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울어 시뻘게진 피해자 가족의 눈빛.. 강력계를 못 떠난 이유죠"

감혜림 기자 입력 2013. 7. 1. 11:14 수정 2013. 7. 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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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 형사, 청룡봉사상 수상.. 같은 길 걷는 강찬기·윤석 父子

#아버지, 흉악범 잡기 40년

지난 27일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청룡봉사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서울지방경찰청 장기미제(未濟)사건전담팀 소속 강윤석(48) 경위가 단상으로 올라갔다. 부스스한 머리에 수더분한 면 티셔츠를 주로 입던 평소 모습과 달리 각 잡힌 경찰 제복에 머리를 단정히 빗은 모습이었다. 기쁜 듯 볼이 발개진 강 경위를 보며 내빈석에서 체구가 작은 80대 어르신이 미소를 지었다. 강 경위의 아버지로 평생을 강력계 형사로 일한 아버지 강찬기(88)씨였다. 용산경찰서 수사과장(경정)으로 1986년 퇴직한 강찬기씨는 1970년에 청룡봉사상을 받았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강력계 형사는 살인·강도·강간 사건을 쫓는다. 그들은 세상의 밑바닥을 뒤진다. 경찰들은 강력계 형사가 '품만 들고 떨어지는 것은 없는 자리'라고들 말한다. 아버지 강씨는 이런 강력계 형사로 40년간 일했고, 아들은 20년째다. 강찬기씨는 말했다. "가까운 이가 살해당한 사람의 눈을 본 적 없죠? 몇 번이나 정신을 잃고, 너무 울어 눈은 시뻘겋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 나쁜 놈을 꼭 잡아야지' 하는 투지가 생긴다니깐." 그는 "경찰은 돈을 가까이하면 안 되지 않나. 강력 사건 하다 보면 괜한 유혹이 없는 자리라서 몸은 고돼도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돈 받을 일 없어서 맘이 편했다'는 그는 박봉에 수사비가 청구 즉시 나오지 않던 1950~1970년대, 수사비를 대려 시계와 아내의 결혼반지를 수시로 전당포에 맡겼다. "당장 수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돈이 안 나오니 어쩔 수가 없었지. 그래도 맡긴 반지는 월급 받는 대로 즉각 찾아왔어, 하하."

그는 1979년 이른바 '금당 사건'을 해결해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서울 인사동 골동품점 '금당'의 주인 부부와 운전기사가 한꺼번에 살해된 사건인데, 범인은 1982년 사형된 박철웅(당시 41세)이었다. 범인은 조선백자를 팔겠다며 금당 주인을 자신의 집으로 불렀고 돈을 갖고 온 아내와 운전기사도 무참히 목 졸라 죽여 시신을 집 마당에 묻었다.

이전까지 살인 사건을 수백건 넘게 접했던 강씨도 사건 100일 만에 범인을 잡고 나서 몸서리를 쳤다고 했다. 범인은 사건 전에도 외제 차를 몰고 여자도 여럿 만나면서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 그런데도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고 죄 없는 사람을 셋이나 죽였다. 제보를 받아 가려낸 범인은 강씨가 5년 전 사기죄로 잡아넣은 사람으로 2년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 "당시엔 부모 없는 아이가 배고파서 떡 같은 걸 훔쳐 먹거나 지금으로 치면 1000원·2000원짜리 물건 훔쳐서 잡혀 오는 도둑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배가 부른데도, 남보다 잘살고 많이 배웠는데도 사람을 죽이는 파렴치한 놈이 나타난 거지…. 그때는 세상에 그런 짓 저지르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어요." 그는 상 받은 아들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마지막이 아니더라고. 세상에 범죄는 없어지지 않고 더 잔혹해지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아들이 상을 받은 셈 아니에요. 기쁘지만 한편으론 씁쓸해…."

강씨는 때때로 '죄'와 '사람' 사이에서 갈등했다. 1970년대 초 서울 중부경찰서에 근무하던 시절 그는 서울 명동과 남대문 일대의 넝마주이 20여명에게 호적과 통장을 만들어줬다. 형편이 어렵다며 도둑질을 한 범인을 수사하고 구속하고 나서 범죄자 가족에게 몰래 돈을 쥐여준 적도 있다고 했다.

강력계 형사를 가장 약하게 하는 건 '남은 자들'이다. 강력계 형사들은 사건의 결과를 알려주는 역할을 맡는다. 초년병 시절에 그는 전화를 걸어 '잠깐 경찰서로 와주십시오'라고 했다. 전화를 받다가 기절하는 경우가 있어 죽었다는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한 탓이다. 경찰서로 가족이 찾아와 시신 확인을 하고 나면 "좋은 곳에 갔을 테니 걱정 마시라. 우리가 꼭 밝혀내겠다"고 위로했다. 가족이 울거나 기절하는 것을 보면 형사들도 함께 감정이 격해져 눈물이 날 때가 있었다. "그게 강력계 형사의 숙명이다. 그게 싫으면 일찌감치 그만뒀을 것"이라고 했다.

금당 사건 이후 살아남은 유가족은 딸 네 명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아이가 열 살이었다. "도저히 부모가 죽었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 눈물이 쏟아져서. 사건 수사할 때도 애들은 부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외할머니랑 생활하고 있어 도저히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결국 딸들에게 직접 말을 못해서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말을 해줬어요." 강씨는 몇년 전 막내딸의 결혼식에도 참가했다.

금당 사건 범인은 사형되기 전 기독교에 귀의했다. '천하의 몹쓸 놈'이 죽기 전에 '신의 품'에 안긴다는 것이 분하지 않을까.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범죄자라고 종교를 진실로 믿지 못할 이유는 없지요. 유가족도 아마 종교를 가진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범인이 설령 사형된다 해도 이들 마음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습디다. 잊고 살아야지, 뭐… 그런 아픔에 다른 약은 없어요."

그는 요즘 강력 사건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옛날보다 수법도 잔인해지고, 살인이 너무 흔해졌어요. 이젠 살인 사건 일어나도 신문에도 잘 안 나오잖아요. 돈 때문이지, 뭐. 다들 돈이 제일 중요한 게 돼버렸잖아요."

#아들도 20년… 지금은 미제사건전담팀

"집에 잘 안 들어오셨고, 권총을 차고 계셨고, 졸업식장에 한 번도 안 오셨고…." 지난 27일 청룡봉사상을 받은 서울지방경찰청 장기미제사건전담팀 강윤석 경위는 전날 가진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말하며 "네 가지 기억이 있는데, 나머지 하나는 아버지가 내 눈에 정말 멋있었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강씨는 일곱 남매 중 여섯째다. 아버지 찬기씨를 이어 유일하게 경찰이 됐다. "무조건 아버지가 멋있었으니까요. 해보니까 체질이고 팔자더라고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노하우'를 딱 한 번 가르쳐줬다. 그가 경찰에 입문하던 1989년 자신을 앉혀두고 말해준 세 문장이 전부다. "사건은 하늘·땅·피해자·가해자·현장이 안다. 형사는 정성을 다해 현장을 수사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면 답을 줄 것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누가 될까봐 아버지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면서도 "아버지에게서 강력계 형사 정신을 제대로 배웠다"고 했다.

강 경위가 2011년부터 일하고 있는 장기미제사건전담팀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강력 사건이나 신고가 안 돼 묻혀 있는 사건을 발굴한다. 하는 일은 미국 인기 드라마 '콜드케이스(Cold Case)'의 주인공들과 비슷하다. 사건이 오래되다 보니 현장이나 증거가 많이 사라져 피해자나 유가족의 간절함 말고는 증거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강 경위는 "심지어 사건 피해자 중에 가족이 '우리 애가 가출해서 잘살고 있겠지'라는 생각에 신고를 하지 않기도 한다"며 "하지만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신념으로 매달리면 생각지도 못했던 증거가 나오는데, 우리끼리는 피해자가 도와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경위는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아내 살인교사범'을 다시 체포했다. 그는 이미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기 때문에 같은 혐의가 아닌 보험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처승이었던 범인은 자신의 절에서 수행하던 승려에게 "아내를 없애달라"며 살인을 청부했다. 그는 아내를 살해하기 7개월 전 내연녀와 함께 보험사 3곳을 돌아다니면서 아내 이름으로 보험을 들었고, 무죄를 받은 뒤 8억원을 수령했다. 한 무속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34억원짜리 보험을 든 뒤 신원을 모르는 노숙인을 죽이고 자기 이름으로 사망 신고를 내 보험금을 탄 사건도 그가 해결했다.

그는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몇 개월 동안 준비하는 것…그게 바로 사람이고,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게 태어난다는 믿음은 아직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두 가지 사건을 예로 들었다. "한 번 범죄를 저질렀다가도 교사나 친구를 잘 만나서 다시는 범죄 안 저지르는 학생이 있지만, 오히려 부유하게 자라고도 '우리 부모가 돈 많으니까' 하면서 다른 친구를 괴롭히거나 부모를 때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람의 본성이 나쁜 게 아니라 어떤 가르침을 받고 자라느냐가 중요하더라고요. 그런 믿음 없이 무조건 '나쁜 놈'을 잡으려고만 들면 마음이 허해서 강력계 형사 오래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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