 집(당산역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선릉역을 지나는데 지하철 보안관이 나타나서 저를 쫓아냈어요. 저는 이번 막차를 놓치면 집에 갈 수 없다고 사정했지만 제 두 팔을 붙들고 역 밖으로 내쫓았어요. 제 (시각장애인 1급을 증명하는) 복지카드를 보여주면서 제발 열차에서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보안관은 '승차를 거부하겠다'고 했어요. 정말 서러웠어요."

상인들과 마주치는 건 일부러 피해

경찰청 자료를 보면, 구걸행위 단속 건수는 지난해 319건에 이른다. 2008~2012년 구걸행위 단속 건수(2013년 3월 이전에는 구걸을 시킨 사람을 단속)를 모두 합친 74건보다 크게 늘었다. 심씨는 경범죄처벌법이 개정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세상이 각박해져 단속이 늘어난 것 아닌지 추측하는 게 전부였다.

오후 2시40분. 심씨는 다시 2호선 선릉역 방향 열차에 올랐다. 아까보다는 승객이 좀 많았다. 승객이 많으면 안 된다. 사람과 부딪히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승객들의 짜증이 늘면 신고가 들어갈 수 있어 심씨는 조심스럽다.

오후 2시53분. 열차가 선릉역에 다 와갈 때 검은 점퍼를 입은 지하철 보안관이 심씨 앞에 나타났다. 그는 심씨에게 "내리세요"라고 차갑게 말한 뒤 더이상의 말이 없었다. 심씨는 익숙한 듯 한마디도 대항하지 않고 열차에서 내렸다. 쫓겨나는 심씨가 안타까운 듯 한 승객이 천원짜리를 급히 심씨의 손에 쥐여주었다. 보안관은 제지하지 않았다.

보안관은 심씨가 완전히 개찰구를 나갈 때까지 심씨의 뒤를 쫓았다. 둘 사이엔 침묵의 대화만 오고 갔다. 쫓아내는 게 당연하고, 쫓겨나는 게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다. 심씨가 온전히 역사 밖으로 나가자 보안관은 곧 사라졌다. 심씨가 말했다.

"그래도 저 양반은 좀 얌전한 편이네요. 그냥 쫓아내기만 하잖아요. 구걸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바로 경찰에 보내버리는 보안관들도 많아요." 심씨는 잠시 쉰 뒤 이내 다시 열차를 타고 2호선과 3호선 교차역인 교대역으로 향했다.

2호선 삼성역과 신림역 사이 열차를 타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있다고 심씨는 말했다. 서로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심씨는 일부러 그쪽은 피한다. 구걸인과 상인 사이 따로 정해진 (영업) 구역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인들과 마주치면 상인들이 심씨에게 욕을 한다고 심씨는 전했다.

시각장애인에게 벽에 붙은 난간과 바닥에 붙은 점자판은 무척 소중하다. 그게 없으면 엉뚱한 데로 갈 수 있고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힐 수도 있다. 신씨는 2호선 교대역에서 3호선 교대역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가던 도중 심씨는 기자에게 자신을 '구걸인'이라고 절대 부르지 말라고 부탁했다. 엄연히 껌을 팔고 있는 것이지 구걸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오후 3시30분께 교대역에서 오금역 방향의 3호선 열차를 탔다. 구파발행보다 오금행 열차를 타야 승객이 덜 붐빈다. 심씨는 전단지를 뿌리고 승객들이 천원짜리를 건네는 모습이 반복됐다. 오후 4시께 경찰병원역에서 내렸다. 3호선 종점이 가까워오자 승객이 거의 없었다.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다시 교대역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려고 하다가 심씨가 작은 부상을 입었다. 경찰병원역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이 다른 역에 비해 넓었다. 열차의 바닥인 줄 알고 디딘 심씨의 발이 틈 사이로 쑤욱 하고 빠져버렸다. 심씨의 허벅지까지 깊이 발이 빠진 모습을 보고 기자가 황급히 심씨를 부축해 끌어올렸다.

심씨는 요즘 다치는 곳이 많다. 갈수록 실명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어 걸어다니는 게 힘들다. 예전엔 매일 구걸을 나왔지만 5년 전부터는 하루 걸러 하루씩만 나오고 있다. 하루 10시간가량 걸어다녀야 하기 때문에 다리에는 늘 파스투성이다.

오후 4시30분 몸을 추스른 심씨가 다시 대화행 3호선 열차를 탔다. 구걸이 창피할 때는 없는지 심씨에게 물었다.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감내해야 할 일이지요. 손가락도 없고 앞이 안 보이는데 애를 키울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요. 그래도 서울 지하철 시민들 덕에 우리 모녀가 살아가는 것이니 감사할 뿐입니다." 오후 5시26분께 한 할아버지가 심씨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고 살라"며 천원을 건넸다. 심씨는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심씨는 손사래를 치며 전단지를 받지 않겠다고 의사를 표현하는 승객에게도 전단지를 내려놓았다. 잠을 자고 있는 승객에게도 전단지를 내려놓았다.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은 억지로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으로 오해할 것 같았다. 심씨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보안관이 보여도 도망갈 수 없을 만큼 시력이 나빴다.

오후 6시30분. 심씨가 도곡역에서 내렸다. 승강장 구석진 곳의 의자를 찾아 앉았다. 메고 있던 낡은 가방에서 떡과 음료수를 꺼내어 먹었다. 직장인 퇴근 시간에는 열차 안이 붐비기 때문에 구걸을 멈춘다. 그때가 심씨의 저녁식사 시간이다. 심씨는 20년 동안 껌을 팔아 딸을 대학까지 보냈다. 정부로부터 생활보조금이 60여만원 정도 나오지만 이것으로는 간신히 생존만 할 수 있고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20년 동안 꾸준히 저축해 심씨는 최근 2천만원을 저축할 수 있었다. 그러자 주민센터는 심씨의 생활보조금 액수를 대폭 깎았다. '정부의 생활보조를 계속 받으려면 돈을 모아선 안 되는 건가?' 심씨는 요즘 이게 가장 속상하다.

역무원 "왜 안 보이는 척하느냐"

밤 10시께까지 3호선 열차를 타고 왔다갔다 하는 일정이 반복됐다. "오늘따라 눈이 너무 부시네요. 힘들어요. 오늘은 11시까지만 하다 들어가야겠어요." 바짝 마른 입술을 움직이며 심씨가 말했다. 보통은 자정까지 일하다 돌아가지만 이날 심씨는 많이 지친 듯 보였다.

밤 10시30분. 심씨가 탄 3호선 대화행 열차가 동대입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보안관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전단지를 모두 압수했다. 기자가 나서 "그냥 구걸 행위만 제지하면 되지 꼭 전단지를 압수해야 되느냐"고 묻자 보안관은 "압수하지 않으면 이분은 구걸을 멈추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안관은 심씨가 누군지 잘 아는 듯했다. 얼굴을 구별할 수 없는 심씨는 이 보안관이 전에 만난 보안관인지 알 수 없었다.

보안관은 심씨를 역무실로 데려갔다. 경찰에 고발할 것이라 했다. 역무실에 들어서자 한 역무원이 심씨에게 "왜 안 보이는 척 행동하냐"고 윽박질렀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심씨가 격분했다. "지금 뭐라 그랬어요. 제가 연극하는 것 같나요. 저랑 (1급 시각장애 진단을 한) 세브란스를 갑시다." 기자가 역무원과 심씨의 실랑이 장면 사진을 찍자 역무원들은 사진을 지울 것을 요구했다. 사진을 지우면 심씨를 풀어준다는 역무원의 제안을 받고 사진을 지웠다. 심씨는 풀려났다.

서울메트로 질서유지팀 김성훈 선임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승객의 신고가 있어 단속을 안 할 수 없다. 단속되면 무조건 경찰에 인계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구걸을 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돌려보내기도 한다. 너무 자주 눈에 띄는 분들은 경찰에 고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밤 11시가 넘었다. 힘겨웠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20년을 이렇게 살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그의 삶의 기둥이 되어준 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딸을 위해서 버틸 거예요. 그냥 속으로 삭여야지요. 어차피 저분들도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있다고 이해해요."

전단지를 빼앗겨 홀쭉해진 가방이 심씨의 허리춤에 힘없이 붙어 있었다. 심씨의 집으로 가는 열차가 덜커덩덜커덩 소리를 내며 달렸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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