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족이 된 '고가 오토바이 동호회 아저씨들'

송은미기자 2013. 6. 4.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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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건축설계사.. 30~40대 회원들 차로 잠식·신호 위반 입건국내 동호회 1000여개 피해 신고도 계속 늘어

지난달 1일 차를 몰고 경기 과천 어린이대공원을 지나던 홍모(56)씨의 시야에 갑자기 오토바이 9대가 들어왔다. 이 오토바이들은 옆으로 나란히 무리를 지어 편도 5차선 도로를 막아 서는가 하면, 예고도 없이 차선에 끼어들고 추월을 일삼았다. 몇 차례나 사고가 날뻔한 아찔한 순간이 이어졌고, 참다 못한 홍씨는 신호 대기중이던 오토바이 한 대의 번호판을 찍어 다음날 서울 송파경찰서에 신고했다. 이 지역의 CCTV 분석에 착수한 경찰은 김모(34)씨 등 오토바이 운전자 9명을 폭주행위를 한 혐의(공동위험행위)로 불구속 입건했다.

3일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이들 폭주족은 의사, 건축설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포함된 30, 40대들로 '오토바이계의 페라리'로 불리며 대당 2,000만원을 호가하는 이탈리아제 고급 오토바이 '듀카티' 동호회 회원들이었다.

CCTV 분석결과 김씨 등은 과천 어린이대공원, 인덕원, 판교, 분당 등지의 도로에서 3시간에 걸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차선을 막아 진로를 방해하고, 신호 위반을 하며 지그재그 운행을 하는 등 도로의 무법자 행세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회원의 오토바이 구입을 축하하며 정상적인 투어링(여럿이 함께 운행하는 것)을 했을 뿐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실은 없다"고 발뺌했으나 CCTV 증거를 들이대자 잘못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10대 폭주족들이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거의 자취를 감춘 반면 이처럼 '동호회 투어링'을 빙자한 30, 40대 오토바이족들의 난폭운전이 최근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특징은 10대들이 가질 수 없는 고가의 수입 오토바이를 떼지어 몰고 다니면서 교통을 방해하고 위협운전을 하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112 신고 사례 중 "강동 IC 부근에서 앞서가던 오토바이 10여대가 차선을 막고 있는데, 간신히 앞질러도 (오토바이의) 성능이 좋아 곧바로 따라붙어 위협을 느낀다" "춘천 가는 도로에서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20여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신경전을 벌이고 묘기까지 부려 불안하다""일산 자유로 등 자동차 전용도로에 고가의 수입 오토바이가 진입해 속도경쟁을 벌여 사고 위험이 높다" 등 피해 신고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경찰도 쫓아다니며 증거영상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불법행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경찰이 추산하는 국내 오토바이 동호회는 1,000여개. 경찰은 일부 동호회 회원들이 소음기를 바꾸는 등 오토바이를 불법 개조해 성능을 과시하다 폭주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이달 13일부터 불법 개조(자동차 관리법 위반) 오토바이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성인 폭주족들은 자신들이 보호장구를 착용한다며 10대 폭주족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폭주족의 판단 기준은 주변 교통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초래했는지 여부"라며 단속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오토바이 동호회 '휙 할리'의 운영진인 이모(49)씨는 "일부가 폭주를 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있지만 교통법규를 준수하면서 건전하게 취미생활을 즐기는 운전자들이 대다수"라며 "30, 40대 오토바이 동호회를 무조건 폭주족으로 몰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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