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警, 국정원의혹 '같은사건, 다른수사'

박준호 2013. 6. 1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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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경찰 부실수사 결론 뒤집어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지난해 대선 국면에 파장을 몰고 왔던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의 실체는 결국 의혹이 아닌 '사실'로 드러났다.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는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이 수사 방식이나 관점, 성과 등에서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경찰, 의혹 해소는 커녕 오히려 증폭

경찰은 지난해 12월12일 민주당이 국정원 심리정보국 소속 여직원 김모(29·여)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서경찰서에 고발하면서 수사를 개시했다.

고발장 접수 이후 김씨 소유의 컴퓨터 2대를 임의 제출받고 소환하는 등 수사 초기에는 통상적인 사건 처리 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경찰이 대선 직전 갑작스레 중간수사결과를 내놓으면서 수사의 '균형 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찰 수뇌부는 지난해 12월16일 오후 11시께 느닷없이 중간 수사결과를 내놓토록 지시했다. 요지는 김씨가 정치적 성향의 댓글을 작성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

이를 놓고 특정 후보를 의식한 경찰이 고소장 접수 나흘 만에 서둘러 결론을 낸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대선후보의 방송토론회가 끝난 직후이자 대선을 사흘 앞둔 시점이어서 선거 판도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선이 끝난 뒤 경찰 수사는 뚜렷한 진척이 없었다.

오히려 김씨가 아이디(ID) 수십개로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 정부, 여당에 유리한 글을 올리거나 관련 글에 찬반 표시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이 코너에 몰리는 형국이 됐다. 의심할만한 댓글을 작성한 흔적이 없다는 첫 경찰 발표와 정반대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 내부의 혼란이 가중되자 수뇌부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돌연 수사책임자를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내홍을 가중시키는 자충수였다. 수사팀을 이끌었던 권은희 수사과장은 송파경찰서로 전보 조치됐고, 이를 두고 상층부와의 갈등이 표면화 된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수사 책임자 교체 이후 오히려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정치권은 결국 국정원 직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여야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수사가 한창인 상황에서 정치권이 국정조사를 합의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정치권의 불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경찰 수사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건 이른바 '꼬리 자르기'로 부실 수사를 덮으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4개월간 수사를 진행하면서 핵심 지휘라인에 있는 민병주 전 심리정보국장(옛 심리전단장)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신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넉 달 동안 핵심 인물이 수사 대상에서 배제됐다.

경찰은 인적사항과 증거확보에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는 사이버상 행위라는 점과 신분노출을 하지 않는 국정원 요원들의 직업 특성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했지만 이미 등을 돌린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수사기간 동안 2개 사이트 서버 압수수색과 IP추적, 휴대전화 통화내역 분석, 계좌추적 등과 고발인(3회), 피의자(5회), 참고인(3회)을 제한적으로 조사하는데 그쳤다. 수사의 줄기가 국정원 '윗선'으로 뻗어가진 못했다.

이 같은 수사로 경찰이 내린 결론은 '(국정원이)정치에 관여는 했지만 대통령 선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애매모호한 해석이었다. '부실수사', '눈치보기 수사', '겉핥기 수사' 등의 혹평이 쏟아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두고 경찰이 대선 직전에 부실한 내용의 수사결과를 성급히 발표해 놓고 '말 바꾸기'와 '축소수사'로 경찰 스스로 족쇄를 채운 꼴이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힘겨루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경찰은 검찰보다 한 발 먼저 수사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검찰, 수사 잘 해놓고…막판 '오판' 논란 자초

검찰은 부실수사 논란을 의식한 듯 수사 착수부터 경찰과는 차별화된 양상이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당일 공안부, 특수부, 형사부, 첨단범죄 분야의 최정예 검사들로 구성된 30여명 규모의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검찰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민적 관심을 받는 대형 사건에 대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첫 사례다. 검찰 수뇌부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의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검찰은 초반부터 수사에 속도를 냈다.

수사 착수 10여일 만에 국정원의 핵심 지휘라인을 모두 조사했다. 밑에서부터 샅샅이 훑어가며 수사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 일반적인 수사기법과 달리 애초부터 포인트를 '윗선'에 둔 수사 전략을 짜놓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원 전 원장과 이종명 전 3차장은 각각 2차례, 민 전 국장은 3차례 소환됐다.

사상 두 번째로 국정원 압수수색도 단행했다. 수사를 개시한 지 열흘 넘게 지난 시점인데다 심리정보국이 이미 폐지된 상태여서 압수수색 실효성이 논란이 일긴 했지만, 강제수사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원하는 자료를 확보하겠다는 수사팀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검찰은 경찰이 찾아내지 못한 국정원 댓글 작업의 '흔적'을 찾기 위한 증거수집에도 더 나은 성과를 냈다.

'오늘의 유머', '뽐뿌', '보배드림', '일베저장소' 등 15개 사이트에서 국정원 직원의 계정으로 추정되는 복수의 아이디(ID)와 댓글 등을 다수 발견했다. 민주당(37개), 통합진보당(32개), 안철수(4개) 측을 비방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의 '정치 댓글'은 총 73개였다.

경찰 상층부가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김 전 청장의 지시로 서울경찰청은 국정원 직원 컴퓨터에 대한 디지털증거분석 결과를 수서경찰서에 신속히 제공하지 않아 정상적인 수사진행을 방해했고, 범죄 혐의를 왜곡하는 수사결과 발표문을 작성·배포토록 요구했다.다만 검찰 수사 막판에 원 전 원장의 구속여부와 선거법 적용 문제를 놓고 수사팀과 법무부 장관간 갈등설과 외압 논란이 불거진 것은 '옥에 티'로 볼만 하다.

원 전 원장의 구속여부와 선거법 적용을 놓고 내부적으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외부로 잡음이 흘러나간 것 자체가 수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린 결과를 냈다.검찰과 법무부가 지나친 좌고우면(左顧右眄)으로 수사를 매듭짓는 타이밍을 놓쳐 의혹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경찰이 소환도 못한 원세훈, 검찰이 사법처리

경찰이 4개월간 수사한 끝에 내린 결론은 국정원 직원들이 정치에 관여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를 선거운동이나 선거개입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 결과 국정원 직원 김모(여·28)씨, 이모(38)씨와 일반인 이모(42)씨에 대해 국가정보원법위반(정치관여)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출석에 응하고 있지 않는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의견을 냈다.

경찰은 최종 수사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가 6월19일로 임박한데다가 검찰에서도 수사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현재까지 확인된 혐의에 대해서만 일단 송치키로 했다는 부실 수사의 원인을 수사 의지보다는 시간적 한계로 돌렸다.

이에 반해 검찰은 원 전 원장을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김 전 청장을 형법상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또 원 전 원장의 지시로 선거에 개입한 이 전 3차장과 민 전 국장, 심리정보국 직원들에 대해선 기소유예 처분했다.

이를 두고 검찰의 '봐주기 수사'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검찰은 국정원 조직 자체보다는 원 전 원장 개인의 그릇된 판단과 상명하복이 엄격한 조직 특성을 감안했다.

p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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