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국정원 댓글 찾았다" 환호 이틀 뒤 "없는 것으로 하자"

정제혁 기자 2013. 6. 1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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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사이버범죄수사대 은폐과정 CCTV 영상·녹취록 공개김용판, 흔적 안남게 '수기 보고' 지시.. 분석자료 전량 폐기도

지난해 대선 막판 판세에 영향을 미친 '국정원 댓글사건'의 중간수사결과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돕기 위해 은폐·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은폐·조작을 지시했다. 검찰은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의 녹화영상을 확보했다. 이 안에는 서울 수서경찰서로부터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노트북을 분석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서울경찰청 분석관들이 범죄 혐의의 단서를 찾고 환호하는 모습부터 김 전 서울청장의 지시를 받고 해당 자료를 은폐·조작하기까지 전 과정이 시간대별로 생생한 육성과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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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대선 전에 국정원의 정치 개입 단서 발견했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던 수서경찰서는 지난해 12월13일 국정원 직원 김씨의 노트북을 분석해달라고 서울경찰청에 의뢰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분석관들은 김씨의 노트북에 있는 메모장을 복구해 국정원 직원이 온라인 사이트에서 게시글을 작성하거나 찬·반 클릭을 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아이디와 닉네임 40개를 확보했다.

서울경찰청은 인터넷 접속기록을 분석해 '오늘의 유머(오유)' 1만7116건, '보배드림' 1348건, '뽐뿌' 1076건 등 2만건에 가까운 온라인 커뮤니티 접속 현황도 파악했다. 노트북에서 오유에 게시된 '저는 이번에 박근혜를 찍습니다'라는 제목의 글도 발견했다. 서울경찰청은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비판하고,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글과 찬·반 클릭한 내역을 다수 확인했다. 서울경찰청 분석관들이 확인한 정치·선거 자료 출력물은 100여쪽에 달했다.

검찰이 확보한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영상을 보면 국정원 직원들이 불법행위를 한 단서를 찾은 서울경찰청 분석관들의 흥분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한 분석관이 "주임님 닉네임이 나왔네요"라고 말하자 다른 분석관은 "박수 짝짝짝"이라고 화답한다. 분석관들 사이에 "한 시간이면 끝나겠죠?" "고기 사주세요" "국정원이 책임…" "(수서서) 수사팀에 구두로 넘겨주고 판단은 거기서 하게 하자" "한 건 했잖아 너 땜에…" "야 대박인데 진짜"와 같은 대화가 오간다. 이때가 12월14일 오전 4시부터 5시40분 사이다.

■ 은폐·조작, 그리고 거짓 수사결과 발표

김용판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디지털분석이 진행된 12월14일부터 16일까지 주말에도 출근, 직접 상황을 챙겼다. 그는 보고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으로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분석관들은 김씨의 노트북에서 복구한 메모장 문서 파일 내용 및 인터넷 접속 현황 등 중요 상황을 수시로 보고했다. 김 전 서울청장은 분석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12월15일 저녁부터 '국정원의 선거 개입 및 정치 관여 혐의는 없다'는 취지의 보도자료 초안을 미리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면서 "수서서 수사팀에는 디지털증거분석 상황과 결과를 알려주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서울경찰청의 지시를 받은 수서서는 12월16일 오후 11시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 게시글이나 댓글을 게재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대선 후보 TV토론이 끝난 직후였다. 100쪽에 가까운 디지털분석 결과물은 이날 밤 전량 폐기됐다.

서울경찰청은 수사결과 발표 직전 수서서에 디지털증거분석 결과보고서를 보냈다. '인터넷 접속기록, 키워드 검색, 최근 사용 파일, 삭제된 문서 파일을 살펴보았지만 혐의 사실 관련 내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허위로 작성된 보고서였다. 허위 보고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은 일부 분석관들은 서명을 거부하는 등 반발했다. 일부 분석관은 '아이디·닉네임으로 작성한 게시글도 남아 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기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검찰이 확보한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영상을 보면 12월16일 새벽 1시쯤부터 서울경찰청 분석관들은 "비난이나 지지 관련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써가려고 그러거든요" "결과적으로 없는 것으로 하자, 그거까지는 우리가 이야기가 되었잖아요" "진짜 이건 우리가 지방청까지 한번에 훅 가는 수가 있어요" 등의 대화를 나눈다. 분석결과의 조작을 모의한 뒤, 이 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것을 걱정하는 내용이다.

<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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