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최고 실세 '대검 중수부장들'의 출세와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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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전재욱기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일종의 군대와 같다. 거악에 맞서 그만큼 단기간 내에 전방위적인 수사성과를 낼 수 있는 조직이 있는가? 지금 중수부의 운명은 운영자가 잘못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 외에 중수부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나? 결국 그 사건이 중수부의 위기를 가져왔다."

검찰총장의 출신의 한 인사는 중수부의 위기를 이같이 풀이했다. 그가 이 말을 한 당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로, '중수부 폐지'가 확실시 되는 분위기였다. 결국 '중수부 폐지'는 확정됐다.

지난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중수부 연내 폐지' 결정 발표 이후 대검 중수부는 긴 침묵에 들어갔다. 대선 전 중수부 폐지안 추진 소식에 반발하며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대검찰청이 발표 당일 "인수위가 제시한 큰 방향에 따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검찰개혁을 실천하겠다"는 짤막한 공식입장을 남겼을 뿐이다.

검찰을 떠난 과거 중수부 출신들도 입을 다물고 있다. 한 중수부 간부 출신 변호사는 "다 끝난 마당에 무슨…"이라며 '한 마디'를 거절했다.

그러나 아쉬움과 원망스런 마음을 감추지는 않았다. 다른 중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중수부를 폐지하면 검찰이 개혁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수부 간부 출신 변호사도 "대체부서를 설립하기 전까지라도 얼마든지 변화의 기회를 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며 "중수부 폐지 이후 대체부서나 관련 제도 개혁이 지금 중수부 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인수위의 '중수부 폐지안' 확정 후 가장 충격에 빠진 것은 물론 전·현직 중수부 출신들이다. 한 중수부 간부는 폐지안이 무르익을 때 "고비처든 특별감찰관이든 중수부와 수사실력을 겨루게 한 뒤 결정해야 한다. 물론 100% 자신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만큼 '대검 중수부'에 대해 애착이 있었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중수부 폐지' 결정은 번복되기 어렵게 됐다.

◇역대 대검 중수부장 현황

김경수 현 중수부장까지 역대 중수부장은 총 31명이다. 이 가운데 4대 부장인 김경회 전 부산고검장, 7대 부장인 최명부 전 대구고검장 등 2명이 사망했고 현재 29명이 남아있다.

역대 중수부장들 중에는 영남출신이 16명으로 가장 많다. 이중 경남출신이 6명, 경북 5명, 부산과 대구 각 2명, 울산 출신이 1명이다.

이어 호남 5명(광주2명, 전남2명, 전북1명), 서울 4명, 충남 2명, 경기 2명, 충북 1명, 제주 1명 순이다.

◇영남출신·서울대 출신 압도적

학교로는 서울대 출신이 22명으로 압도적이다. 제23대 중수부장인 안대희 전 대법관을 포함해서다. 안 전 대법관은 서울대 행정학과를 중퇴한 이후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를 수료했다.

그 다음은 고려대다. 총 6명의 중수부장을 배출했다. 이어 연세대와 부산대, 충남대 출신이 각 1명씩 중수부장을 맡았었다. 학교로만 놓고 보면 서울대 쏠림이 매우 심한 편이다.

중수는 본질적 기능상 주요 권력형 비리와 대형 기업사건을 주로 담당해왔다. 나라 안을 발칵 뒤집는 사건이 터지면 수사 현장에는 늘 중수부가 있었다. 자연히 국민들의 주목을 받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특히 중수부장은 출세가도를 보장하는 일종의 디딤돌이 됐다.

검찰총장만 6명이 나왔다. 1대 이종남, 2대 김두희, 11대 김태정, 16대 박순용, 17대 이명재, 22대 김종빈 중수부장 등이 이후에 검찰총수에 올랐다. 1대 이종남, 2대 김두희 부장과 11대 김태정 부장은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둘 다 지냈다.

◇총장 6명·장관 5명 승진

장관은 이종남, 김두희, 김태정 부장을 포함해 5명이다. 이들 3명 외에 10대 정성진 부장과 26대 이귀남 부장이 법무부장관에 올랐다.

검찰 밖의 고위직으로 올라간 사람도 있다. 3대 한영석 부장은 법제처장을 지냈으며, 8대 신건 부장은 국정원장과 18대 국회의원이 됐다. 23대 안대희 부장은 부산고검장과 서울고검장을 거쳐 대법관이 됐다.

12대 이원성 부장은 1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으며, 14대 최병국 부장은 16·17·18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되며 3선의원의 중견 정치인이 됐다.

◇이종남 1대 부장

중수부가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사건은 '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사건'이다. 장씨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씨의 처제다. 이종남 1대 부장은 장씨 부부를 6400억원대 어음사기혐의로 기소했다.

2대 김두희 부장은 명성그룹 김철호 회장 사건과 영동개발사건을 처리했다. 3대 한영석 부장은 1985년 금강 상수도 등 정부공사 발주 비리사건을 지휘했으며, 4대 김경회 부장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지휘해 당시 치안본부장을 구속했다.

강원일 5대 부장은 서슬이 퍼렇던 5공 시절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의 새마을운동본부 비리를 수사했다. 강 부장은 정치권이 당시 검찰지휘부를 통해 수사를 간섭하자 일주일간 출근을 거부하며 맞서기도 했다.

◇강원일 5대 부장

6대 박종철 부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5공화국 비리 수사를 맡아 장세동, 이학봉 등을 구속했으며, 최명부 7대 중수부장 재직시에는 한보그룹의 수서비리사건을 수사했다. 이 사건은 한보그룹이 수서지구 땅을 특혜분양받기 위해 정관계인사들에게 금품을 뿌린 사건이다. 이때 이태섭 의원 등 국회의원과 장병조 전 청와대비서관 등이 구속됐다. 정홍원 새정부 국무총리 후보자가 당시 중수부 3과장으로 수사 실무를 맡았다.

◇안강민 중수부장 노태우 전 대통령 법정 세워

이후 중수부는 13대 안강민 부장 재직시 '거악척결'의 절정을 향해 치닫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재벌들로부터 2800억여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법정에 세운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 선 첫 사례를 남겼다. 이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 7명도 함께 법정에 섰다.

◇심재륜 15대 부장

15대 부장인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1997년 한보의 5조7000억원 특혜대출 사건을 파헤치면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구속했다. 국민들은 중수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일부 시민들은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국민검사'라는 말을 이 때 처음 듣기도 했다.

참여정부 초기 중수부장에 임명된 안대희 23대 부장은 불법 대선자금을 파헤쳤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삼성과 LG, SK 등 대기업으로부터 수백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모금한 사건을 수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을 구속하고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회장 등 재계 거물들을 줄줄이 기소했다. 당시 안 부장은 '스타검사'로 인터넷 포털에 팬카페까지 생겼다. 당시 청와대에서도 '안 부장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라는 말이 나왔다. 안 부장은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박영수 부장 '재계의 저승사자' 별명 붙어

◇박영수 25대 부장

25대 박영수 부장은 '중수부 수사의 결정체'를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현대차그룹 횡령 및 배임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며 정몽구 회장을 구속기소했다. 또 론스타 헐값매각 의혹사건을 파헤치치면서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외환은행장을 기소했다. 그는 '스타검사'로 불리우는 몇 안 되는 검사 중 한명이 됐다.

30대 최재경 부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사건을 수사하면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구속기소했다. 또 솔로몬·미래저축은행회장 등 저축은행 비리사건을 지휘하면서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형이자 새누리당 5선 의원인 이상득 전 의원을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구속기소했으며, 같은 혐의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박지원 민주통합당 전 원내대표을 기소했다. 최 전 위원장은 2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으나 이 대통령의 특사로 풀려났다. 또 이 전 의원은 징역 2년, 정 의원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 중이다.

◇정성진 부장, 보임 17일만에 자진하차

그러나 중수부장이라고 해서 항상 끝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10대 정성진 부장은 1993년 3월 중수부장으로 임명됐으나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부인의 상속재산 신고액으로 정치쟁점화 되자 스스로 중수부장에서 물러나 검찰을 떠났다. 중수부장 보임 17일만이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했지만 역대 인물 중 가장 짧은 임기를 기록한 중수부장으로 남았다.

◇김태정 11대 부장

정 부장의 뒤를 이어 중수부장이 된 11대 김태정 부장은 율곡비리, 동화은행 비자금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수사하고 슬롯머신 사건 수사 당시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을 구속한 뒤 부산지검장, 법무부차관,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에 임명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부인 연정희씨의 고액 옷로비사건에 휘말리면서 장관 임명 보름만에 물러났다.

20대 김대웅 부장 역시 고속철도 로비사건, 안기부 선거자금 개입사건 수사 등을 지원했으나 중수부를 나온 이후 '이용호게이트' 사건 수사기밀 누출 혐의로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함께 기소됐다. 이들은 22대 김종빈 부장이 기소했다.

◇'중수부=정치검찰' 이인규 부장때 지적 많아

전직 검찰총장의 지적처럼 중수부가 결정적으로 '권력의 시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때는 28대 이인규 부장 때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인규 28대 부장

이 부장은 이명박 정부 1년차인 2009년 1월 보임돼 '박연차 게이트'사건을 지휘했다. 당시 이 부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 혐의를 적용해 소환조사까지 했으나 20일 넘게 결론을 못 내면서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또 홍만표 당시 수사기획관은 아직 조사 중인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내용을 여론에 여과 없이 흘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비극을 불러왔고, 이 부장은 '공소권 없음' 처리로 사건을 종결한 뒤 검찰을 나와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가 됐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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