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 시험이 뭐기에..'인생의 시험' 앞에 선 수험생들

2013. 7. 2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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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과 싸우고 있다"

[헤럴드경제=김현경ㆍ이정아 기자] 9급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을 사흘 앞둔 지난 24일 노량진 학원가에는 정중동(靜中動)의 긴장이 흘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무더위와 장대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 속에도 쉬는 사람은 없었다. 독서실로 향하는 수험생들의 발걸음은 바빴고 강의실 문 앞에서 수업을 기다리는 수험생들은 한 자라도 더 보기 위해 노트를 넘겼다. 엉덩이를 붙이고 밥을 먹을 여유조차 없어 노점상에서 끼니를 때우는 이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 간의 노력이 단 몇 시간만에 평가 받는 순간을 앞둔 수험생들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올해는 여느해보다도 더욱 그렇다. 사상 최대의 인원이 지원해 경쟁률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9급 공무원 시험 응시자는 20만4698명으로 지난해의 2배에 가깝고, 경쟁률은 74.8대 1에 달한다.

수험생들은 '경쟁률'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조차 삼가고 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다.

노량진고시원. 이상섭 기자. babtong@heraldcorp.com 2013.07.24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온 최지나(26ㆍ여) 씨는 "일종의 금기어"라며 "시험 준비가 얼마나 됐든 간에 '나는 합격한다'고 믿고 마무리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인생의 시험 앞에 서 있다"는 최 씨의 표정은 결연했다.

지난 2010년 대학을 졸업하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김모(28) 씨는 여러 차례 낙방하자 9급 시험으로 눈높이를 낮췄다. 한 두 문제 차이로 고배를 마시다 보니 아쉬움은 더 크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김 씨는 "시험 공부한 지 2년 정도 지나고 나이가 차니 부모님 눈치도 보이고 손 벌리기도 점점 죄송해졌다"면서 "지금은 가족이나 친구들의 안부 전화도 부담스럽다. 나를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20대 남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불확실한 미래다. 이번에 합격하면 향후 몇십년간 확실한 미래를 보장 받고, 합격 못하면…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수험생들은 하루 종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고시식당에서 7분 만에 식사를 마친 강모(27ㆍ여) 씨는 "하루 종일 고시 식당에서 '밥 주세요' 하는 것 말고는 말할 일이 별로 없다"며 "이말 마저도 하지 않을 때가 많다"고 전했다.

마무리 강의가 있는 노량진 학원의 복도에는 사람 대신 노트들이 줄을 서 있었다. 수업을 기다리는 수험생들이 언젠가부터 강의실 문 앞에 노트를 내려놓으면서 생긴 풍경이다.

"수험생들이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수업 시작하기 전에 일찍 왔는데, 이제는 기다리기 위해 서 있는 시간조차 아깝다 보니 이런 문화가 생긴 것 같다"고 노트를 내려놓던 수험생 박모(25) 씨가 설명했다.

시험을 목전에 둔 그는 "어떤 문제가 출제된다는 등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무성한데, 열의 아홉은 틀린 정보"라며 "떠도는 소문에 귀를 닫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강의실 문이 열리자 그는 자신의 공책이 놓여있는 자리로 재빠르게 돌아갔다.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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