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닝맨 PD "지상파 예능, 지금보다 젊어져야 한다"

미디어오늘

[인터뷰-한국의 예능 PD ②] 임형택 SBS PD

예능은 거대한 부루마블이다. 제작진은 판을 만들고, 출연진은 주사위를 던지며 한바탕 논다. 판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야외에서 녹화하는 리얼버라이어티는 변수가 많아 판이 흔들릴 때가 많다. 여기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혹독한 리얼버라이어티를 체득한 PD가 있다. < 패밀리가 떴다 > , < 런닝맨 > 연출로 SBS 예능의 중심에 있는 임형택 PD다.

첫 질문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늘 제기되는 '연출논란'으로 시작했다. < 런닝맨 > 을 보면 볼수록 이광수는 계속 고난에 빠지고, 송지효와 개리는 미션을 할 때마다 자꾸 엮인다. 게스트는 보통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마치 대본이 있는 것 같다. 임형택 PD는 "연출을 좁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PD의 업무는 연출이다. 연출이 없는 예능은 없다. 그러나 시청자는 '연출=거짓'으로 생각한다. 특히 리얼 예능이 그렇다. 그는 " < 진짜사나이 > 가 특정부대에 배치하는 것도 연출이다. 넓은 의미에서 판을 짜주는 게 연출이다. 그냥 놔두면 CCTV다. 우리는 옥타곤을 만들어주고, 누가 싸울지는 멤버들이 정한다. 중요한 건 연출과 리얼함의 조화다"라고 말했다.





▲ 임형택 SBS PD.@이치열

PD입장에선 억울함도 있다. 그는 "송지효가 갖고 있던 열쇠가 개리의 헬멧에 맞았던 건 정말 우연이었다. 작위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만약 연출을 하려 했다면 더 그럴듯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찜질방 녹화에서 광수가 연속해서 날계란을 고를 때처럼 가끔씩 터지는 날이 있다. 절대적으로 누구를 남겨놓겠다고 생각하고 추격전을 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 런닝맨 > 은 일일이 '합'을 짜기에는 불가능한 구조다. 촬영 당일 100여명의 인원이 움직이고, 제작비는 편 당 억대수준이며 촬영 장소(스팟)는 기본이 네 군데 이상이다. 추격전을 기본 서사구조로 잡아야 하는 < 런닝맨 > 은 장소에 따라 추격전 콘셉트가 정해져 장소섭외가 중요한데, 설령 합을 짜고 촬영에 들어가더라도 정작 현장에선 매번 예측 불가능 한 변수에 부딪힌다. 임PD는 "세트촬영과 달리 야외는 대체제가 없다. 시장에 가서 방송경험이 없는 시민들과 섞여 미션을 수행할 때 잘 안될 때가 많다. 물론 대박이 날 때도 있다"고 전했다.

랜드마크 내부에서 추격전을 할 때도 조마조마하긴 마찬가지다. "'유르스윌리스' 편에서 유재석이 물총을 쏠 때, 처음부터 멤버에게 들켜버리면 그날 녹화는 끝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조심하자는 수준이지, 합을 짜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임형택 PD는 "제작진끼리 위치 확인용 무전을 하는데 이때도 조심해야 한다. 함께한 시간이 쌓이며 다들 눈치가 빠르다. 광수·하하는 특히 눈치가 너무 빨라서 PD가 유재석과 눈빛만 나눠도 의심한다. 메인PD가 게스트에 붙어도 중요한 역할을 맡은 줄 알고 의심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녹화가 잘 된 날은 뿌듯하다. 지금껏 추격전 편집은 늘 그의 몫이었다. 멧 데이먼 주연의 추격물인 영화 '본'시리즈를 좋아해서, 영화적 장치로 긴장감을 많이 차용하려 했고 결국 시청자에게 먹혀들어갔다. '유르스윌리스'편의 박진감 넘치는 장면과 음향이 그 예다. 예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공포 콘셉트였던 최민수 편 등의 경우는 공포게임 '사일런트 힐'에서 모티브를 땄다. "아이디어는 지루한 회의 끝에 나온다. 제작진이 미드·영드·일드를 많이 본다. 기존의 좋은 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90분간 예능 보기 어려워…중간광고 도입 필요"
" < 런닝맨 > , 짜내도 새로운 것 할 수 없을 때 끝날 것"






▲ 임형택 SBS PD.@이치열

< 런닝맨 > 은 지금껏 지상파 주말예능에서 볼 수 없는 말도 빠른 호흡과 매번 다른 추격전으로 젊은 층의 호응이 높다. 여기에 랜드마크와 게스트출연이란 콘셉트를 통해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자리를 잡기까지 혹평과 어려움이 있었다. 임PD는 "어린 친구들은 미국드라마 < 24 > , < 프리즌브레이크 > 시즌1처럼 심하게 빠른 이미지커트에 길들여져 있다"며 "지금 40대 중반의 남성은 30대 중후반의 감성을 갖고 있다. 지상파는 지금보다 젊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종편과 케이블 예능을 두고 "지상파가 다양한 연령층을 확보하기 위해 평균적인 타케팅을 한다면 케이블은 핀포인트로 시청층을 좁게 설정한다. JTBC < 마녀사냥 > 은 40·50대가 보기 어렵지만 대신 타게팅을 제대로 한다. 우리 중에도 < 마녀사냥 > 을 보는 사람이 많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밝힌 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청층을 넓혀야 해서 포맷과 연령층을 잘 타협하는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온라인이 발달하며 플랫폼보다는 콘텐츠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지상파PD들에게 위기감은 있다.

그는 젊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예능을 위해서라도 지상파에 중간광고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정글의 법칙 > 이나 < 런닝맨 > 은 굳이 한 호흡으로 90분을 가지 않아도 된다. 영화도 아닌데 90분을 내리 볼 수 없다. 90분을 이어가려다보니 연예인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간 중간에 광고로 호흡을 조절하면 감정을 조절하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출이 수월해진다. 중간광고 전도사 같지만, 중간광고는 필요하다."

< SNL코리아 > 나 < 슈퍼스타K > 처럼 버라이어티의 시즌제는 어떨까. "시즌제가 되면 연출자는 좋다. 6개월 정도 연출에 집중한 다음 쉬면서 로케이션을 더 알아보고 아이디어도 축적해서 더 일찍 촬영을 시작하면 좋을 거다. 하지만 다음 시즌에 시청자들이 이 프로를 계속 봐줄까하는 우려가 있다. 우리의 경우 이슈를 타는 게스트도 있어야 한다." 예컨대 < 정글의 법칙 > 이나 < K-POP 스타 > 는 특성상 시즌이 가능하지만, < 무한도전 > 이나 < 1박2일 > , < 런닝맨 > 은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 임형택 SBS PD.@이치열

임PD는 "입사 8년차에 입봉 했다. 리얼버라이어티 외에 다른 포맷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현실을 무시할 순 없다. PD들은 알게 모르게 성적이 잘 나왔던 것을 또 하게 된다"고 말하며 "파일럿이 들어갈 편성시간은 없다. 기획 아이템은 많지만 기회는 없다. PD들의 숙명"이라고 털어놨다. < 런닝맨 > 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는 "했던 걸 또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 계속 할 것이다. 이번 주(11월 3일 방송)가 170회다. 짜내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을 할 수 없을 때 끝내게 될 것"이라 말했다.

< 런닝맨 > 이후, < 무한도전 > 이후, < 1박 2일 > 이후…. 그가 예상하는 지상파 예능의 미래를 물었다. "요즘 관찰예능이 대세다. 시작은 10년 전 < GOD의 육아일기 > 였다. 더 이전에는 <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 가 있었다. 예능포맷은 왔다 갔다 한다. < 명랑운동회 > 타입의 예능이 다시 성공할 수도 있다." 임PD는 조만간 진정한 버라이어티쇼가 등장할 것이라 내다봤다. "지상파 토크쇼에선 미래가 없어 보인다. 독하게 해도 < 라디오스타 > 정도다. 공개코미디 포맷도 이젠 이슈가 안 된다. 궁극의 오락은 치밀한 준비에 의한 쇼 버라이어티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나 지금의 'SNL'과 같은 포맷이다."

그는 "평일 밤 11시대를 종편과 케이블이 가져간 상황인데, 지상파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건 시트콤이다. "시트콤은 과거 < 세 친구 > (MBC)처럼 정말 편안해야 볼 수 있다. 미드 < 빅뱅이론 > 을 보면 앵글이 몇 개 없지만 말 한마디에 웃긴다. 앵글이나 출연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은 대본이다. 시트콤에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멤버들은 저마다 먹이사슬의 관계가 있다"

"연출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멤버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임PD 왈 "이광수, 송지효…모두 중요한 퍼즐이다. 한 명 한명 역할이 있다. 최약체로 보이는 지석진씨도 자기 역할이 있다. 무시당하는 캐릭터 하나는 있어야 한다. 멤버들은 저마다 먹이사슬의 관계가 있다. 물론 이들 각자의 퍼즐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은 유재석이다."







▲ 임형택 SBS PD가 서울 목동 SBS사옥 로비에서 < 런닝맨 > 유재석을 보며 웃고 있다.@이치열

"유재석, 대중이 보는 것과 연출자가 보는 모습의 간극이 가장 적은 사람"

"PD에게 유재석이란" 질문에 임 PD 왈 "입사 이후 지난 10여 년간 거의 모든 프로를 유재석과 같이해왔다. 유재석은 알면 알수록 무서운 프로다. 성격이 무섭다는 게 아니다. 프로의식으로 똘똘 뭉쳤다. 선한데 냉철하고, 카메라가 돌면 지쳐있다가도 파이팅 넘치게 돌변한다. 자기관리가 대단하다. 아는 게 많아 누구와 어떤 얘기를 해도 재미있게 한다. 그게 프로의식이다.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면이 있다. 그는 대중이 보는 것과 연출자가 보는 모습의 간극이 가장 적은 사람이다."

"MBC 진짜사나이 적수지만 인정하고 싶은 부분 있다"

"SBS를 제외하고, 요즘 가장 주목해야 할 예능프로그램은?"란 질문에 임 PD 왈 "MBC < 진짜사나이 > 다. 동시간대로 당장의 적수지만, 인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메이킹이 좋다고 느꼈다. 예능은 시청률로 나오지 않는 감성적 부분이 있는데, < 진짜사나이 > 는 남성적인 하드한 소재를 여성적으로 소프트하게 만들었다."

< 임형택 PD 약력 >
1977년생. 고려대학교 사학과 졸업. 아버지는 방송인 임성훈씨. 동생은 랩퍼로 활동 중. 2003년 SBS 11기 공채 PD로 입사. < 패밀리가 떴다 > , < 런닝맨 > 등 연출. 유재석과 10년 넘게 일하며 '유느님 전담 PD'라는 별칭이 있음. 아르바이트 삼아 대학시절 케이블TV에서 2년간 성우로 활동, 사내에서 성우가 급히 필요할 때 투입되기도 한다고. 호러물을 사랑하며 가장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는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맷 데이먼 분)이다. < 런닝맨 > 이 끝나면 평일 밤 11시대 시트콤에 도전하고 싶다. 한 때 '푸짐'한 체형이었으나 수개월 간의 근력운동과 반복되는 < 런닝맨 > 추격전 촬영 끝에 몸짱PD가 됐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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