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에 남겨진 동물들.. 정말 잔인한 인간

2014. 3. 3. 08: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하상련 기자]

오는 3월 11일은 일본 후쿠시마에서 쓰나미가 발생, 인근 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난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지역 주민들은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고, 방사능 오염수는 계속 바다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도 최근 바다로 방출되는 핵종의 총량 관리에 대해 '통제할 수 없으니 관리는 무리'라고 밝혔는데요. '후쿠시마 그 후 3년' 기획을 통해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것, 잊고 있었던 것,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 편집자말 >

대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라는 큰 재해가 일본을 휩쓸고 지나간 2011년의 어느 날, 저는 우울한 도쿄의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좋아하던 벚꽃이 언제 피었다가 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지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땅만 보며 걸었습니다.

모두 말이 없고 거리는 어두웠습니다. 재해 이후 6개월 정도 지난 서점에는 관련 서적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피해 지역에 사는 시인의 시집에는 가슴 아프고, 두렵기조차 한 시가 실려 있었습니다.

방사능이 내리고 있습니다.

조용한,

너무도 조용한 밤입니다.

- 和合亮一, 詩の礫 중

평소 아름답고 개성 넘치는 글을 쓰던 작가들이 기교와 역량을 버리고 마치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슬픔과 놀라움과 두려움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죽음과 영혼에 관한 글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선반 한 켠에 꽂혀있던 책 한 권에 눈이 머물렀습니다. < 남겨진 동물들 > .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던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캔을 주니 정신없이 꿀떡꿀떡 삼키던 고양이들. 슬프도록 말랐다는 게 이런 거였다.

ⓒ 오오타 야스스케

후쿠시마 현 내 원전 주변 20킬로미터 이내에 피난 명령이 내려지고 출입이 통제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황급히 떠난 뒤 남겨진 동물들이 배가 고파 떠도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즉시 물과 먹이를 들고 달려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 분쟁지역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고, 1995년 고베 대지진 취재 경험도 있었지만 2011년 원전 폭발 사태에 대해 "그 어느 전쟁터보다도 비참했다"고 고백했을 만큼 내용은 참담했습니다.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저도 넘쳐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오타 야스스케는 "그냥 있었다가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카메라를 들었다, 일본에는 54기나 되는 원자력발전소가 있고(사고 후 6기 폐쇄, 현재는 48기가 있다 - 기자말), 원전에 대해 모두가 침묵해버리는 비정상적인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바로 옆에서 만난 두 마리의 개. 계측기로 지면의 방사선량을 재어보니 280마이크로시버트(평소 사람들이 노출되는 방사선량의 약 2000배)였다. 이런 환경에 그들은 버려져 있다.

ⓒ 오오타 야스스케

책에 따르면, 피난과 출입통제 명령이 내려져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후쿠시마의 거리에서 허기진 개와 고양이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곧 돌아오리라는 자치제의 설명을 듣고 황급히 떠난 주인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묶인 채로 죽은 개도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목줄을 풀어 놓아도 살던 집을 떠나지 않고 집 앞에 앉아 기다리는 개, 사료를 주자 허겁지겁 먹으려다 말고 사진작가에게 다가와 반갑다고 부비기를 계속하던, 배고픔 보다 외로움이 컸던 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기르던 닭에게 먼저 먹으라고 양보하며 기다리는 충견의 모습

ⓒ 오오타 야스스케

외부인에게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짖어대면서도 먹이를 주니 주인이 기르던 닭에게 먼저 먹으라고 양보하며 기다리는 충견의 모습, 축사에 갇힌 채 옆칸에 쓰러져 죽은 말을 보며 정신 나간 듯 불안에 떨던 말의 눈물에 작가도 따라 울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겹겹이 쌓인 돼지 시체 사이로 간신히 살아남아 힘없이 서로 기대어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던 '가축'이라고 불리는 생명들.

기운이 없어 열려진 축사 밖으로도 나오지 못하는 소들에게 물을 먹여보기로 했다. 물그릇을 내밀자 조금 먹다가 이내 토해버리고 말았다. 소는 주저앉은 채 내 앞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나는 연신 욕을 내뱉었다.

ⓒ 오오타 야스스케

사람이 돌보지 않는 소의 축사에 들어가자 목이 마르고 배고프다고 일제히 울어대던 소들을 보며 작가는 그것보다 더 슬픈 울음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용수로에 빠진 소들을 몇 번이나 중장비로 구해 내었으나 목이 타들어가는 소들은 계속 용수로로 추락하여 죽어갔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비닐을 먹는 송아지. 기운이 없어 문이 열린 축사 밖으로 나오지 못한 소들에게 물을 먹여 보았으나 조금 먹다가 이내 토해버리고 마는 소들. 작가는 "미안하다"고 계속 용서를 빌며, 자신을 비롯한 인간들에게 분노가 치솟아 울부짖으며 셔터를 눌렀다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겠다던 약속, 이뤄졌습니다

머릿속으로 큰일이구나 생각만 하던 것과는 또 다른 커다란 슬픔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습니다. 책 속 동물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후쿠시마의 재난뿐 아니라 내가 그동안 살면서 쉽게 지나친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유를 모른 채 고통받고 죽어가는 돼지

ⓒ 오오타 야스스케

운전하다가 길 위에 숨져있는 많은 동물들을 봐도 그저 "쯧쯧" 하며 지나쳤던 일,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희생을 치른 것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맛나게 즐겁게 요리하던 일, 광우병, 구제역 살처분, 유기동물, 보신탕, 모피 등에 관한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도 눈물 몇 번 머금고 그냥 또 잊고 바쁘게 산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한참을 서서 울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가도 곧 무력감으로 포기해버리곤 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저는 그 책을 들고 서점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경험도 능력도 없는 제가 매일 새벽마다 조금씩 번역했습니다. 번역 전 매번 죽어간 동물들을 위해 손을 모으고, 너희들이 겪었던 일, 고통스럽고 두려웠던 일, 살고 싶었던 일, 어떤 고통 속에서 죽어갔는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작고 무력한 약속이 '신비롭게도'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번역한 원고를 들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시간만 흘러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평소에 동물과 환경에 대해 많이 배웠던 잡지 < 오 보이 > (Oh boy)의 편집장 김현성씨가 원고를 본 뒤, 즉시 몇 페이지에 걸쳐 글과 사진을 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국에서도 출간되면 좋겠다며 출판사 < 책공장 더불어 > 의 편집장을 소개해 2013년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3년이 지나 겉으로는 조금 진정되고 평온해진 듯하나 여전히 재해가 남긴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가 할퀴고 간 크나큰 피해는 시간과 사람들의 노력으로 거의 복원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전 폭발 사고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기약이 없다고 합니다.

살처분 명령 거부하고 가축 돌보는 희망목장, 왜?

전자상가 주변의 소.

ⓒ 오오타 야스스케

사고가 일어난 원전에서 1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약 30헥타르의 목장이 있었습니다. 목장 주인 요시자와 마사미씨는 폭발 사고 후 방사능 오염으로 곧바로 경계구역이 된 그곳에서 지금도 계속 남아 있습니다. 피폭된 소들에게 물과 양식을 주고 있습니다. "살처분하라"는 정부의 명령도 거부한 채 키워서 팔 수도 없는 소들을 왜 돌보고 있는 걸까요?

지난 여름 저는 요시자와씨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굳게 다문 입과 빛나는 눈에서 그분의 강한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그분 옆에는 '결사구명!' 즉, '내 목숨을 바쳐 그 생명들을 지키겠다'는 아주 강하고도 든든한 문구가 걸려 있었습니다.

크나큰 지진과 쓰나미도 이겨내고 살아남은 목장에, 어느 날 아침 원전 폭발로 피난 명령이 떨어지고 근처의 주민들은 모두 황망히 강제 피난을 당합니다. 피난민들 중엔 지금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시자와씨는 "나는 소치기이니 소를 버리고 떠날 수 없다"며 사료가 끊긴 그곳에서 비지를 구해다 소들에게 먹이며 버팁니다.

그러나 곧 "경계구역 내의 모든 가축을 살처분하라"는 정부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지고 쓰나미로 모든 것을 쓸어 보내고 게다가 방사능 오염으로 모두 쫓겨나는 과정에서 요시자와씨는 정부에 대해 큰 의구심과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피난민과 살아있는 동물들에 대한 정책, 그것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마치 생명을 그냥 내쳐버리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죠. 그는 정부의 살처분 명령에 반항하며 목장을 떠나지 않기로 합니다. 그는 피폭 당하고 버려지는 소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버려지는 모습이 겹쳐보였다고 합니다.

폭발 사고 이후 그곳의 주민들에 대한 기민(棄民)정책이 동물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요시자와씨는 말합니다. 비록 식용육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애정을 주고 건강하게 키워 고기를 공급하였고, 그것이 필요없어지자 함부로 무의미하게 묶은 채로 아사시키거나 버리고 떠날 수는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살아있는 소들은 원전 폭발사고의 산 증인들입니다. 정부는 증거를 모두 인멸해버리고 싶겠지만 피폭 실태의 조사, 연구 등을 통해 앞으로의 방사능 재해의 예방에 도움이 되는 귀중한 과학적 데이터가 될 것입니다. 이미 대학의 수의학 팀과 협력하여 소의 체내 피폭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마리 수를 늘이지 않기 위해 거세 작업도 하고 생식기에 미치는 방사능 영향의 연구에도 쓰입니다. 피폭 당한 소들을 계속 키우는 일은 이 시대를 극복해나가는 일에 도움이 됩니다. 나는 열심히 할 것 입니다.

이것이 정부와 도쿄전력에 대하여 제가 싸울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는 곳도 언젠가는 이 곳 후쿠시마처럼 폐허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이미 탈핵에 돌입했고 독일이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원발 재가동, 원발 수출로 역행하고 있으니 국민이 정신차리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그냥 소치기입니다. 그러나 피폭된 소를 살리는 과정에서 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제 자신 원점으로 돌아가 생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살지만 그들에 대한 감사함과 경외감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살고 싶은 생명들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요시자와씨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강한 의지 그리고 용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희망목장'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곳에선 지금도 300마리가 넘는 소들이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과 기부금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낮에는 학교를 다니며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주말에 후쿠시마에 갈 비용을 마련하여 정기적으로 오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수의학자나 의사 그리고 멀리서 보내오는 무상의 오염되지 않은 풀 등, 버려진 땅 버려진 목장에 멀고 가까운 곳에서 응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제가 번역한 책을 낸 출판사에서 주신, 분에 넘치는 번역료도 전액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이게 동물들만의 일일까요? 우리 미래이기도 합니다

요시자와씨가 지난 2월 Weekly Zaenshin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지금도 나미에정과 도키오카정, 오쿠마정, 후타바정에서 약 10가구의 농가가 저항하며 소를 살려두고 있다"고 합니다.

"나미에정은 원전이 들어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땅이다. 1960년대부터 도호쿠전력의 나미에오다카 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이 있었지만, 주민들의 오랜 반대운동으로 건설을 저지했다. 그런 나미에정이 체르노빌이 돼버렸다. 우리 농가에서 만든 표고버섯에서는 (방사성물질이) 4만 베크렐이나 나왔다. 도쿄전력에 갔을 때, "당신들 때문이다. 선물이다"라 말하고 놓고 왔다. 이곳에서 재배한 쌀과 야채 산나물 모두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잠재적인 원전폭발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는 동물들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일방적이고 무력하게 희생되는 고통은 동물들만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인간 역시 몹시 고통스럽고 마음이 병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무력한 눈물만이 고작이었던 저는 아직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나 이제는 제 나름대로 작으나마 방법들을 모색합니다. 일단 마음을 내니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이 보이고 다가옵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선택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13년 발간된 <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이 4쇄를 찍기까지 책을 찾고 펼쳐보며 가엾고 무력한 생명에 공감해주신 분들께 정말로 감사합니다. 또 올해의 우수 과학도서로 선정되어 많은 학생들이 보게 되었다는 소식도 출판사를 통하여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