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자살암시 문자 받은 검사는 왜 49분을 망설였나

최우철 기자 2014. 3. 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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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조력자인지도 모른 채 사건에 휘말린 경찰

60대 중국 국적 탈북자의 자살 시도에, 증거조작 의혹에 휩싸인 검찰과 국정원에 또 한 번 격랑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61살 김 모씨는 유서를 남긴 채, 지난 5일 오후 영등포구 한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벽에는 피로 쓴 '국정원, 국조원' 이란 글씨를 남긴 걸로 확인됐습니다.

그는 어떻게 영등포 모텔에 들어왔고, 피를 흘린 채 입원을 하게 됐을까. 경찰은 국정원 조력자의 자살 시도란 사실을 알고도, 현장 보존을 하지 않은 걸까. 비판 여론이 빗발치자, 사건을 처리한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7일 오전 시간대별 상황을 공개했습니다.

한마디로 경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검찰은 왜 적극적으로 경찰에 알리지 않았냐는 겁니다. 검찰이 김 씨가 국정원 조력자로 조사받는 사람이었단 사실을 알렸다면, 이런 오해를 피했을 거라는 항변입니다. 경찰은 왜 검찰을 원망하며, 해명을 자처한 걸까요. 경찰 발표를 토대로 지난 5일 김 씨와 검사, 김 씨의 아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겠습니다.

조력자, 검사 그리고 모텔 종업원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다. 행복해라."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낮 12시 1분, 서울중앙지검 김 모 검사의 휴대전화로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12시 50분, 김 검사는 112에 직접 자살 의심문자를 받았다고 신고합니다. 검찰은 49분을 고민한 끝에, 김 씨를 찾기로 결심한 겁니다.

12시 51분, 신고가 들어온 곳이 서울 서초동이니, 경찰은 관할 서초경찰서가 112 신고센터의 지령을 전달받고, 사건을 접수합니다. 경찰이 문자를 보낸 김 씨의 휴대전화번호를 확인해, 기지국 위치추적을 합니다. 결과는 '영등포동 3가 00-0 번지'였습니다.

이때부터 서초경찰서는 영등포서 실종수사팀에 공조요청을 했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영등포서 상황실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은 곳은 중앙파출소였습니다. 기지국 위치상 관할에 지령을 내린 겁니다. 파출소 직원 6명과 영등포서 실종팀장 등 3명이 위치추적에 뜬 주소 반경 500미터 일대를 수색합니다. 수색은 오후 내내 계속됐지만, 이들은 김 씨를 찾지 못했습니다.

검사의 112 신고에 따른 자살 의심 인물 수색. 이 흔치 않은 사건은 또 다른 112 신고로 비로소 실체에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저녁 6시 10분, 근처 모텔 종업원이 퇴실 시간이 지난 손님이 문을 잠가버린 채 나오지 않는다며 신고를 한 겁니다. 기지국 위치추적에 뜬 주소에서 약 90미터 정도 떨어진 모텔이었습니다. 종업원은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신발장에 신발이 있었다."라며 "더 이상은 경찰관과 함께 확인하려고 했다."라고 경찰에 말했습니다.

저녁 6시 11분, 영등포경찰서 112상황실에 신고 접수가 하달됐고, 관할 역전파출소에 출동지령이 전파됩니다. 순찰차는 14분 쯤 도착했고, 파출소 대원은 쓰러진 김 씨를 발견합니다. 경찰은 "투숙객은 침대 옆에 누운 상태로 우측 목에 상처 나 있었으며, 바닥에 피가 고여 있었고, 호흡은 있으나 의식은 불안하여 위급한 상황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객실 바닥에선 10cm 길이의 흉기와 유서가 나왔고, 벽면엔 피로 쓴 글씨가 있었습니다. 취재 결과, 경찰은 '국정원'이란 글씨는 비교적 선명하게 쓰여 있었고, 그 아래 '국조원'으로 보이는 글씨도 있었다고 파악했습니다.

저녁 6시 19분 경찰은 119에 구급차 출동을 요청했고, 25분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38분 김 씨를 태운 구급차가 병원으로 출발합니다.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건 43분. 당시 의사 소견은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라는 거였습니다.

늦은 밤, 파출소에 직접 나타난 검사

60대 남성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한 사건. 비극적인 일이지만, 경찰서엔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한 게 사실입니다. 현장에 출동한 순찰대원은 맨 처음, 그가 정신이상자는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정했다고 합니다.

그럼 같은 시각, 중앙지검 소속 현직 검사의 신고로 시작된 실종 수색은 끝났던 걸까요. 아닙니다. 역전파출소가 아닌 중앙지구대가 나선 이 사건은 그때까지도 '계속 수색 중'이었다고 경찰은 설명합니다. 저녁 6시 20분에도 영등포서 상황실로 '계속 수색'이란 보고가 올라왔고, 서 상황실은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는 게 그 근거입니다.

그럼 영등포경찰서가 두 사건 인물이 같다고 확인한 건 언제일까요. 출동 경찰관이 김 씨의 신분증과 소지품을 확인한 저녁 7시 20분입니다. 영등포서 상황실 직원은 서초서로부터 넘겨받은 사건과 모텔 자살 시도가 같은 사건이라고 판단했다는 게 경찰 설명입니다. 10분 뒤 역전파출소 순찰을 맡은 2팀장은 신고자에게 전화를 겁니다. 정오에 자살의심신고를 한 검사는 7시간 20분 만에 그의 소재와 건강 상태를 파악한 겁니다.

이때부터 검찰은 바빠집니다. 신고를 한 김 검사가 직접 영등포구 역전파출소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파출소엔 또 다른 인물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김 씨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파출소 순찰팀은 이송된 김 씨의 신분증과 소지품 그리고 유서를 갖고 있었습니다. 살인 등 강력사건을 담당하는 형사과 전우관 과장이 상황실로부터 사건 보고를 받은 건, 저녁 8시였습니다. 이 무렵 중앙지검을 출발한 김 검사가, 역전파출소에 도착한 걸로 보입니다. 경찰은 밤 9시, 김 검사가 역전파출소 측에 김 씨의 유서 등을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파출소 측은 형사과장에게 문의했고, 그는 불가하다는 지시를 내립니다.

모텔 나오려다 다시 들어가 문자 전송… 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이미 모텔은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습니다. 타살 의혹이 짙은 사건을 경찰이 서둘러 현장보존도 없이 마무리했다는 비판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밤 9시까지 유서는 김 씨 가족이나 검찰 모두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타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단 겁니다. 경찰이 아들에게 유서와 소지품을 인계한 건, 사건을 단순 자살시도로 결론지은 이후였습니다. 이건 순찰팀이 아닌, '형사'들의 몫입니다.

저녁 8시부터 감식이 끝난 10시 15분 사이, 영등포서 형사과는 단순 자살시도인지, 타살 등 강력사건의 가능성은 있는지 판단에 들어갑니다. 밤 9시 40분 형사 당직팀(강력팀 소속 형사들은 강력사건에 대비, 매일 교대로 야간 당직을 합니다.)과 과학수사팀이 모텔에 도착합니다. 형사들은 모텔 관계자와 CCTV를 조사했습니다.

사건 타살 의혹은 있는 걸까. 우선, 형사들은 김 씨가 사건 전날 오후 5시 반에 혼자 투숙했다는 종업원 진술을 확보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얘기도 함께 들었습니다. 사건 당일 아침 9시 45분 그가, 체크아웃을 했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종업원은 체크아웃을 한 그가 로비에 앉아있는 걸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10시 반쯤이었습니다. 종업원이 왜 나와 있냐고 묻자, 그는 다시 체크인을 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는 다시 묵었던 방으로 들어갔고, 정오 무렵 김 검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8시간 쯤 뒤 피를 흘린 채 모텔에서 실려나왔습니다.

김 씨의 이상한 행동은 모텔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됐습니다. 모텔에선 열쇠에 달린 막대를 출입구 거치대에 꽂게 돼 있습니다. 이 모텔 카운터에선, 이걸 꽂고 빼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해, 손님의 체크인 아웃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찰 조사결과 종업원은 오전 11시 17분, 김 씨가 이 열쇠 막대를 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체크아웃 표시라, 김 씨가 방을 체크아웃을 한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 씨는 열쇠만 거치대에서 뺐을 뿐, 안에서 문을 잠근 상태였습니다. 5시간 쯤 지난 저녁 6시 10분, 종업원은 김 씨가 왜 나오지 않는지 의심했고, 신고를 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경찰은 김 씨의 행적에서 동행한 사람이나, 그를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CCTV 확인 결과도 일치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조사결과입니다. 영등포서 형사과는 이를 토대로 타살 가능성을 사실상 배제합니다. 현장은 이미 4시간 가까이 보존된 상태였습니다. 단순 자살시도로 결론 내린 형사과장은 현장 보존을 따로 지시하지 않습니다.

감식이 끝나가던 밤 10시 10분, 영등포서 역전파출소에선 유서의 행방이 결정됐습니다. 형사과가 단순 자살 시도로 판단한 이상, 유서와 소지품은 가족에게 인계됩니다. 역전파출소 순찰팀은 김 씨의 아들에게 이를 건넸습니다. 아들은 현장에서, 검찰에게 아버지의 유서와 물건들을 넘깁니다. 검찰은 이렇게 김 씨의 아들로부터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살 시도 동기를 담은 유서를 확보했습니다.

형사과장의 판단에 따라, 신고 약 4시간 만인 밤 10시 15분 모텔 현장감식도 종료됩니다. 모텔 직원들은 늦은 밤, 핏자국과 분변 등 김 씨가 머문 흔적을 모두 지웠습니다.

경찰 "검찰이 소극적으로 신고"

결과적으로 김 씨의 자살시도는 단순 자살시도가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국정원 측 증거조작에 관여한 조력자가,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경찰도 사건이 진행 중일 땐, 실체를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경찰은 현장을 일부러 빨리 치우게 내버려 뒀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검찰을 원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사건의 열쇠는 맨 처음 사건을 예측할 수 있는 인물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건 김 씨의 자살 시도를 누구보다 빨리 의심했고, 그를 조사했던 김 검사였습니다.

영등포서 형사과 간부는 "검찰이 애초에 적극적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112 신고 내용은 "검찰 조사를 받던 사람이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다. 행복해라'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는 내용뿐이었다 게, 경찰 설명입니다. 김 검사가 경찰 신고 이후라도, 경찰에 국정원 조력자라는 김 씨의 특수한 상황을 알렸더라면 이런 의혹을 피하도록 엄격한 초동 수사를 했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사건을 처음 접하고, "간혹 터져 나오는 사건처럼, 이번에도 검찰 수사를 받은 누군가가 자살할지 의심된다는 신고로 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경찰이 언론에 공개한 자료를 너무 쉽게 믿는 건 아닌가 의심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실제로 거짓 해명 자료를 발표했다가 홍역을 치른 사례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저 역시 그래서 어렵게 경찰이 본청에 보고한 원문을 확인했습니다. 파출소를 담당하는 생활안전과와 단순 자살의심으로 판단한 형사과의 시간대별 상황 보고서는 기자들에게 알려준 내용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추측과 의혹은 날로 무성해지고 있습니다. 김 씨는 왜 나오려던 모텔 방으로 다시 들어갔는지, 문을 잠근 채 체크아웃 표시를 한 건 의도를 갖고 한 행동인지, 사건을 곱씹을수록 의문점은 불어납니다. 김 씨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도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의 자살시도가 고민 끝에 저지른 계획된 선택은 아닌지, 취재거리도 한둘이 아닙니다.

자살 암시 문자메시지를 마주하고 49분을 망설인 검찰과, 국정원 조력자인지도 모른 채 김 씨를 찾아다녔다는 경찰. 112 신고로 사건 공개를 감수한 검찰은 왜 그의 존재를 끝까지 함구했는지, 모든 의문은 검찰의 국정원에 대한 증거 조작 의혹 '수사' 결과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최우철 기자 justrue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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