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전두환 추징금 환수 '2라운드'..재용 씨가 급해졌다

박세용 기자 2013. 6. 29. 09: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핵심은 2가지, 하나는 추징금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을 비롯한 제3자가 불법 재산임을 알고 넘겨받았으면 그것도 추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점은 어디에 찍힐까요. 저는 '제3자 추징'을 가능하게 한 것이 전두환 일가에는 더 뜨끔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추징금 2,205억 원이 확정된 1997년 이후 지금껏 무려 16년을 버텨왔는데, 검찰이 7년 더 벌었다고 해서 크게 무서울 건 없습니다. 좀 더 버티면 그만이죠. 하지만 '제3자 추징'은 전혀 다릅니다. 당장 대처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껏 전두환 추징금 환수의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제3자 추징'이 불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전두환 일가가 불법 뇌물과 비자금 일부를 넘겨받은 게 확실하고, 그걸 종자돈 삼아 떵떵거리면서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재산에 '전두환'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지 않으면 추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2003년 법원이 경매에 붙였던 서울 연희동의 전두환 자택은 '전두환' 명의로 되어 있어서 가능했고, 서울 서초동에 숨겨놨다가 2006년 한 언론에 들통 난 땅도 '전두환' 명의로 돼 있었습니다. 그 후 7년째 전두환 명의의 뭔가를 그렇게도 못 찾아서, 검찰은 올해 10월 11일을 끝으로 카운트다운을 했던 것입니다.

제3자 추징이 가능해졌으니, 전두환 이름표가 붙어 있어야 한다는 추징의 엄격한 조건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가족이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재산을 받았다. 불법 재산이라는 걸 알고도 그랬다."는 걸 검찰이 입증하면 가족의 재산도 추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입증은 물론 간단치 않습니다. 연좌제라는 위헌 소지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제3자 추징이라는 것은, 단순히 검찰이 시간을 벌었다는 차원이 아니고, 전두환 일가가 서둘러 회의하고, 얼른 측근 변호사를 불러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봐야 하는 일입니다.

이번 개정안으로 엄청난 액수의 제3자 재산이 검찰의 추징 사정권 안에 새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자라는 의혹을 받아온 처남 이창석 씨 명의로 돼 있는 재산이 그렇고, 자녀 전재국-전재용-전재만-전효선 씨 명의로 돼 있는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산이 하도 많다 보니까, 어떤 언론은 1천억 원대, 어떤 언론은 2천억 원대라고 추정할 정도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재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인데, 이건 "전두환으로부터 받았다"는 걸 입증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등기부등본에 전두환이라는 석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의 대규모 임야, 이건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 씨에서 시작해 2006년 전재용 씨를 거쳐 다른 법인으로 넘어갔습니다. 또 경기도 안양의 임야는 역시 이창석 씨로부터 시작해 2006년 딸 전효선 씨에게 증여됐습니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특급 휴양지, 그 드넓은 땅은 '전두환' 이름 없이 장남 전재국 씨와 그의 딸 이름부터 시작합니다. 서초동 시공사의 땅과 건물도 마찬가지. 차남 전재용 씨의 이태원동 고급 빌라 3채도, 삼남 전재만 씨의 한남동 으리으리한 빌딩도, 딸 효선 씨의 연희동 빌라도 전부 그렇습니다. 결국 부동산을 무슨 돈으로 구입했느냐, 무기명 채권을 현금화해서 산 것 아니냐, 그 채권은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계좌에서 나온 것 아니냐, 이걸 역으로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효가 늘어난 7년 동안 말입니다.

제3자 추징이 가능해진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전두환의 불법 재산을 받았다"는 그 명제가 이미 입증된 재산도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차남 재용 씨의 재산입니다. 검찰은 2004년 재용 씨를 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기소했는데, 그때 포탈한 조세라는 것이 '증여세'였습니다. 증여세 포탈이 맞느냐를 따지려면 그게 누군가로부터 그냥 넘겨받은 돈이라는 게 확실해야겠죠.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치는 5차례의 재판 끝에, 당시 재용 씨가 은행 대여금고에 숨겨놓은 무기명 채권 73억 원어치는 아버지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확정 판결이 났습니다. 2007년의 일입니다.

다만 그건 추징금을 환수하라는 판결이 아니고, 조세 포탈 혐의가 인정돼 재용 씨를 형사 처벌한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재용 씨의 무기명 채권이 원래는 '전두환의 재산'이라는 내용은 판결문 안에 들어있던 기본 논리, 유죄 판결의 대전제였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판결문을 뻔히 보고도, 채권 73억 원을 추징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할 수 있게 된 '제3자 추징'이 그때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판결 1년 안에 사해행위 취소소송, 즉 채권 명의를 '전두환'으로 돌려놓으라는 소송을 걸어서, 전두환 이름표를 달아놓은 뒤 추징할 수 있었지만, 왜 그랬는지, 검찰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알고도 안 한 것이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재용 씨 재산 가운데 73억 원은 분명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증여받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재용 씨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은 73억 원 말고 또 있습니다. 법원이 2007년 73억 원을 아버지한테 증여받은 거라고 인정했을 때, 인정하지 않은 채권 뭉치가 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당시 시가로 54억 원어치입니다. 이건 검찰이 자금 출처를 역추적하다 잘 안 나와서, 법원이 '54억 원까지 전두환으로부터 받았다고 100% 단정할 수 없잖아? 73억은 유죄, 54억 부분은 무죄~' 이렇게 된 겁니다. 검찰은 54억 원의 채권 뭉치도 73억 원과 같은 방향으로 자금이 흘러갔다면서 기소했지만, 법원은 검찰이 100% 입증하지 못했다고 본 겁니다. 판결문의 뉘앙스는 전두환 재산으로 의심은 가지만, 단정은 못한다, 정도입니다.

그런데 몇 년 뒤 황당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재용 씨가 '그럼 54억 원은 아버지한테 받은 게 아니라고 판결이 났으니까, 증여세 부과는 취소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러면서 서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었는데, 법원은 2차례의 재판 끝에, '재용 씨 무슨 소리야? 54억 원도 아버지한테 받은 게 맞는데! 세무서의 증여세 부과는 적법한 거야~' 2010년에 이렇게 판결한 겁니다. 재판부의 말은 이렇습니다, 세무서에 형사 소송 수준의 입증을 요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그렇게 하면 부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죠. 재용 씨의 54억 원은 전두환 재산이라는 정반대 판결이 나온 건데, 검찰은 그때도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두 판결에서, 채권 뭉치 54억 원은 똑같은 돈입니다. 그런데 2007년 형사 소송에서는 전두환 돈이 아니라면서 무죄. 2010년 행정 소송에서는 전두환 돈이 맞다면서 증여세 부과는 적법. 결국 채권 54억 원에 대한 증여세 포탈 혐의는 처벌받지 않았는데, 뒤늦게 증여세는 내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죠. 법조계에서는 형사와 행정 소송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이지만, 시민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증여세 포탈이 무죄면, 당연히 세금도 낼 필요 없는 거고, 증여세 포탈이 유죄면, 세금도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상식적인 법감정 아닐까요.

어쨌든 6년 간 벌어진 두 소송을 정리하면, 전재용 씨의 재산 가운데 73억 원은 전두환의 재산, 다른 54억 원은 전두환의 재산이 맞다, 아니다, 판결이 엇갈렸습니다. 적어도 73억 원만큼은 전두환의 재산이라는 것이,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입니다. 검찰은 당연히 이번 추징법 개정안을 적용해 재용 씨의 재산 73억 원을 추징할 수 있을지 검토할 것입니다. 불법 재산임을 알고 받았다, 이걸 입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겠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금, '제3자'의 첫 대상은 그래서 재용 씨가 될 가능성이 높고, 검찰은 1차적으로 재용 씨와의 추징금 환수 전쟁을 벌일 것으로 보입니다.

재용 씨 재산에 관심이 가는 이유입니다. 본인 명의로 돼 있는 건 서울 서초동의 시공사 사옥과 부지의 지분 절반입니다. 장남 재국 씨와 나눠 갖고 있습니다. 재용 씨는 세무서에 세금 수십억 원을 2년째 안 내고 있어서, 시공사 지분을 세무서에 압류당한 상태입니다. 그가 2006년 설립한 부동산 개발 회사 '비엘에셋' 명의로 돼 있는 것도 있습니다. 서울 이태원동의 고급 빌라 3채가 그런데, 이건 재용 씨가 대출을 많이 받으면서 2008년에 부동산 신탁회사에 담보로 맡겼고, 명의가 아예 신탁회사로 넘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서울 서소문동의 빌딩과 토지도 있습니다.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무기명 채권 73억 원은 현금으로 바뀌어 여기 녹아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몰수'는 범죄로 얻은 물건을 콕 찍어서 하는 거지만, '추징'은 그렇게 하지 못할 때 범죄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을 징수하는 일입니다. '무기명 채권 73억 원을 모두 현금화하고, 다른 데 투자해서 그 채권 없어~' 재용 씨가 이렇게 나와도 다른 재산을 추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용 씨 본인 명의의 재산은 바로 추징 가능할 것이고, 명의를 신탁회사로 돌려놓은 부동산의 경우, 국가가 신탁회사에 부동산 처분을 지시해 그 수익금을 추징할 수도 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이 화려한 명의 이전과 비자금 은닉 기술을 선보이며 '29만 원'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아들 재용 씨도 부전자전으로 명의 이전을 시도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추징금 환수 전쟁, 검찰과 재용 씨의 2라운드가 시작됐습니다.

박세용 기자 chatmzl@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