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약 하려면 교회 다니라는 황당한 학교

2013. 4. 23. 16: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진민용 기자]

당시 참석했던 교사들이 직접 작성한 확인서

ⓒ 진민용

경북 안동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독교 학교법인인 경안학원의 김태진 이사장이 지난해 기간제 교사들을 대상으로 '신규 교사 오리엔테이션'을 열고, '계약 연장'을 조건으로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십일조 납부와 교회 출석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954년 반피득 선교사가 설립한 경안학원은 안동시 4개 학교(경안남중·경안여중·경안남고·경안여고)를 소유하고 있다. 이 학교법인은 2년 전 경안노회에서 분립해 나와 별도 이사회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신규 교사를 상대로 한 십일조 납부 및 교회 출석 강요는 당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P교사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P교사에 따르면 김태진 이사장과 경안학원 학교 관계자들은 지난해 2012년 2월 28일 안동의 한 식당에서 경안학원 소유 4개 학교 기간제 교사와 영어강사·수준별 강사 등 약 40여 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김 이사장은 기간제 교사들에게 전달사항이라며 몇 가지 강조를 했다고 한다. P교사가 정리한 김 이사장의 발언 요지는 다음과 같다.

2013년 기간제 및 강사 임용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근무평점 점수(아래 근평)에 참조해 재임용에 참고하겠음. ▲ 경안비전교회에 출석점수를 매겨 기간제교사 근평에 반영하겠음. ▲ 경안비전교회에 십일조험금의 제출여부를 기간제교사 근평에 반영하겠음. ▲ 경안비전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정도와 학교에서의 직무능력을 보고 근평에 반영하겠음.

위에 언급된 '경안비전교회'는 김태진 이사장이 장로로 시무하는 교회다. P교사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기간제교사들의 출석을 강요하고, 십일조를 내도록 할 뿐 아니라 이를 교사 재임용의 조건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당시 교사들은 충격에 빠졌다"고 전했다.

이사장 "우리 학교, 학생 전도가 우선"

학교법인 경안학원 누리집

ⓒ 누리집 갈무리

이에 대해 김태진 이사장은 지난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부 교사들이 음해를 목적으로 퍼뜨린 오해'라는 반응이었다. 김 이사장은 교회 출석 강요 논란에 대해 "기독교 사학재단의 특성상 기독교인을 기간제 교사로 임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그들은 기간 출석확인서를 제출했는데, 이를 믿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즉 일부 교사들이 교회 출석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하기 때문에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에 출석토록 했다는 것. 그는 "이 과정에서 강요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십일조 헌금을 강요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교회를 출석하는지 여부를 가장 확실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십일조 아니냐"며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교회 출석을 확인할 수 있고, 연말정산 때 서류를 제출하도록 했을 뿐이다, 우리 교회에 나와서 헌금하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출석하는 경안비전교회에 봉사를 강요한 부분에 대해 "경안비전교회는 경안학원이 운영하는 교회로, 경안여중 내 임시 장소를 빌려서 예배를 한다"며 "교사들이 가까운 곳에서 예배를 하도록 하기 위해 추천을 했을 뿐이며, 절대로 강요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경안학원은 학생들을 전도하는 목적으로 설립됐고, 이 목적에 따라 교사들 또한 일정 자격을 갖춘 이들로 선별하는 건 마땅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기간제 교사들 "인사권 남용, 비정규직만 희생양"

안동지역의 한 목사는 "특히 갑을 관계에 있는 약자에게 재계약을 빙자해 교회 출석과 헌금을 강요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 김지현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했던 기간제 교사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김 이사장이 정작 정규직 교사들에게는 교회 출석 및 십일조 납부 등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정규직들은 임용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만약 그들에게도 학원과의 재계약을 해야 한다면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만약 정규직에 대해 신앙심을 강요할 경우 전교조 등 교사단체로부터 항의를 받을 것을 우려한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즉 '상대적으로 약자이자 1년 마다 주기적으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기간제 교사들의 약점을 악용한 권력의 남용이자 인사권 남용'이라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일반 학교의 교사들은 경안학원의 조치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인근 학교 교사인 조아무개(39)씨는 "아무리 기독교 사학이지만 교사들에게 학생들을 전도하라는 건 교육의 기본개념을 모르는 것"이라며 "전도를 하고싶다면 우회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왜 기간제 교사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교사인 박아무개(49)씨는 "정규직들에게는 그런 기준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기간제 교사들에게만 강요한다는 것은 권력 남용·인사권 남용"이라며 "기간제 교사들의 월급은 기껏 100만 원 남짓한 실정인데, 거기에 10분의 1일 강납시키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목사들도 경안학원의 조치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동의 한 교회 목사는 "아무리 기독교 학원이라고 해도 교육의 기본을 무시한 종교 강요는 용납되서는 안 될 것"이라며 "특히 갑을 관계에 있는 약자에게 재계약을 빙자해 교회 출석과 헌금을 강요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진후 의원실 "경북교육청에 실태조사 지시할 것"

한편, 진보정의당 정진후(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의원실은 지난 18일 "경상북도 교육청에 정식으로 조사를 의뢰한 뒤 위계에 의한 강요나 위법행위 또는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강력하게 행정 처분을 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 의원 측은 "경안학원의 김태진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회는최근 횡령을 저지른 전력이 있는 최아무개 사무국장에 대해 경북도교육청으로부터 지난해 초 징계 지시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하면서 현재 교육청의 지원이 사실상 중단 된 상태"라며 "이런 와중에 터진 기간제 교사에 대한 권력 남용의 문제를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아이폰 앱 출시! 지금 다운받으세요.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