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배우고 싶다"더니..이랜드, 식당 디자인 베껴

2013. 5. 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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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샤브샤브점 성업 듣고 식당 방문

영업노하우 배운뒤 딴 곳에 개업

"우리가 되레 짝퉁으로 여겨져" 분통

사태 확산되자 이랜드 대표 사임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동에서 '바르미 샤브샤브'라는 식당을 운영해온 이준혁(51) 사장은 지난해 말 깜짝 놀랐다. 단골손님들로부터 '경기도 안양 뉴코아아울렛에서도 바르미 샤브샤브를 봤다'는 말을 듣고서다. 이 사장은 안양에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연 적이 없다.

이 사장은 단골손님들의 '제보'를 받고 안양 뉴코아아울렛에 직접 가봤다. 거기엔 '로운 샤브샤브'가 성업중이었다. 인테리어가 자신의 업소와 너무나 똑같았고, 음식 주문 방식까지 유사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이 가게를 이랜드그룹 계열사인 이랜드파크가 운영한다는 점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도리어 중소업체인 바르미 샤브샤브를 '짝퉁업체'로 생각할 것 같았다. 과거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 사장은 2011년 8월 바르미 샤브샤브를 처음 열었다. 외식업계 경력이 많은 이 사장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했다. '친환경'을 강조해 매장 인테리어를 꾸몄고 1만원대의 가격으로 '샐러드 무한 리필 뷔페' 방식을 도입했다.

반응이 좋았다. 개업 3개월 정도 지나 월 매출이 2억원대에 이르렀다. 영등포구 구로동에 직영점을 한 곳 더 열었고 지난해 2월부터 광진구 구의동과 동작구 사당동 등 가맹점도 5곳으로 불어났다. 수년 전 중국에서 외식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20억여원의 빚을 진 이 사장은, "이제 빚 갚고 재기할 수 있겠다"는 희망까지 생겼다.

한창 성공의 꿈이 부풀던 지난해 3월께였다. 홍길용 이랜드파크 공동대표이사와 직원들이 '한 수 배우고 싶다'며 이 사장을 찾아왔다. 연 매출 4000억원대를 올리는 이랜드파크는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도 공동대표이사다. 이 사장은 그들에게 영업 방식을 친절히 소개했다. "이랜드 계열사인 이랜드파크는 샤브샤브 외식업체를 운영하고 있지 않으니 나중에 사업제휴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착각이었다. 이랜드파크는 홍 대표가 바르미 샤브샤브에 다녀간 지 반년가량 지난 지난해 10월 로운 샤브샤브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억울한 이 사장은 인터넷포털 다음 '아고라'부터 찾았다. 그러자 지난 1월 홍 대표가 이 사장에게 전화해 '인테리어 도용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홍 대표가 "나도 인테리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보다) 윗선에서 지시해 바르미 샤브샤브와 똑같은 식당을 만든 것 같다.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이 사장은 전했다.

2월에는 홍 대표가 직접 찾아왔다. 그는 "사비를 털어 1억원을 마련했으니 받아달라"며 사과했다. 이 사장은 그러나 "그룹의 공식 사과와 도용 재발방지 약속을 받고 싶은 것이지 돈을 받고 싶은 게 아니다"라며 돌려보냈다. 이랜드의 로운 샤브샤브는 1월29일 잠시 문을 닫았다가 3월27일 실내 인테리어만 변경해 영업을 재개했다.

결국 이 사장은 이랜드파크에 1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분개했다. "이랜드 법무실장이 찾아와 사과도 하지 않고 '선수들끼리 빨리 끝냅시다'라며 안하무인의 태도만 보였습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아이디어를 베껴가는 일이 너무 흔해 죄의식도 없어 보였어요."

이에 대해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베낀 것은 인정하지만, 지금은 인테리어를 바꾸고 영업을 재개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지난주 사임했다. 이랜드 쪽에선 "인테리어 도용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지금 말할 처지가 아니다"라며 <한겨레>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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