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알아서 끄는 경로당, 펑펑 트는 대학교

최연진 기자 2013. 8. 15. 03: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경로당·대학교 가보니.. 온도差 10도 이상

"온 나라가 전력난 때문에 걱정인데, 이 정도 날씨에 왜 에어컨을 켜?"(서울 성북구 북정경로당 최낙희씨·76)

"전기세 뭐 얼마나 된다고…. 등록금 냈으니까 시원하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서울 K대생 임모씨·24)

전국에 며칠째 폭염이 이어져 전력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냉방 격차'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가와 카페 등은 무릎 담요를 덮는 사람이 있을 만큼 '과잉 냉방'을 하고 있지만 노인들이 모여 있는 경로당은 아예 냉방기를 돌리지 않는 곳도 많다. 본지 취재진이 12~14일 사흘간 대학교와 경로당의 실내 온도를 측정해 본 결과 무려 10도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경로당 실내 온도는 30도를 웃돈 반면, 대학생들이 많은 공간은 20도를 밑도는 곳도 많았다.

14일 본지가 서울 시내 경로당을 찾았을 때, 노인들은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연 채 바닥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왜 에어컨을 틀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우리라도 전기를 아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2일 서울 성북구 북정경로당의 오후 2시 실내 온도는 32도였다. 햇살이 내리쬐는 바깥(33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은 선풍기나 부채 바람을 쐬며 담소를 나눴다. 온도가 너무 올라간다 싶으면 하루에 한 번, 30분 정도 짧게 에어컨을 켜는 게 전부라 했다. 경로회장 손연옥(77)씨는 "사람이 15명 이상 모이면 잠깐씩 에어컨을 틀기로 다 같이 약속했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절약해야 젊은 친구들도 따라서 절약할 것 아니냐"고 했다. 14일 오후 다시 경로당을 찾았을 때에도 실내 온도는 32.5도였다. 며칠째 이어진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노인들이 마련한 대책은 수박 한쪽씩 나눠 먹기였다. 북정경로당을 관리하는 서울 성북구청의 한인성 주무관은 "여름이면 어르신들이 폭염에 쓰러지실까 봐 30만원씩 냉방비를 추가 지원하는데, 실제 전기료는 월 3만원이 채 들지 않는다"며 "절약이 몸에 밴 분들이라 한여름에도 자체적으로 절약 정신을 발휘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로당의 자체 절약에 서울 강남구청은 노인들을 상대로 '에어컨을 켜야 한다'는 내용의 교육을 벌이기까지 했다.

같은 기간, 본지가 서울 S대·K대·S여대의 강의실·도서관·학생회관 등을 찾았을 때 건물 안 에어컨은 전부 다 가동되고 있었다.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 중 다수가 긴 소매 카디건을 입었고, 무릎 담요를 덮은 학생도 눈에 띄었다. 14일 서울 K대 도서관 건물 지하 1층 휴게실의 온도는 19.4도, S대 도서관은 20~21도로 측정됐다.

학생들은 "이 더위에 에어컨을 안 트는 건 무식한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S대 학생 윤모(여·25)씨는 "절약도 좋지만, 더위 먹고 탈수증 걸리면 병원비가 더 나가지 않겠느냐"며 "학교에서 전기요금으로 얼마를 쓰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낸 등록금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S대 휴학생 김모(23)씨는 "전기 절약은 공장이나 기업이 해야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일부 학생들은 실내 온도가 25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대학 당국에 항의 전화를 걸고 '등록금 냈는데 왜 에어컨 안 틀어주느냐'며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며 "학생들의 무관심과 반발 때문에 절전 실천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