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사건, 기성언론은 철저히 외면했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2013. 6. 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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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경이 만난 사람 : 탐사전문 매체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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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로 이 땅의 민주주의에 작은 힘 바치고 싶어"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 이상훈 선임기자기존의 기자들에게 요즘은 거의 지진 수준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성실하게 취재를 하고 진지하게 기사를 써도 대중들은 "모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 밝혀지다" 등 실시간 중계하듯 올라오는 인터넷 매체의 기사들을 먼저 접하고, 지면 관계상 원고지 10장 정도의 기사를 쓰면 블로거들은 100장 가까이 원없이 글을 올린다. 속도도, 분량도 따라갈 수 없어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최근에 기자들은 또 다른 자괴감을 느낀다. < 뉴스타파 > 란 새로운 언론의 탄생 덕분이다. '한국 탐사 저널리즘 센터'를 표방하는 탐사전문 매체인 < 뉴스타파 > 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로부터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입수해 분석하면서 지상파와 보수언론까지 후속 보도에 나서게 만들었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도 "엄청난 힘과 권한, 초국적인 정보망, 수만명의 전문인력을 가진 정부기관이 수십년 동안 해내지 못했던 일을 언론인 몇 명이 지금 해내고 있다"고 추켜세웠을 정도다. 28명의 직원에 1년 5개월된 신생 매체가 이처럼 큰일을 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51)를 만나려고 사무실을 찾았다. 회의실에선 뜻밖에 피자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김 대표는 "후원자들이 수시로 먹을거리를 보내고 심지어 한약까지 보낸다"며 피자와 콜라를 권했다.

언론사에 독자나 시청자가 먹을거리를 보내는 것은 몹시 드문 일이다. 후원자가 어느 정도인가.

"6월 20일 기준으로 3만여명이다. 대선 이후에 급격히 2만여명이 늘었다. 우리는 비영리 단체이고 이들이 평균 1만원씩 보내준 후원금 덕분에 광고를 하지 않아 광고주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첫발을 내디딘 것이 지난해 1월 27일이다. 이런 반향을 예상했나.

"분명히 언론의 지형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다. 중요한 이슈를 깊이있게 파고들고 감춰진 이면의 진실을 보여주는 언론매체가 필요한 시점이어서 우리가 표방한 탐사보도가 호응을 얻을 것이란 기대는 했다. 미국의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나 공공청렴센터(CPI), 프랑스의 메디아파르(mediapart) 같은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매체가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들도 우리처럼 주류 매체에서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주류 매체의 한계를 절감하고 나와 탐사보도 전문 매체를 설립했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국정원 댓글 사건이 이제 정치권의 핫이슈가 됐다. 6월 20일부터는 서울대를 비롯, 각 대학의 시국선언이 시작됐다.

"조세피난처보다 더 중요한 기사가 국정원 댓글 사건이라고 본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12차례, 매번 10분 정도 분량으로 보도했다.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은 호외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언론에는 단 한 번도 안 나왔다. 뉴스타파를 인용한 기사도 없었고, 국정원 직원이 트위터에서 여론 조작을 했다는 보도도 안 나왔다. 한국 기성 언론이 권력에 얼마나 약하고 눈치를 보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이라는 단서가 확실한가.

"그렇다. 엄청난 시간을 조사해 결국 트위터에서 여론 조작 활동을 한 사람이 심리정보국 직원임을 확인했다. 우리의 분석기법들을 검찰이 많이 참고해 공소장 변경을 통해 새롭게 조사를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IP만 660개를 확인했다. 검토해보니 프로필 사진이 대부분 미녀들의 상반신 사진 등 네티즌들의 눈길을 확 끌기 위해 급조된 것이 역력했다. 국정원 의혹을 다룬 기자는 이제 프로필 사진만 봐도 국정원 직원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12월 11일, 국정원 여직원 사건을 계기로 트위터 계정이 대부분 폐쇄됐다. 남아 있던 계정도 보도 후에 사라졌다. 자신들도 갑자기 너무 많이 만들어놓고는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 같다. 그런 흔적들도 일일이 다 찾아서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확실히 선거에 개입해 댓글을 올린 사실을 알렸다."

그래도 대중적 영향이나 파장이 더 큰 것은 조세피난처 보도가 아닌가.

"조세피난처는 이제껏 내밀한 세계였다. 그 작동 시스템의 전모를 여러 내부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는 조세당국 조사 등에서 일부 밖으로 드러난 개별적 사례가 전부였다. 이번에는 페이퍼컴퍼니 설립 과정부터 이 유령회사의 고객·자산 관리를 대행해주는 업체 직원들이 주고받은 내부 이메일까지 풍부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유형의 자료를 분석해 사상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조는 어떻게 이뤄졌나.

"국제탐사보도협회에서 4월 초부터 국제공조를 통해 각국의 조세피난처 기사들이 나왔다. 그 직후에 우리가 접촉했고. 긍정적 답변이 와서 시작하게 됐다. 1997년 만들어져 현재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되는 국제탐사보도협회도 모태 자체가 비영리·독립 탐사보도 전문기관이다. 지금까지 시신을 의료 부속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나 석면 불법거래 같은 국제적 공조가 필요한 사안을 공동으로 집중취재해 왔다. 조직적 유사성이 있고 뉴스타파가 데이터 저널리즘 쪽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점에서 파트너로 인정한 것으로 본다."

지난 5월 22일 첫 기자회견에서 245명의 한국인 명단이 확인됐다고 발표한 후 차례차례로 실명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타파를 알리기 위한 드라마틱한 연출인가, 혹은 물리적으로 검증 시간이 필요해서인가.

"검색할 파일만 수백만개다.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도 아니다. 온갖 법인 등록서류부터 은행계좌 제출 서류가 있고, 법인 설립을 관리해주는 직원들끼리 주고받거나 대리인·알선업자들과 주고받은 이메일도 많이 섞여 있다. 그것을 다 들여다보고 있고, 사람을 골라내 신원을 특정해내는 게 가장 힘든 작업이다. 실제 거주하는지 확인해보면 상당 부분 일치하는데, 의외로 조세피난처에 회사까지 만들 정도인 사람이 전세 사는 경우도 있고 주소가 바뀐 이들도 있다. 전재국씨도 그가 진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인지를 알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도 일정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것을 그룹화시켜서 하나씩 공개하려고 한다. 그냥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설립했다는 것만으론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니고, 그 계좌를 갖고 어떻게 활용하고 실제 자산·돈의 움직임은 어떠한지 더 파악해서 하겠다는 것이다."

신원 확인이 된 이들이 순순히 인정하나.

"모두 부인하거나 만나주지도 않는다. 취재진이 직접 당사자를 접촉해서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이유와 목적 등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는 과정을 거친다. 순순히 실토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다수는 대답을 회피하거나 지방이나 해외출장을 갔다고 한다. 3차 발표 명단에 포함돼 있던 전성용 경동대 총장만 해도 취재진이 학교로, 집으로 일주일간 쫓아다녔는데 만날 수 없었다. 경비아저씨는 "아, 총장댁이오?"라고 거주 사실을 알려줬는데 정작 인터폰으로 연결하니 "그런 사람 없다"고 발뺌했다. 버진아일랜드만이 아니라 싱가포르 등에 유령회사를 4개 만들고 비밀계좌를 운용한 전 총장의 경우 우리나라 족벌사학의 비리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좋은 사례인데, 대다수 언론들이 그날 함께 발표된 김석기·윤석화씨 부부에 집중하면서 소홀히 취급한 면이 있어 아쉬움이 크다. 전 총장은 관련 보도가 나간 후 사임했다."

취재 과정에서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낮은 인지도다. KBS 출신인 나를 비롯, MBC PD수첩으로 알려진 최승호씨 등 메이저 언론의 프리미엄을 알게 모르게 누렸다. 조세피난처 관련 첫 한국인 명단 발표 전엔 뉴스타파란 이름을 설명하는 데도 한참 걸리고 취재과정에서 협박으로 돈이나 뜯어가려는 사이비 기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서류를 내보이면 화를 내거나 멱살드잡이를 당하기도 하고…. KBS도 우리 기사를 인용하면서도 처음엔 '한 인터넷 매체'라고만 소개하고, 조선일보는 '좌파 성향의 인터넷 매체'라고 하더라."

아무리 신중하게 취재를 해도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예금보험공사의 경우, 이번 공공기관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고 자신들은 (페이퍼컴퍼니를) 삼양종금 해외자산 환수를 위해 세운 것이라고 밝혔다.

"아, 정말 점수가 높나? 아무리 외환위기였다고 해도 공적자금 회수가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예보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게 정석이다. 수천만 달러의 금융자산이 예보 직원 개인 명의의 페이퍼컴퍼니와 이와 연결된 해외계좌로 오갔다면 그 과정에서 금융사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보 담당 직원도 페이퍼컴퍼니의 존재를 몰랐을 만큼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돼 왔으며, 10년 넘게 베일에 가려진 채 감독기관이나 국회에 제대로 보고도 되지 않았다."

왜 기존의 언론사들은 조세피난처 같은 탐사보도를 못했을까. 대부분 신문·방송사가 각 사당 200~300명의 기자들이 있는데 기자로서 좀 부끄럽기도 하다.

"그건 꼭 28명대 280명으로 비교하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 조직이 28명인데 취재인력 20명이 거의 다 붙어서 이 작업을 하고 있다. 전 분야를 다뤄야 하는 기존 언론에서 단일 프로젝트에 20명의 인력을 2개월 이상 투입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아무 규제나 눈치 안 보고 일할 수 있다는 기쁨과 보람에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행복하게 일한다. 또 탐사보도 전문가들이 많아 효율성도 높은 편이다."

앞으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추적 방식을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크라우드 소싱'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언론사의 테두리를 벗어나 집단지성의 참여와 힘을 빌리겠자는 것이다. 더 많은 경험, 지식. 네트워크를 가진 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입수한 명단을 홈페이지에 올리면 영문 이름과 회사명, 주소를 보고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면 바로 '참여' 버튼을 누르고 제보할 수 있다. 질 높고 파괴력 있는 저널리즘을 실현하고 조세정의를 바로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가디언 > 지에서는 2009년에 정치자금 집행 내역을 수십만건 홈페이지에 올려 독자들에게 공개해 훌륭한 기사를 만들었다."

앞으로 어떤 분야를 다루고 싶은가.

"예산문제와 재정분야는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조성한 국가 예산은 국민의 생활과 삶에 직결된 문제이다. 정작 '내년 예산안, 국회 통과'란 기사로만 체감한다. 예산이 어떤 과정으로 편성되고 어떤 힘으로 집행되는지, 즉 내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사례를 모아 보도할 예정이다. 또 공직자 재산과 도덕성 검증도 탐사의 주요 분야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공직자들의 재산 축적 과정을 유권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책무라고 생각한다. 2008년에 취재해보니 오피스텔, 지역농지 등을 안 가진 이들이 드물 정도였다. 어떤 장관의 경우 재산 형성 과정도 의문스러웠지만 엔화 등 외환예금이 전문가 수준이라 놀랐다."

전 직장인 KBS에서도 탐사보도에 몰두했다. 왜 그토록 탐사보도를 강조하나.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고 빛과 소금이지만, 길을 잘못 들면 사회의 흉기고 암덩어리가 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은 대중(Informed Public)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언론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대중들이 현명하게 주권행사를 하고 토론을 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지지 않겠나. 이번에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에서 조세피난처 관련 첫 보도를 하기까지는 260기가바이트(GB)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분석한 15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엄청난 인내심과 끈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신발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니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 탐사보도로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에 작은 힘이라도 바치고 싶다."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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