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침몰]학부모의 절규 "떠날 거예요..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진도 입력 2014. 4. 23. 06:12 수정 2014. 4. 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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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부모인 줄 알았는데 지키지도 못했다.. 정부·언론 모두 믿을 수 없어요"

[진도=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에서 지쳐보이는 실종자 가족이 구조소식을 기다리며 눈물짓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세월호 침몰 1주일, 지지부진한 정부의 수색작업은 "남 부럽지 않게 키웠다"고 자부하던 한 엄마를 "내 새끼도 지키지 못하는 부모"라며 자책하게 바꿔놓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모(50·여) 씨는 백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의사 공부를 하는 큰딸, 판사가 꿈이라며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작은딸을 위한 기도였다.

"1주일 전만 해도 내 자식들에게 유능한 부모라고 생각했어요. 발버둥 쳐서 이렇게 왔는데, 정말 남 부럽지 않게 내 딸 인재로 만들어놨는데…".

지금 김 씨는 진도항에 있다. 단원고 2학년인 작은딸이 저 바다 깊이 가라앉은 세월호에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후 사흘 동안 김 씨는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울부짖었다.

견디다 못한 남편이 쓰러졌다. 말을 더듬고 눈이 풀린 채 온몸이 경직된 남편 앞에서 김 씨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다.

"남편 때문에 눈물을 참다 더는 참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숨어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울어요. 화장실에서 울고 눈을 닦는데 눈을 뜨자마자 '아직도 우리 딸이 저기 있네'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확 쏟아져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아요".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어도 딸 얘기를 할 때마다 김 씨는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옷 한 번 사달라고 한 적 없던 딸이다. 용돈을 달라 할 나이에 공부 열심히 해서 받아온 장학금을 엄마 보약 먹으라고 내밀던 딸이다.

"딸이 TV 틀어놓고 스마트폰 만지면 제가 '전기 먹는 하마'라고 놀렸거든요. 그때마다 '엄마 미안해'라고 말했는데… 내가 이제 집에 돌아가면, 며칠 전에 봤던 그 모습을 이제 볼 수 없잖아요".

"내 친척이든 친구든 주변에 멀쩡하게 자식 살아있는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요. 솔직한 심정으로 누구라도 날 건드리는 사람 있으면 칼 가지고 찔러 죽이고 싶어요".

그렇게 진도항과 체육관을 오가며 보낸 1주일. 김 씨의 결론은 "나는 내 새끼도 지키지 못하는 못난 부모"였다.

"내가 참 못난 부모구나, 자식을 죽인 부모구나. 이 나라에서는 나 정도 부모여서는 안 돼요. 대한민국에서 내 자식 지키려면 최소한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해요. 이 사회는 나 같은 사람은 자식을 죽일 수밖에 없는 사회에요".

"저 동정받을 사람 아니에요. 나 60평짜리 아파트 살아요. 대학교에서 영문학 전공했고, 입시학원 원장이고 시의원 친구도 있어요. 이 사회에서 어디 내놔도 창피할 사람 아니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저주스러워요. 우리 딸 나오길 기다리는 한 시간 한 시간이 피를 말려요".

↑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레째인 22일 오전 전남 진도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김 씨는 이제 더는 정부도 믿을 수 없었다.

"능력이 없어서 못 하면, 한 명이라도 구하겠다고 애쓰면 저 사람들도 귀한 목숨인데 감사하죠. 그런데 구조 매뉴얼도, 장비도, 전문가도 없다면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헬리콥터 10대를 띄웠다'고 하는데 믿을 수 없어서 가족 대표가 가보면 1대도 없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와서 잠수부 500명을 투입했네 해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내 자식을 놓을 수가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리면 또 거짓말이에요. 그렇게 날이 지나서 애들 다 죽었어요".

꼼짝도 않는 정부에 던진 달걀이 바위를 더럽히지도 못하는 심정. 김 씨는 대한민국을 버리겠다고 말했다.

"다 정리하고 떠날 거에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못 믿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남들 눈에는 뻔한 거짓말이라도 확인받고 싶은 부모 마음을 미개하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이 답답했다.

"부모들이 오보에 놀아난다는 식으로 보도해요. 정부는 정말 잘하는데 부모들이 조바심이 난다고요. 290명 넘게 갇혀있었는데 한 명도 못 구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구조하겠다는 의지도 없이 구조한다고 발표한 걸 그대로 받아서 방송에서는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고 거짓보도 했어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탓하던 김 씨는 '이 나라에서는 언제든지 당신도 나처럼 자식을 잃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t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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