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찬반의 대상이 아닙니다

2014. 2. 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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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이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종걸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11년째 친구사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7일 저는 친구사이 초대 대표인 이후돈 선배를 만나게 됐어요. 친구사이 설립일이 1994년 2월7일인데 마침 저희 생일날에 친구사이를 만든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참 감동적인 만남이었습니다. 또렷한 눈매와 한쪽 귀에 반짝반짝 빛나던 귀걸이, 지긋한 미소와 사뿐거리는 자태도 아름다웠지만 그의 용기 있는 20년 전 결심을 직접 듣게 되어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던 시대에 '동성애자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 어려운 시작을 열어준 이후돈 선배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 아직 저희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습니다. 지난해 미국의 여론조사업체인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동성애에 관한 인식 변화' 조사를 보면 '동성애를 사회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응답한 한국인은 39%였다고 합니다.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2013년 3월4~18일, 18세 이상 성인남녀 809명, 전화 설문조사) 퓨리서치센터는 세계 각국을 상대로 같은 조사를 진행했는데, 가장 큰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 곳이 바로 한국입니다. 두배 가까운 증가였지요. 이러한 변화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개척해온 '수많은 언니'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성소수자 역시 이 땅에서함께 살고 있는 인간이기에보편적 인권과 차별받지 않고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인권이라는 문제는 상큼하고안전한 길이 아닌 걸 압니다혐오의 시선도 여전합니다하지만 우리는 당연히 이기는싸움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관점의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소수자 관련 취재를 하러 온 기자들에게 지금도 안타까운 점은 동성애에 찬반 구도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그 마음은 알겠지만 인권의 문제는 찬반의 문제도, 정상·비정상의 문제도 아닙니다. 성소수자 역시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이기에 보편적 인권이 있고,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찬성·반대, 정상·비정상 구도는 결국 성소수자에 대한 권리를 인정·불인정의 구도로 몰아가고 심판의 대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구도로 몰아갑니다.

바로 이러한 한계 때문에 우리가 아직 만나야 할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종로, 이태원, 홍대 등의 주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지역 이외에도 수도권, 지역 대도시뿐만 아니라 지역 곳곳의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스스로의 커밍아웃을 위해 고민하는 우리 성소수자 친구들, 자녀의 성정체성에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고 주변에 상담조차 받을 수 없는 수많은 부모님들,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학교 상담교사 등을 직접 만나 현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려고 합니다. 혹시 저희의 도움이 필요하면 친구사이의 문을 두드려주시기 바랍니다.

인권이라는 문제는 상큼하고 안전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혐오의 시선'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20년 전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히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순간의 과정 속에 겪는 수많은 고통과 고난은 웃으며 위안 삼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합니다.

이제 친구사이는 또다른 20년을 준비하려 합니다. 또다른 20년 뒤에 친구사이를 처음 만든 선배들을 다시 만나 웃으며 또다른 희망을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친구사이 선배들, 현재의 친구사이 회원들, 친구사이를 응원하는 모든 분들,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이종걸

[토요팟] '게이 프라이드', 성소수자 인권운동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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