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여권 덕에 탈출한 난민신청자를 "허위서류"라며 구금

2013. 3. 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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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종교적 박해'로 피신해온 이란인에

출입국관리소, 강제퇴거 명령 내려

난민협약·법무부 지침과도 어긋나

이란인 "허위서류 아니면 탈출 불가"

2년 전만 해도 하미드(가명·26)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알지 못했다. 한국의 외국인보호소에 갇혀 단식농성을 하게 될 줄도 몰랐다.

2011년 5월, 하미드는 고국 이란에서 탈출했다. 까다로운 이슬람 율법이 싫었다. 날마다 코란(이슬람 경전)을 읽는 일도 지쳤다. 다른 종교에 눈뜬 것은 4년 전이다. 이란 테헤란의 독실한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하미드는 친구의 소개로 2009년 개신교 교회에 발을 디뎠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아버지는 아들의 개종을 알게 된 뒤 매일같이 하미드의 일터에 찾아왔다. "무슬림으로 돌아오라"며 아들을 위협했다. 이슬람 율법에서 벗어난 이에겐 생명의 위협을 포함한 응징이 가해진다는 것을 하미드는 알고 있었다. 어느 날엔 경찰도 찾아왔다. 그에게 개신교를 소개해준 친구는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하미드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고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국을 거쳐 '난민 인권의 천국'인 캐나다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망명을 주선한 브로커는 그가 한국에 온 뒤 연락이 끊겼다.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사는 기간이 길어졌다. 지난 1월에는 이란에 있는 형 하산(가명·28)이 투옥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하미드가 형에게 보낸 교회 예배 영상과 사진 때문이었다. 2월25일 이란 혁명법원은 하미드에게도 소환 명령을 내렸다. '배교와 신성한 예언자를 모욕한 혐의'였다. 이제 하미드는 캐나다로 떠나는 일보다 한국에서라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일이 더 급해졌다.

하미드는 지난 13일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난민인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정치·종교적 박해를 받는 하미드의 처지는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퇴짜를 놓았다. "난민 신청 사유는 묻지 않고 위조여권에 대해서만 물었다"고 하미드는 전했다. 이튿날인 14일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그는 경기도 수원의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 '위조여권'으로 입국한 불법체류자로, 출입국관리법 7조1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조처는 법무부의 '난민 인정 업무처리 지침'과 어긋난다. 법무부 지침은 '난민 인정을 받을 목적으로 허위 서류를 행사한 자'는 보호(구금) 상태에서 절차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신청인이 허위 서류를 행사하였음을 자진해 신고하는 등 난민 신청의 진정성이 인정되는 경우'는 예외로 뒀다. 하미드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낸 서류에 자신이 위조여권을 사용한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

비영리 공익변호사 단체인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위조여권이 아니면 자국에서 탈출할 수 없는 난민들이 많다. 스스로 위조여권을 사용한 것을 밝힌 난민을 구금한 것은 법무부의 지침에도 어긋나고, 난민 신청자에게 불법 입국을 이유로 벌을 줄 수 없도록 한 난민협약 31조에도 반하는 조처"라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이는 난민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로, 위조여권을 가지고 입국한 난민을 이렇게 구금한다면 무서워서 누구도 난민 신청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익법센터 어필은 이와 관련해 21일 법무부 장관에게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유엔 '자의적 구금 실무그룹'과 '종교의 자유 특별보고관', '고문에 관한 특별보고관'에 긴급 진정을 낸 상태다. 보호소에 구금된 하미드는 17일부터 일주일째 곡기를 끊고 단식농성중이라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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