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명예훼손의 대상인가

김은지 기자 2013. 8. 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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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아닌 정부도 명예훼손을 당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국정원 이외의 다른 정부기관도 고소를 일삼았다.

참여연대가 지난 5월 발표한 '국민 입막음 소송 남발 실태와 대책'을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하에서 정부가 국민을 고소한 30개 사건 중 정부가 이긴 사건은 2건뿐이다(지난 4월 기준·25쪽 표 참조). 정부의 낮은 승률은 '일단 하고 본다'는 소송 전략에서 비롯된 면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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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아닌 정부도 명예훼손을 당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국정원 이외의 다른 정부기관도 고소를 일삼았다. 국세청이 나주세무서 직원 김동일씨 등을 고소한 것이 대표 사례다. 결과는 정부의 패배였다. 김동일씨는 1심에서 벌금 70만원 2·3심은 무죄를 받았다. 참여연대가 지난 5월 발표한 ‘국민 입막음 소송 남발 실태와 대책’을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하에서 정부가 국민을 고소한 30개 사건 중 정부가 이긴 사건은 2건뿐이다(지난 4월 기준·25쪽 표 참조). 정부의 낮은 승률은 ‘일단 하고 본다’는 소송 전략에서 비롯된 면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월13일 국정원 감찰실장으로부터 고소당한 나꼼수 3인방도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불기소 결정서에 보면 국정원은 국가기관으로서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해놓았다. 2011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삼았다.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고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에 관여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그 내용이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곧바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

ⓒ뉴시스 2009년 9월17일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소송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미 확립된 내용이다. 헌재는 1994년 국회 노동위원회의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 “기본권의 주체가 아닌 자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 국가나 국가기관 등은 기본권의 주체 소지자가 아니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자”라고 밝혔다.

정부가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박원순 소송’ 1심 판결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한 인터뷰에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국정원이 벌인 민사소송이다(1·2·3심 모두 국정원이 졌다). 1심 재판부는 국가나 국가기관의 업무 처리는 국민의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라는 점, 국가는 잘못된 보도 등에 대해 방대한 정보를 활용해 스스로 진상을 밝히거나 국정을 홍보하는 등 대응 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 만약 아무 제한 없이 국가의 피해자 자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역할이 위축되어 자칫 언로가 봉쇄될 우려가 있다는 점, 많은 국가기관이 소송을 남발할 위험성도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과 결론(무죄)은 똑같았지만 국가가 명예훼손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달랐다. 명백한 허위 사실 유포나 악의적인 비방 등으로 명예훼손 피해를 당했을 때는 제한적으로 국가도 국민과 마찬가지로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이런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국정원은 최근 들어 국정원 조직이 아닌 국정원 특정 직원의 이름으로 고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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