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엑스레이 작전'

2013. 9. 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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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면 6.25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천상륙작전이 있은 지 63년이 됩니다.

성공확률 5천분의 1이었던 상륙작전을 완수하는덴 우리 해군의 사전 첩보작전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지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사내용]

63년 전 인천상륙작전을 한 달 앞둔 8월 13일.

맥아더 장군의 통보를 받은 해군 총참모장 손원일 제독은 해군 첩보부대에 특별한 임무를 지시했습니다.

작전명 '엑스레이', 상륙작전에 필요한 북한군의 상황과 주변 지리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임형신 사무처장 /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적정 상황, 즉 병력 배치, 규모, 화력, 그 다음에 또 지리적 상황 등을 첩보 수집해서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던 거죠."

3개조, 17명의 대원들은 인천 영흥도를 거점으로 삼아 서울, 수원 등지에서 첩보활동을 벌였습니다.

약혼자와 헤어지고 사랑하는 부모형제와 기약없이 이별해야했던 대원들.

이들은 조국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망설임 없이 작전에 몸을 던졌고,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 보름 전 미 극동군사령부에 기밀을 넘기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인터뷰) 함명수 전 첩보부대장 / 해군 첩보부대

"'약혼자가 있다고 해서 전쟁을 피할 해군 장교가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데려왔는데 참 그런 용감스러운 부하가 있었기에 이 작전이 결국 성공하지 않았겠느냐..."

하지만 위기도 있었습니다.

상륙작전 하루 전날 철수하다 북한군의 거센 공격을 받은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삼등병조(당시 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포로가 돼 자칫 작전이 탄로날까 우려했던 것입니다.

인터뷰) 박창권 전문연구위원 / 한국국방연구원

"적과 싸우다가 마지막에 자결하는 그런 모습, 위국헌신의 자세까지 보였던 그런 훌륭한 작전이고 저희가 (후세에) 길이 명심하고 전해야 할 작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엑스레이' 작전은 성공확률 5천분의 1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이 세계 전쟁사에 유래없는 완벽한 작전이 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6.25의 전세를 뒤바꾸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인천상륙작전, 그 뒤에는 목숨과 기밀을 맞바꾼 해군 부대원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습니다.

KTV 이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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