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 불법댓글 '구글'에서 딱 걸린 이유

입력 2013. 2. 15. 10:30 수정 2013. 2. 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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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라이버시의 종말]

구글링도 모른 국정원의 '얼치기' 사이버공작

문제 글 삭제 뒤에도 구글 '저장된페이지' 흔적 덜미

구글 쪽 "검색결과 페이지 삭제 요구 누구나 가능"

#1.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씨와 국정원은 '정치 개입' 여론공작을 극구 부인하다가, <한겨레> 보도로 김씨가 '오늘의 유머', '보배드림', '뽐뿌' 등의 사이트에서 정부·여당에 유리한 글을 작성하고 게시글에 추천·반대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씨는 민주당의 폭로 등으로 자신이 작성한 글 상당수를 삭제했지만, 그 흔적마저 지우지는 못했다. 김씨가 유머사이트, 중고차 매매 사이트 등에서 작성한 글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48차례 해외순방을 칭송하고, 원자력발전과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한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김씨가 다급하게 삭제한 내용이 검색엔진 구글을 통해 상당부분 원문 그대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2. 최근 철저하게 익명으로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 일부 사진을 공개했다가 문제가 되자 삭제한 일이 있었다. 사진을 공개한 당사자가 강경한 대응 의지를 밝히자 호기심에 사진을 함부로 퍼간 이들이 부랴부랴 이를 삭제했다.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은 관련 검색어의 자동작성 등을 막고 해당 콘텐츠를 차단함으로써 피해 확산 방지에 나섰다. 하지만 구글에서는 해당 사진을 퍼간 다수의 페이지가 검색됐다. 특히 구글이 검색결과 화면에서 노출한 다수의 콘텐츠는 실제 해당 페이지에서는 사진과 글이 삭제되었는데도 구글이 제공하는 '저장된 페이지'에서는 삭제되지 않은 상태로 서비스됐다.

'구글링(googling)'이 화제다. 구글링이란 말은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한 말로, 말 그대로 '구글을 이용해 검색을 하다'는 뜻이다. 구글이 미국 등 영어권에서 지배적 검색엔진으로 쓰이면서 "검색하다"를 넘어 "누군가의 신상정보를 찾아낸다"는 '신상털기'의 의미를 갖게 됐다.

그러나 최근 국정원 여직원의 정치 개입 댓글 사건에서 '구글링'이 화제로 떠오르면서 국내에서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앞서 제시한 두 사례에서처럼 '구글링'이란 말이 "구글을 이용해 삭제된 정보를 찾아내는 일"로 통하게 된 것이다. 애초 글이 게재된 사이트에서는 삭제됐지만, 구글 검색엔진을 이용할 경우 구글의 검색결과 페이지에서 찾아지는 현상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구글만의 기능이 아니고 검색엔진 일반의 기능이다. '저장된 페이지(cached)' 또는 '미리보기'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이런 형태의 검색결과는 이용자의 검색 편의를 위해서 검색엔진이 검색결과의 사본을 자체 서버에 저장해두고 서비스하기 때문이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나 과도한 방문이 몰릴 경우 등에 대비해 빠르고 좀더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저장된 페이지'가 필요하다는 게 검색엔진 쪽의 주장이다. 구글만이 아니라 네이버, 네이트 등도 검색결과에서 이를 통해 제공한다. 다음은 웹문서 검색에서 텍스트 형태로만 제공한다.

하지만 자체 서버에 검색결과를 옮겨다 놓는 '저장된 페이지'는 논란이 있는 서비스다. 콘텐츠 생산자의 동의 없이 검색로봇(크롤러)이 긁어다가 자체 서버를 통해 서비스하는 속성상, 저작권 위반 논란이 생겨났다.

미국에선 2004년 4월 작가이자 변호사인 블레이크 필드가 구글을 상대로 '저장된 페이지'가 저작권을 침해한다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네바다지방법원에서 문제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적이 있다. 저작권 논란에서 '저장된 페이지' 서비스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논리의 주된 근거는 웹페이지 문서 제작 때 메타태그 설정을 통해서 얼마든지 이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검색엔진은 해당 페이지를 영구저장하는 게 아니라 검색결과 안정성을 위해서 '일시저장'할 따름이고 콘텐츠가 삭제수정 등 업데이트될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저장된 페이지의 내용도 업데이트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검색엔진 크롤러가 저장된 페이지를 업데이트하기 이전이라도 삭제 요청이 있으면 바로 저장된 페이지를 삭제한다는 점도 이 서비스의 주된 속성이다. 저장된 페이지 서비스는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도 이용이 가능한 '공정 이용(fair use)'에 해당된다는 게 법원의 판결 이유였다.

이런 메타태그 설정에 따라 검색결과 페이지에서 어떤 사이트는 저장된 페이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이트는 없다. 포털이 운영하는 블로그나 언론사의 뉴스 사이트는 대개 메타태그 설정을 통해 검색엔진이 저장된 서비스 하는 것을 거부한다.

구글쪽의 설명에 따르면 삭제된 페이지의 내용이 구글 검색결과 저장된 페이지를 통해 서비스되고 있는 경우 크롤러의 자동 업데이트 이전에라도 즉시 삭제를 요구해 처리할수 있다. 구글은 블로그를 통해 '검색 결과 긴급 삭제 요청' ( http://googlekoreablog.blogspot.kr/2011/06/blog-post_07.html)을 안내하고 있다. 긴급삭제 요청의 경우 빠르면 즉시, 늦어도 24시간 안에는 삭제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국정원 여직원의 경우 문제가 된 글을 해당 사이트에서 삭제했지만 구글 등 검색엔진에 대해서는 저장된 페이지 삭제 요청을 하지 않아 언론과 누리꾼 수사대에 꼬리를 밟혔다. 국가정보원 직원의 업무가 내국인 대상의 사이트에서 현직 대통령의 업적과 정책을 칭송하는 정치개입이었다는 게 밝혀져 국정원법 위반 논란과 함께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린 것말고도 국정원의 업무 전문성에 대한 의문도 생겨났다.

정치댓글을 단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는 문제된 이후 그 흔적도 제대로 삭제하지 못하는 어설픈 사이버 요원의 수준을 드러냈다. 삭제한 글을 검색엔진에서 사라지게 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구글쪽은 검색결과 페이지의 삭제는 해당 페이지가 삭제됐을 경우 본인 증명없이 누구나 이의 즉시 삭제를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 개인의 무지만이 아니라, 국정원 자체가 구글링과 저장된 페이지 삭제기능도 숙지하지 못하고 정치댓글을 달다가 흔적을 지우지도 못한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이 자신들이 주로 활동해온 공간의 기본적 속성도 모른 어설픔을 노출한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저장된 페이지'와 관련한 구글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를 살펴본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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