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2013. 6. 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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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주민 변호사, 국정원 사건 항고…"재정신청도 각오, 지겹겠지만 끝까지 가보려 한다"

[미디어오늘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 필자를 포함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이하 "고발대리인")은 지난 5월 1일 인터넷 게시판 '오늘의 유머'(이하 "이 사건 게시판") 운영자(이하 "운영자")의 위임을 받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을 비롯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직원들과 일반인 이모씨 등을 공직선거법위반, 국가정보원법위반 및 업무방해의 혐의로 고소 및 고발하였다. 검찰은 지난 14일 위 사건을 비롯한 국정원 관련 사건들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우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는 공직선거법위반과 국정원법위반혐의를 인정하였으나, 업무방해부분에 대해서는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유로 불기소하였다. 그리고 그 외의 피고소·고발인들(이하 "국정원 직원 등")에 대하여는 모두 기소유예하였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명령에 따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사결과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검찰 스스로 밝혀낸 사실관계에도 맞지 않고, '동일한 사안의 재발을 방지한다'는 처벌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먼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업무방해부분에 대한 불기소결정을 살펴보자. 검찰 수사결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심리전담팀을 4개의 팀으로 확충하는 등 소위 인터넷 심리전을 기획하고 강조하여 왔다. 이후 지속적으로 활동상황을 보고받은 것 역시 밝혀졌다. 그렇다면 국정원 직원 등의 활동으로 인터넷 공간이 어떤 식으로 변질되었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직원 등의 인터넷활동으로 인해 이 사건 게시판을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들의 업무가 방해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검찰의 판단은 매우 작위적이다.

다음으로 국정원 직원 등에 대한 기소유예결정을 보자.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공무원으로서는 위법한 상관의 명령에 대해서는 이를 따를 의무가 없고, 오히려 이를 거부하는 것이 타당하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원칙을 여러 차례 확인한바 있다. 특히, 대법원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가안전기획부의 직원이 상관의 명령으로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허위의 사실이 담긴 인쇄물을 배포한 사안에서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즈음하여 상관은 하관에 대하여 범죄행위 등 위법한 행위를 하도록 명령할 직권이 없는 것이며, 또한 하관은 소속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으나 그 명령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특정후보에 대하여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확인되지도 않은 허위의 사실을 담은 책자를 발간·배포하거나 기사를 게재하도록 하라는 것과 같이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이는 벌써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또한 검찰 스스로도 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사건에서 상관의 지시에 따라 증거를 인멸한 장진수 전 주무관 등에 대해서 상관의 명령에 따른 행위일 뿐이라는 장 전 주무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소한 바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직원들을 모두 기소유예한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정보를 제보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고집하는 검찰의 태도와 종합하여 보면 더욱-국정원장이 위법한 명령을 하더라도 무조건 따르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일어난 홀로코스트가 나찌의 명령에 대해 거부하지 않고 충실히 그 임무를 수행한 공무원 탓이라는 평가가 있듯이 영혼없는 공무원들이 국민을 상대로 저질러온 범죄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공무원들이 부적법한 상관의 명령에 대해 저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 중 국정원 직원 등에 대한 부분은 이것을 완전히 부인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수사결과는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될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고 할 것이다.

한편,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이후 어떤 정당과 일부 언론은 '국정원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 정도를 가지고 공직선거법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하며 오히려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행위를 비호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심지어는 담당검사의 학생운동경력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위 사건의 고발단계에서 밝혔듯이 국정원 직원 등은 '문재인 화면 잘 받는다'(문재인 당시 후보가 TV화면에 잘 나온다는 내용), '안철수, 문재인 두 후보에게 신뢰가 간다'(후보 단일화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두 후보에게 인간적으로 신뢰가 간다는 내용), '목동녀의 정체가 밝혀지다'(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내연녀로 소문이 나기도 했었던 사람이 사실은 부하직원의 부인으로 밝혀졌다는 내용) 등 북한과는 전혀 관계없는 게시물에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반대행위-이 사건 게시판에서는 게시물에 대한 반대가 4건 이상이면 베스트게시판으로 올라갈 수 없음-를 하는 등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필자는 지금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문재인 후보가 TV화면을 잘 받는다는 사실을 국민이 몰라야만 북한의 위협을 막을 수 있고, 국정에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국민들이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몰라야 국정홍보가 제대로 되는 것인지. 또 국민들이 안철수 당시 후보에게 내연녀가 있다고 잘 못 알아야만 소위 말하는 종북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지. 그들 중에 이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 치졸함은 눈을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기에 운영자는 필자를 포함한 고발대리인을 통해 1)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업무방해부분에 대한 불기소결정과 2)국정원 직원 등에 대한 기소유예결정에 대해 항고하였다. 항고는 어차피 검찰에 대해 하는 것이기에 지금 발표된 수사결과와 다른 결론이 나오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동일한 결과가 나오면 운영자와 고발대리인들은 헌법소원과 재정신청도 한다는 각오다. 지겹겠지만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그래서 국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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