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숭례문 화재때처럼 짠해"..서민 애환 서린 '육미집' 잿더미

손대선 2013. 2. 1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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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18일 오전 8시께 서울 종로구 공평동 종각역 3번 출구 부근.

영상 1도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 출근길을 재촉하던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종로타워빌딩 뒤편의 골목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경찰이 쳐 놓은 폴리스라인 안쪽의 골목길은 일명 '화신먹거리촌'. 장안에서 '술 좀 마신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러봤을 만한 곳이다.

전날 오후 8시20분께 이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2시간여 동안 계속된 불은 화신먹거리촌 초입에 줄지어선 점포 23곳을 휩쓸었다. 지은 지 수십 년이 된 목조건물은 이웃사촌처럼 사이좋게 다닥다닥 붙어 있다가 일시에 화마에 스러졌다.

시민들은 출입이 통제된 화신먹거리촌의 상태가 궁금한지 화재 뒤처리에 나선 소방관들과 전력 복구 작업에 나선 한전직원들을 붙들고 두서없이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모두 탔다"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발화지점을 화신먹거리촌의 정중앙에 위치한 '육미집'으로 추정했다.

평소 같으면 화재의 책임여부를 두고 욕을 해댈 테지만 3층짜리 이 건물의 의미를 알고 있는 이들은 손가락질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먼저 내보였다.

육미집 건물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성지출판사에서 근무한다는 4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점심, 저녁도 모두 해결되고 직장 동료들하고 술 한잔 하기에는 딱인 곳이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색 바랜 노란색 가로간판으로 상징되는 육미집은 1983년부터 이 골목에 자리 잡았다. 3층 호프집을 제외한 1층 전부와 2층 일부를 사용한 육미집은 상호 그대로라면 고기를 주로 팔아야하겠지만 주력 메뉴를 가늠할 수 없는 곳으로 유명했다.

입구간판에 '회덮밥전문'이라고 적혀 있지만 메뉴판에 빽빽하게 적힌 술안주가 보는 이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모듬꼬치, 군참새, 한치회, 홍어회, 밴댕이회 무침, 숭어회, 병어회, 모래집, 벌교참꼬막 등 100여가지 안주를 파는, 메뉴 많기로 라면 요즘의 '김밥천국'이 부럽지 않을 곳이었다.

'착한 가격'으로도 유명했다. 대다수 안주는 1만원 안팎. 애주가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모듬꼬치 한접시의 가격은 달랑 만원 한장이었다.

후추향이 강하지만 '무한리필'되는 어묵탕은 이곳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을 상징하는 서비스 안주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퇴근길에 홀로 들러 어묵탕에 소주 한병을 마시고 단돈 3000원만 내고 귀가하는 모습은 이곳의 흔한 풍경이었다.

육미집의 소실이 더욱 아쉬운 것은 이곳의 질긴 생명력 때문이다.

화신먹거리촌 일대는 2009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추진됐던 청진동 재개발의 여파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서울의 전통거리가 사라진다"는 시민들의 비판을 받으면서 기사회생한 바 있다.

이른 아침 근처 프랜더 어학원을 찾았던 안모(21)씨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친구들하고 소주를 처음 마신 곳이 육미집이었다"며 "싼 맛에 그동안 셀 수 없이 들락거렸는데 단골집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육미집과 5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에서 선술집을 운영한다는 50대 아주머니는 이날만큼은 경쟁업소가 겪은 불행에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육미집에 대해 "가장 좋은 점은 싼 가격에 메뉴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돈 없는 노인네들이 특히 좋아했다. 나도 정종대포에다가 먹은 참새구이가 기억난다. 또 계절메뉴가 다양했다. 음식도 그 가격에 그 정도면 참 맛있었던 것 같다"고 입맛을 다셨다.

그는 "오늘 아침에 (육미집)주인이 와서 소방관들하고 얘기를 나누던데 남일 같지가 않았다"고 말했다.

화재소식을 듣고 인근 탑골공원에서 왔다는 김모(73) 할아버지는 "친구들하고 자주 왔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돈 만원만 있으면 좋은 회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며 "숭례문 불났을 때 참 말로 표현 못할 만큼 가슴 아팠는데, 그 때처럼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오전 9시께 소방관들의 건물 해체 작업이 본격화됐다. 이제는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육미집의 잔해 속에서 '육미'라고 적혀 있는 붉은 입간판 하나가 앙상한 뼈처럼 눈에 들어왔다.

출근시간에 쫓긴듯 직장인들은 스마트폰으로 그 입간판을 열심히 촬영했다. 마치 30년 지기의 마지막을 배웅하듯이.

sds110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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