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식음전폐에 불면증까지..집단우울에 빠진 대한민국

2014. 4. 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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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및 40~50대 학부모 '대리외상증후군' 시달려

[CBS노컷뉴스 김수영 기자]

경기도 안산에 사는 이모(46·여) 씨는 지난 16일부터 사흘밤을 뜬 눈으로 지샜다.

이 날은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날이자 초등학교 5년생인 이 씨의 아들이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날이기도 했다.

하루종일 통화가 되질 않아 속을 태우게 만들었던 이 씨의 아들은 이날 저녁 늦게서야 "손가락 끝을 다쳤다"며 전화가 왔고, 아이가 돌아오는 19일까지 이 씨는 식음을 전폐하며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 씨는 "방에 불을 끄면 깜깜한 세월호에 갇혀 떨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나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잠이 오질 않았고, 사흘 뒤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겠지만 당장 눈앞에 없는 아이 걱정에 아무것도 넘길 수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아이가 손가락 끝만 다쳤는데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생때같은 아이를 가슴에 묻은 부모들의 마음은 어떻겠냐"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여객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임시 분향소에 28일 비가오는 가운데에도 이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집에 자주 놀러오던 아이가…" 생업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고통

아이들이 수몰되는 끔찍한 장면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본 충격은 단원고 학생 등 피해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와 비슷한 연령층의 학부모들과 청소년들이 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중학교 3학년생, 고등학교 3학년생 두 자녀를 둔 한모(55·여) 씨 역시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열흘 넘도록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 자식만 같고, 오열하는 부모들을 보면 '내 아이가 탔다면'이라고 생각하며 깊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씨는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부모의 마음은 같다"며 "혹시라도 구조됐을 아이가 있을까 해서 밤새 텔레비전을 켜놓고 선잠을 자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과 친분이 있는 이들은 세월호 생존자의 정신적 외상 못지 않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형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인 '생존자 증후군'과 같은 정신적 외상을 겪게 되는데 피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의 가족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같은 트라우마는 피해자들과 근거리에 있는 이들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중학교 1학년생과 고등학교 1학년생 두 자녀를 두고 있는 호모(55) 씨는 고등학교 1학년생 아들 친구의 누나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제대로 된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던 호 씨는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왔는데 (수학여행을 갔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설마설마했는데 어제 아들에게 친구 누나(시신)를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세월호 사고 이후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도 텔레비전만 보면 가슴이 '둥둥' 뛰었는데 (소식을 듣고) 텔레비전을 보면 가슴이 뚫릴 것처럼 아프다"고 말했다.

호 씨는 "잠도 잘 오지 않고 일을 하고 있어도 계속 눈물이 난다"며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일도 손에 안 잡힌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한창 꽃필 나이에 (사고를 당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흐느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에서 학부모 등을 상대로 상담 등을 진행했던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정신건강의학과 손지훈 조교수는 "봉사자들은 대부분 '저기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에 현장에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에게 더 크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며 "피해학생 가족들처럼 무력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피해학생 가족들과 자원봉사자 등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분당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의태 교수도 "가족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자원봉사자들 역시 가족들과 비슷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특히 자녀가 피해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대일 경우 더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나 청소년들은 참사의 충격에 더욱 취약한 상태다.

오모(17) 양은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한참을 흐느끼더니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내 나이의 친구들이 살아있는 데도 안 구해주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짜증난다. 애들 죽이러 가는거지 왜 거기에 가는거냐"고 울분을 토했다.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차려진 임시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차모(12) 양은 "언니 오빠들이 세월호에서 그 일 때문에…마음이 너무 속상하게 왔다"며 울음을 터트렸고, 이모(12) 양은 "언니 오빠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한동알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 세월호 침몰 참사로 수많은 희생자들을 낸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가 24일 사고이후 첫 등교를 시작한 가운데 학교 주변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적을 기원하는 메모와 노란리본을 보며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피해자들 고통에 공감, 당연한 현상…한달 이상 지속되면 전문가 찾아야"

전문가들은 당사자가 아니라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바라보면 누구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며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트라우마, '대리외상증후군'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3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는 생존자들과 현장을 목격한 뉴욕 시민들 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미국 국민 절반이 정신적 충격에 시달렸다.

테러 발생 한 달 뒤 조사에서도 맨해튼 거주 성인의 9.7%가 우울증을, 7.5%가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사건 4~6개월 후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은 다소 줄었지만 술의 소비량이 늘기 시작했고, 사건 1년이 지난 뒤부터 PTSD와 우울증이 다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1월 강도 7.0의 지진으로 전체 인구 900만명 중 1/3을 잃은 아이티 역시 생존한 이들의 1/5는 심각한 PTSD에 시달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더 잘 하고, 이런 이유로 트라우마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단원고 학생 또래나 그 나이대 자녀를 둔 이들이 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이같은 현상이 한달 이상으로 장기화될 경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회 위원장인 육성필 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위기관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트라우마의 영향을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다고 했지만 우리나라는 공동체나 연대의식이 더 강하고 사고 이후 전 언론에서 사고 내용을 보도했기 때문에 전 국민이 2차 자극(스트레스)에 노출됐다고 보면 된다"며 "갑자기 불안해지거나 가족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고민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증상 보이면 인근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필요하면 약물치료 뿐 아니라 상담치료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과 교수(전문의)도 "사람에게는 공감능력과 감정이입 능력이 있기 때문에 사고를 당한 이들에 대해 감정이입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또래 자녀를 둔 부모나 학생 등 피해자, 피해자 가족과 유사성이 많은 사람일수록 감정이입이 강하게 일어나는데 과민반응이나 무력감 등이 한달 이상 이어지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세월호 보도 등 간접적인 경험만으로는 외상후스트레스반응이 나타날수는 있겠지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국민들이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실망 등으로 집단 트라우마를 받은 것은 맞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같은 충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덧붙였다.syk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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