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자꾸만 눈물이 나요" 전국민이 우울 증후군

2014. 4. 3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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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희생자 가족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절망ㆍ분노ㆍ부정 등 복잡한 심리…

ㆍ"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 공감해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수용. '죽음' 연구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마주한 사람은 다섯 단계의 심리적 태도를 보인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죽음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다,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닫고 분노하기 시작한다. 분노가 잦아들면 다른 것을 희생해서라도 죽음이라는 사실만을 되돌리길 간절히 바라는 타협의 태도가 나타나고, 뒤이어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깊은 절망감과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정들을 겪고 나서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것은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섯 단계가 반드시 순서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지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이 보이는 반응에서는 분노와 우울, 부정과 타협의 모습이 뒤섞여 나타났다.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에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4월 22일 오전 8시부터 안산 한도병원에선 단원고 2학년 김모양(17)과 이모양(17)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운구가 발인을 마치고 병원을 떠날 무렵 유가족과 친지들의 비통함은 주변을 뒤덮었다. 운구차가 단원고에 들어서고 김양의 영정과 유족들은 김양이 수업을 받던 교실과 교정을 돌았다. 이들을 지켜보던 교사들과 학생들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한 교사는 눈물 사이로 입술을 떼려다 이내 손사래를 쳤다. "너무 아파요…. 죄송해요. 못하겠어요." 운구차가 떠난 교정에는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교사와 학생들, 그리고 생환을 기원하는 쪽지와 꽃다발이 남겨져 있었다.

촛불 시민 "이렇게라도 나와야 위로가 돼"

이날 먼저 발인을 마친 운구가 장지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음날 발인을 앞둔 유족과 친지들의 눈시울도 같이 붉어졌다. "조카와 같은 학년 친구였을 텐데 이렇게 한꺼번에 보내나,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운구차가 병원 밖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탄식하듯 말을 꺼낸 단원고 희생자 학생의 외삼촌인 황모씨(46)의 입에서는 더 이상의 말 대신 깊은 한숨만이 연거푸 터져나왔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희생자의 이모 유모씨(42)도 "같은 학교 선·후배 학생들이 조문하러 와서 교복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내가 봐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부모는 오죽하겠어"라며 "진도에선 너무 마음이 괴로워 '시신이라도 빨리 봤으면'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런 생각한 게 너무 미안하고 사무친다"고 말했다.

줄어드는 실종자 숫자가 늘어가는 사망자 숫자로 바뀌어 가면서 안산은 도시 전체가 비탄에 빠졌다. 안산 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는 시민들 가운데는 희생자들과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도 많았다. 23일 오후 분향소에서 만난 김재선씨(39)는 "같이 일하던 형님네 아들 한 명이 아직 실종상태란 말을 들으니 도저히 남의 일이 아니다 싶어 여기도 들렀다.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선 그 교회서만 학생 십수명이 사고를 당했다는데, 단원고뿐만 아니라 안산시 전체 학생들이 엄청나게 마음을 다친 거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기원하는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안산뿐 아니라 서울, 부산,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고 실종자들의 귀환을 기원하는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책 없는 정부에 진짜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그 화가 가슴속 깊이 꽉 차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국민들도 아무리 화를 내도 (희생자들이) 돌아가신 걸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23일 오후 7시 서울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도 하나둘씩 켜지는 촛불이 드리우는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대학생 이희진씨(23)는 중간고사 시험기간이지만 분노와 무력감이 겹쳐 공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서 나온 거죠. 추모제 자리라도 나와야 마음 가라앉히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글을 메모지에 써붙이던 직장인 최모씨(34)는 세월호 침몰 이후 직장 사무실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만 해도 구조 기대도 있고 해서 그래도 좀 밝게 사고에 대해 얘기하던 분위기였는데, 점점 (생환) 가능성이 낮아지는 게 보이니까 아예 무거운 얘기를 피하려고 하죠." 가볍게 나오는 농담에도 뼈가 실려 있다. "업무용 카톡방에서 과장님이 농담 삼아 '이민 가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써놨지만 노란 리본 (프로필 사진을) 달고 한 말이라 그런지 웃지를 못했다."

사회시스템 근본적으로 수술해나가야

비탄과 우울이 전 국민에게 확산되고 있지만 정신적·심리적인 지원이 가장 필요해 보이는 실종자와 사망자 가족들은 오히려 심리상담 등의 지원을 받을 여력이 없는 상태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에겐 무엇보다 앞서 휴식과 안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분들에겐 아직 외상이 끝나지도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구조와 인양작업 이후에도 해운사와 보험사를 상대로 싸울 일이 남아 있다"는 하 교수는 "먼저 휴식과 안정을 취해 신체적인 위기부터 해결한 뒤, 같은 고통을 겪은 희생자 가족들이 함께 뭉쳐 서로를 지탱할 수 있게 시민사회가 이들 공동체를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도 현장에서 지원활동을 펼친 서울대병원 의료지원단 소속의 한 의사도 현재 희생자 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인 차원의 공감"이라며 "사태가 지나고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지면 그때부터 유족의 고통은 더 커진다.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국민들 개개인 자신을 위해서라도 함께 공감하고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우울증후군에 대한 해법 역시 단시간에 찾을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월호 침몰사고 이전부터 경주 리조트 붕괴 참사 등 인재가 겹치면서 쌓인 한국 사회의 안전체계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 것이기에 긴 안목을 가지고 근본적인 부분부터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현 교수는 "국민들이 느끼는 우울감은 하루 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심해지는 것"이라며 "묘책이 없는 이상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사회 시스템을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부정하고 분노하다, 타협을 생각하지만 우울감에 빠지는 일련의 단계를 지나 아프지만 문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만 해결을 향해 한 발짝 내딛는다는 것이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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