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가 부끄럽나? 현대사학회의 자기부정

입력 2013. 6. 3. 17:26 수정 2013. 6. 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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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원의 교육창고]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저질러 놓고 자기부정하는 신우파의 비겁함

[미디어오늘 권재원 풍성중 교사·교육학 박사] 이른바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교학사)가 검정을 통과했다고 논란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 교과서의 내용이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교과서 내용을 지레 짐작하여 비난하는 것은 성급한 반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니 이 교과서의 내용을 미리 예상해서 비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교과서의 성격을 두고 현대사학회가 자신을 부정하는 뻔뻔한 행태에 대해서는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정은 이렇다. '현대사학회'가 경향신문이 최근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가 발간예정의 한국사 교과서를 '뉴라이트 성향의 현대사학회가 만든 교과서'라고 부른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기사 보기). 이들의 장황한 주장을 요약하면 1) 이 교과서는 현대사학회 교과서가 아니고, 2) 현대사학회는 뉴라이트와 무관한 학술단체라는 것이며, 그 근거로는 1) 이 교과서 집필진 여섯 명 중 현대사학회 회원은 두명 뿐이며, 2) 현대사학회는 뉴라이트 단체와 어떤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얼른 들으면 그럴 듯 하지만, 조금만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이들의 주장이 마치 예수를 부정하는 베드로처럼 자가당착에 빠져버리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교과서 집필진의 문제부터 보자. 이 교과서 집필진 여섯 명 중 두 명만 현대사학회 회원인 것은 맞다. 그러나 현대사학회가 2008년부터 교과서 발간을 위해 애써왔고, 유력한 회원을 교과서위원장으로 임명하여 많은 준비를 해왔음을 교육계의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집필진 여섯 명 중 불과 두 명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들이 바로 현대사학회 대표와 교과서위원장이다. 그렇다면 이 교과서는 전체 집필진 중 차지하는 비율이 몇 퍼센트이건 간에 현대사학회가 상당히 주도적인 역할을 한 교과서임에 분명하다. 학회 대표와 간부가 단지 개인적 차원에서 참가한 것이라고 견강부회할 수 없는 일이다. 여섯 명 중 다른 네명이 현대사학회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다수결로 이 책은 해당 학회와 무관하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현대사학회 홈페이지 캡처.

그 나마 다른 네명 역시 이 학회 대표와 교과서 위원장이 직접 섭외한 역사교사들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이 자기들과 뜻을 같이 하는 교사들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비판적이고 엄정한 입장을 취할 교사들을 따로 초빙했을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학회의 교과서위원장이자 이 교과서의 주요 집필자인 이명희 교수가 우파 성향의 자유교원노조의 상임대표를 지냈던 인물임을 감안하면 이미 오른쪽으로 편향된 교사들과 상당수준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 이 교과서는 현대사학회의 핵심 간부들과 그 학회에 동조하는 교사들이 만든 교과서이며, 결국 현대사학회의 교과서다. 이 교과서를 출판하는 교학사 관계자 역시, 자신들이 필진을 섭외한 것이 아니라 이 학회 대표인 권희영 교수가 먼저 출판사에 접근해 와서 교과서 집필 의사를 강력하게 드러냈다고 말했음이 주요 언론에 밝혀진 바 있다.

이와 같은 제반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교과서가 현대사학회와 무관하다고 강변한다면 아무리 억지 잘 쓰는 뉴라이트라 해도 그 도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만약 한홍구 교수와 그가 섭외한 역사 교사 네명이 교과서를 집필했다면, 현대사학회나 기타 우익 단체들이 어떻게 나왔을까? 과연 한홍구는 집필진의 1/5에 불과하다고 개의치 않았을까?

다음 주장으로 넘어가자. 이들은 교과서가 현대사학회 것이 아니라고 하더니, 이제는 현대사학회가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아무래도 뉴라이트 교과서란 식으로 말이 퍼지면 해당 교과서가 학교에서 채택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뉴라이트는 어떤 단체나 기관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경향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그들은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단체 앞에는 거침없이 "좌파 교원단체", "좌파 학회", 심지어는 "좌파 정부"라고 불러왔다. 좌파라고 불러주는건 점잖은 편에 속한다. '종북'이라는 표현도 거침없이 사용했다. 게다가 이른바 진보사학계의 학설을 멋대로 '수정주의 사관'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 말 속에는 자기들의 학설이 정통이고 상대방은 그것을 멋대로 뜯어 고쳤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진보사학계의 어떤 학자도 자신들의 사관을 '수정주의'라고 부르지 않았고, 진보진영에서 '수정주의'는 매우 다른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들은 남의 단체, 남의 학설에는 멋대로 이름을 붙이면서 남이 자신들을 "신우파 단체"라고 부르는 것에는 발끈한다. 사실 이들이 뉴라이트가 아닌것은 일면 타당하다. 이들의 행동이나 주장은 사실 "신우파"라는 이름도 아깝기 때문이다. 이들은 "극우파"라고 불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들이 숭상하는 미국에 비유하자면 공화당이 아니라 티파티에 해당되는 것이다.

혹시 현대사학회 회원들 중에는 뉴라이트와 무관한 순수한 역사학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 학회의 교과서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교과서 위원장 이명희 교수는 누가 뭐래도 뉴라이트다. 그러니 학회는 뉴라이트가 아닐지 몰라도 이 학회가 관여한 이 교과서는 명백히 뉴라이트 교과서다. 그게 싫다면 이명희 교수가 교과서 사업을 주도하지 못하도록, 또 그의 극우적인 발언과 주장에 합리적인 제동을 걸어주었어야 했는데 이 학회의 누구도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명희 교수 등이 주도하던 교육 및 교과서 관련 활동을 뉴라이트라고 부른 것은 경향신문도, 소위 좌파세력도 아니다. 그들의 우군인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이미 2년 전에 이명희 교수가 한 축을 이루어 결성한 대한민국교원조합을 '뉴라이트 교원노조'라고 단칼에 규정한 바 있다. 물론 이 단체에는 '교과서 포럼'이란 단체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어서 애당초 뉴라이트가 교과서에 깊게 개입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것이 불만이면 경향신문에게 따질 것이 아니라 중앙일보에게 따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중앙일보 기사)

자, 이제 결론이 났다. 교학사가 발간할 이 한국사 교과서는 현대사학회가 주도한 교과서다. 그리고 이 학회가 아무리 자신들은 뉴라이트 단체가 아니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이 교과서는 뉴라이트 교과서다. 따라서 현대사학회는 스스로 뉴라이트 단체임을 고백하거나, 순수한 학술단체에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암약해온 뉴라이트 회원들을 대거 축출하던가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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