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소수자다"

2014. 3. 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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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정연순의 말하자면] 공익인권변호사 단체인 '희망법'의 한가람 변호사"소수자를 위한 싸움은 실은 우리 모두를 위한 거예요"

어느새인가 우리 주변에 공익활동을 전담하는 변호사나 모임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2012년 2월에 창립한 공익인권변호사 단체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도 그중 하나입니다. 7명의 변호사와 1명의 상근자가 활동하는 이 사무실을 대표해서 한가람(36) 변호사를 만나보았습니다. 한 변호사는 국어 교사를 하다 뜻한 바(?)가 있어서 변호사로 전업했다고 합니다.

"인권활동 하다보니 법에 관심이"

- 이력이 범상치 않아요. 법대를 졸업했으나 사범대학으로 편입해서 교사가 되었다가 다시 변호사가 되었어요.

= 고등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원해서 법대를 지원했죠.

- 효자였군요. 대학에서는 법률에 대해 매력을 못 느꼈나요.

= 그때는 주위에서 가라고 해서 간 거라 흥미가 없었어요. 법자 들어가는 수업은 거의 듣지 않고 다른 강의를 더 많이 들었어요. 빨리 졸업해서 사대로 가자는 생각만으로 4년을 후다닥 마치자마자 학사 편입을 준비했어요.

- 그런데 지금은 다시 변호사예요(웃음).

= 사범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한편으로 성소수자 인권지원 활동, 특히 청소년 문제에 집중해서 일했는데, 그걸 하다 보니 오히려 이전에는 없던 법에 대한 관심과 의욕이 생겼어요. 아무래도 인권활동을 하다 보니 법에 관한 질문이 나오는데 제가 전공자라고 주위에서 자꾸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잘 모르는데(웃음). 그러던 중 2007년 차별금지 법안이 만들어졌다가 논란 끝에 폐기된 것이 저에게 충격이었어요. 그 일을 포함해 여러 일을 겪어나가면서 제도적인 문제를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인권활동가이면서 변호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 그래도 직업을 다시 바꾼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 제가 운이 좋았다고 할까요. 그 무렵 로스쿨이 출범했어요. 만약 사법시험 체제가 계속되었다면 그 시험을 보지는 못했을 거예요. 모든 시간을 오로지 시험 준비에 바쳐야 하니까요. 반면 로스쿨은 내가 원하는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으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부모님이 좋아하셨겠어요

= 네. 아들이 원하는 길로 다시 돌아왔으니까요. 로스쿨을 마치고 2012년 1기로 졸업했어요.

- 그런데 공익변호사를 하겠다고 해서 부모님이 또 반대하셨을 것 같은데.

= 부모님이 후원자예요. 가족들도 모두.

- 그럼 애초부터 공익변호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 길을 택한 거군요. 남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길인데 막막하지는 않았나요

= 그렇죠. 일반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공익활동도 하는 선배는 많지만 전업으로 그 길을 택한 선배는 많지 않았어요.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이 거의 유일한 롤모델이고 직장으로 들어갈 만한 곳이어서 '졸업하면 뭐, 어떻게 되겠지. 그쪽에 책상 하나 들고 그냥 들어가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같이 일했던 활동가분들이 '우리가 그 사무실 앞에서 데모해서라도 네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한 농담을 믿고서요(웃음).

- 그런데 어떻게 지금 함께하는 동료들을 만났나요.

= 로스쿨에 들어가보니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었던 거죠. 그 무렵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 소수자인권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그곳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각자 장래에 대한 걱정을 하다가 어느 겨울 술자리에서 '그럼 우리가 한번 사무실을 만들어보자' 이렇게 되었죠.

"성소수자 인권 공부하다 눈떠"

출범한 지 6년째인 로스쿨 제도는 운용상의 여러 문제점도 낳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공익활동과 변호사 활동의 행복한 결합을 꿈꾸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에 배출해냈습니다. 그들은 꽉 막힌 법조계에 솟아오른 푸른 새순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희망법은 성소수자나 장애인의 차별, 기업의 인권침해 같은 문제에 대해 지난 2년간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한가람 변호사는 < 한겨레21 > 이 뽑은 2013년 최고의 판결 사건의 주심 변호사이기도 합니다. 성기 성형 없는 성별 정정허가를 받아들인 사건인데, 그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 이 사건은 어떻게 해서 맡게 되었나요.

= 희망법에서 제가 맡은 분야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이에요. 전문가들과 그 주제로 공부하다가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문제를 다루게 되었죠. 성전환자에게 어떤 기준에 따라 성별을 정정해줄지는 대법원 판례를 통해 그 기준이 축적돼왔는데, 그게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엄격해요. 그 기준 중 하나가 성기 성형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하는 것인데, 이게 신체적으로 위험하고 쓸모없는데다 비용도 많이 들거든요. 그로 인해 이미 사회생활에서 다른 성으로 인정받고 있는데도 공식 기록상으로는 성이 변경되지 않아 고통받는 분도 많고요. 이걸 좀 바꿔보자,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거죠.

- 기획 소송인가요.

= 네. 소송대리는 희망법과 공감의 변호사들이 무료로 진행하고 의학적인 자료는 전문가들이 도와줬어요.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해외 주요 국가는 물론 작은 나라까지 판례들을 다 뒤졌어요. 본격적인 준비만 6개월 정도 하고 나서 소송을 제기할 당사자를 모았는데, 이 문제가 어느 특정 직업이나 연령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젊은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 미혼과 기혼, 다양한 사람들을 모았어요.

- 승소할 거라 예상했나요.

=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더라도 대법원까지 가자, 몇 년 걸릴지 모르지만 끝까지 해본다는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1심을 맡은 재판부에서 우리 주장을 열심히 검토해주었어요. 심리 끝에 성별을 바꾸기 위해 성기 성형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것이 없더라도 다른 요건을 갖췄다면 성별 정정을 허가하겠다는 결정을 받았죠.

- 좋은 재판부를 만났군요.

= 심리가 진행되면서 판사들이 이 문제를 두고 따로 스터디를 할 정도였고, 결국 성기 성형을 요구하는 게 신체적으로도 너무 위험하고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주장을 수긍하게 된 거죠. 다만 FTM(여성에서 남성으로 변경하는 것)의 경우에만 성기 성형 없이 성별 정정을 허용했다는 것은 좀 아쉬워요. 역시 기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은 느낌도 있고요. 더구나 여전히 다른 법원에서는 그런 조건에서만 성별 정정 허가를 해주는 곳도 있다고 해서 하루빨리 통일된 예규 제정이 필요해요.

희망법은 공익사건을 전담하면서 비영리로 활동하기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는 당사자에게 돈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사무실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당연히 궁금해집니다.

"소수자뿐만 아닌 모두를 위한 싸움"

- 사무실 유지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나요.

= 기본적으로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일반 시민과 법조인들이 내주는데,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기뻐요.

- 그럼 살림살이가 여유가 없을 텐데요.

= 상근자가 총 8명인데, 단체로 보았을 때도 규모가 작은 편이 아니죠. 급여가 일반 변호사들에 비해서는 매우 적은데도 기본적으로 유지가 쉽지 않네요. 후원인들이 내주시는 정기회비로는 경상 비용을 충당하지 못해서 기금이나 특별회비 같은 것들로 매달 버티고 있어요. 특히 사무실 개소할 때 들어왔던 축하금 같은 걸로 메우면서….

- 상황이 나아질 것 같나요.

=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망이 밝지 않아요. 내년 초에 같이 일하는 두 변호사를 지원해주는 연수원 동기들의 후원이 종료되거든요. 지금 상태라면 재정 구조가 더 악화될 거예요. 하필 제가 올해부터 총무재정 팀장을 맡았는데 이를 어쩌나, 속된 말로 '견적이 안 나온다'는 말 그대로예요.

- 공익변호사도 명예나 사회적 지위로는 살 수 없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요.

=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보람이나 잘못된 가치관을 바꿔간다는 기쁨은 있죠. 그러나 최소한 생활인으로서 지속 가능한 자립은 가능해야죠.

- 수행하는 사건에서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다면 자립은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 저희가 하는 일은 삼각관계예요. 보통의 변호사는 의뢰인과 양자관계죠. 자기 권리를 지키려는 사람이 변호사 비용을 내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저희가 다루는 사건들은 인권침해나 차별적인 법 또는 관행을 바꾸기 위한 거예요. 물론 권리주체에게 직접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당사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여러 사람에게 파급효과를 주는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나 가치의 확산, 이런 것을 원하는 분들이 저희에게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고 마땅히 지급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 권리주체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 예를 들어 장애나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들의 인권 상황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죠. 나는 다수에 속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어느 측면에서 다 소수자예요. 장애인이거나 여성이거나 노인 또는 청소년이죠. 모든 면에서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또 소수가 될 가능성이 있죠. 소수자를 위해 싸우는 싸움은 실은 우리 모두를 위한 거예요.

- 그를 위한 활동이 공익변호사를 통한 사회적 연대라는 건가요.

= 그렇죠. 당사자의 적극적인 권리투쟁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회 일반의 연대가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소수는 늘 소수의 목소리밖에 가질 수 없으니까요. 소수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에는 대부분 경제적 여유가 없고 사회생활에서 힘들게 지내는 것도 있어요. 그렇기에 모든 사회 구성원의 참여가 필요하고, 특히 일반 시민의 참여와 연대가 절실한 거죠.

"결국엔 모든 문제가 '사람'"

제도나 권리투쟁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힘들고 손가락질 당해도 앞장서서 싸우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또 그걸 이뤄내기 위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공익변호사가 보여주는 전문적 역량에서의 헌신을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가,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 공익활동을 하려는 후배도 많죠.

= 관심을 가지는 후배가 점점 늘고 있고 찾아와서 상담도 해요.

- 그런 후배들한테는 뭐라고 얘기해주나요.

= 특별히 말해줄 수 있는 건 없고 주로 희망법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말해줘요. 길은 다양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니 서로 모이고 함께 고민하면서 길을 찾으라는 이야기죠.

- 변호사로서 공익활동의 한계 같은 것도 느낄 텐데요.

= 아직 활동 기간이 많아서 좌절이나 한계를 느끼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일을 하다보니 과연 모든 면에서 변호사가 나서는 게 맞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차별의 문제는 아무리 법 제도를 잘 만들어놔도 사회 전반적인 문화와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헌법에 성적 지향에서의 평등 문구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레즈비언들에 대한 교정 강간 같은 게 일어나요. 법조인들의 논리적인 투쟁 말고도 다른 싸움이 있어야 하죠. 즉 입법, 사법, 문화와 관행 등에서 조화를 이룬 결합이 필요하죠. 제 후배들은 지금까지 변호사들이 활동했던 것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활동해야 할 것 같아요.

- 요즘 우리 사회에서 꿈을 꿔왔던 사람들이 많이 지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 얼마 전에는 진보정당의 정치인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어요.

=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자각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으면 자살이 없다고 해요. 결국엔 모든 문제가 '사람'인 것 같아요. 우리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지만 사실 그 자체가 큰 힘이 되지는 않아요. 일상에서 1%라도 감정적인 것을 함께 나눠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말하자면 어디를 같이 바라보고 있다는 것보다 지금 함께 손잡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달까요. 지금 우리 현실이 그런 것을 같이 나누지 못한다는 게 참 비극적이에요. 그런 면에서 저는 지금의 동료들을 만나서 큰 행운이었고 희망법을 함께 시작한 2012년이 가장 행복했던 때이기도 했어요.

- 좋은 사회란 무엇인가요.

= 지금 같지 않은 사회요(웃음).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가 좋은 사회예요. 천부인권이라는 말은 사실 누군가 내려줬다는 말이라서 은근히 보수적인 개념이에요. 올해가 갑오년이잖아요. 120년 전에 '사람이 하늘'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게 참 감동적이에요. 앞서 자살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 사회가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거든요. 길을 가다가 '아, 정말 사람이 귀하다면 지하철에 있는 사람을 저렇게 툭툭 치고 지나갈까' '차가 저리 쌩쌩 달릴 수 있을까'란 생각도 해봐요. 하나의 우주로서 사람을 보는 사회가 좋은 사회죠.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 그런 사회가 가능할까요.

= 모든 사람이 소중한 대접을 받는 사회는 솔직히 불가능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쪽으로 나아가는 사회는 가능하죠. 우리 사회가 비록 수준이 낮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놀라운 일도 많이 해왔어요. 그러기에 저 또한 가능할 거라는 신념으로 일을 해요.

정연순 변호사,녹취 나해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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