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문화에 젖은 대한민국

김지은기자 김관진기자 2013. 8. 12. 03:3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군대문화] <1> 밀리터리 대한민국신입사원의 카드섹션·학생들의 해병대 캠프..

지난해 국내 유수의 A그룹에 입사한 김모(29)씨는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으로 해병대 캠프에 참가해 레펠ㆍ제식ㆍ도하훈련 등을 받았다. 말 그대로 군사 훈련인 이 교육에는 A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참여한다. 일부 계열사들은 보물찾기 형식의 10㎞ 행군, 지리산 종주 등으로 변형된 교육을 실시하지만 강압적이긴 마찬가지다. "대부분 입사동기들이 교육에 반감을 느꼈다"는 김씨는 "업무와 상관없이 신체를 구속하는 방식의 교육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초일류'를 표방하는 B그룹은 신입사원 수련대회에서 8,000명의 신입사원들이 임원단 앞에 사열해 '초일류'란 글자를 만드는 카드섹션을 벌인다. 수련대회에 앞서 신입사원들은 하루 9시간씩 3일동안 강도 높은 연습을 한다. 6월 4~5일 수련대회에 참석했던 이모(28)씨는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처럼 열과 오를 맞추고 각이 잡힐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원 교육은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겉으로는 '세계 일류'와 '글로벌'을 표방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군대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단을 앞세우고 업무 외의 일까지 기강과 복종을 강요하는 문화는 우리 기업 곳곳에 도사려 있다.

기업만이 아니다.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심심치 않게 얼차려가 행해지고, 중∙고교 교실에서는 개인의 의견 차이를 존중 아닌 제압하는 법을 배우기 일쑤다. 어린 학생들을 해병대 캠프와 같은 군대식 극기훈련에 강제로 참여시키는 일도 많다. 지난달 22일 충남 태안군에서 고교생 5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설 해병대 캠프 사고의 이면에는 '정신무장'이 전부라는 빗나간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 사회에 깊이 박힌 군대문화의 환상이 표출된 셈이다.

용기와 충성심으로 무장해 물러남 없이 필승한다는 군인정신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전투를 가정해 군기를 강조하는 군대문화가 사회에 무분별하게 적용되면서 집단주의, 획일성, 폭력성, 남성우월주의 등 해악을 끼치고 있다. 창의성과 다양성이 무시되면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일찌감치 질식하고 만다. "군기가 빠졌다", "까라면 까라",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상명하복, 비민주성, 불합리성은 사회의 자정(自淨) 기능을 막고 복지부동ㆍ전시행정 등 고질과 안전사고를 낳는다.

한국일보가 온라인 여론조사시스템인 서베이몽키를 이용해 지난 1~9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군대가 아닌 조직 즉 회사, 학교, 스포츠동아리, 각종 극기훈련캠프 등에서 군대문화가 존재한다고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참여자 625명 중 97.6%(610명)가 '있다'고 답했다.

우리 안의 군대문화는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와 "안 되면 되게 하라"를 강조한 군사정권의 경험을 통해 뿌리 내렸다. 홍두승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30년동안 지속된 군사정부를 거치며 군사문화적 요소들이 사회에 확산됐다"며 "신입사원 교육, 대학 신입생 엠티, 각종 합숙 교육, 관료사회의 권위주의 등도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지적했다. 그는 "군대에서 획일성, 권위주의 등을 강조하는 것은 일사불란한 업무처리를 위해 필요하겠지만, 군사문화적 목표지상주의가 사회에 도입됐을 때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김관진기자 spirit@hk.co.kr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