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은 음모, 청문회는 죽일놈, 5.18은 폭동?

2013. 2. 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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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장자연 편지'는 가짜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연합뉴스의 기사에 2천여 개의 댓글이 달려있는데, "정의와 진실이 보이지 않는 권력에게 패배하였다"는 비분강개(?)가 하늘을 찌른다.

'장자연 편지'는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하나는 '장자연 문건'이라고 불리는 12페이지짜리 유서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위조 판결이 내려진 271페이지짜리 장문의 편지이다. 이 두 번째 편지는 고인이 사망한지 2년 후인 2011년 3월 SBS 뉴스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보도 열흘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장 씨의 친필이 아니다"라고 이미 감식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런 가짜 편지를 만들어낸 사람을 당연한 사법절차에 따라 처벌한 것이다.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해프닝이기는 하지만 그 가짜 편지는 관계망상증(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진심으로 착각하는 증상)을 앓고 있는 정신병 환자가 쓴 것으로, SBS는 이미 경솔한 보도에 대해 사과방송까지 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정의와 진실이 패배하였다"니, 정신병이 정의이고 진실이란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하여 장자연의 처음 유서까지 가짜라는 말은 아니지만, 자세히 상황을 알아보려하지도 않고 우선 두 주먹부터 움켜쥐는 한국인들의 지나친 정의감(?)은 이참에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또한 자기에게 유리한 사실, 보고 싶은 현상만을 골라서 취하려 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발표는 절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 '편집증적인 집착'에 대해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 고 장자연 문서를 입수, 단독 보도했으나 국과수의 가짜 판명으로 오보 굴욕을 겪고 있는 SBS 8시뉴스 화면 캡처.(자료 사진)

심각한 진영 의식과 음모론

연역법과 귀납법은 논리학 강좌 첫 시간에나 배움직한 내용이니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착하다"는 가설이나 전제를 미리 세워놓고 "철수도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착할 것"이라고 유추해 나가는 사고방식이 연역적 추론이라면, "내가 아는 한국 사람인 철수, 영희, 돌쇠가 모두 착한 사람들이니, 한국 사람은 (누구나) 착하다"는 사고방식이 귀납적 추론의 한 단면이다.

연역법과 귀납법은 서로 대립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둘 중에 어떤 방식이 절대적으로 옳고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연역적인 방식이 유용할 수도 있고, 귀납적인 태도가 더욱 강조될 수도 있다. 우리가 특정한 사안을 연구할 때에 과연 어떤 추론의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좋을지, 다만 그것을 잘 선택해야 할 따름인데, 알아둘 점은 연역적인 추론의 방식은 '전제'가 틀렸을 때 상당한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은 착하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그러한 전제를 적용한 각종 유추의 결론들이 모두 어긋나 버릴 수 있고, 심지어 그러한 전제가 들어맞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현실을 왜곡하는 반(反)이성적 범죄 행위까지 서슴없이 저지를 수도 있다.

화제를 인터넷으로 돌려보자. 인터넷의 바다에는 정보가 넘쳐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똑똑해졌는가?

취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과거에 비할 바 없이 많아졌으니 더욱 더 통계 귀납적인 추론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사실은 반대다. 결론을 이미 다 세워 놓고, 그 결론을 더욱 튼실하게 만들기 위한 용도로 '근거'를 수집하는 인터넷! 그것을 통한 선전과 선동! 연역적인 추론의 가장 악랄한 변태의 도구로써 인터넷은 충분히 활용당하는 중이다.

지난 몇 년간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살펴보자. 그곳에는 이미 '결론'이 서있다. 자신과 입장이 다른 정당에서 추천을 받은 후보자라면, '그 후보 = 나쁜 놈' 정도가 아니라 '그 후보 = 나쁜 놈이 되어야 하는' 청문회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나쁜 놈'이라는 결론을 세워놓고서, 그를 나쁜 놈으로 만들기 위한 온갖 증거들을 긁어모은다. 그리하여 나쁘지 않을 사람이, 대한민국에, 과연 얼마나 될까. 후보자의 해명 같은 것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들을 필요조차 없단다. 다 변명이니까. 그놈들은 부패한 놈들이니까. 다 나쁜 놈들이니까. 다 거짓말이니까.

입장을 바꾸어, 자기 정당의 후보자가 청문회에 나섰다면? 검증의 도마 위에 올랐다면? 물론 그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사고 수순을 밟는다. 그때는 모두가 그랬으니까 …… 그게 좀 어때? 그 정도면 양반이지! 그러는 너희들은? 역시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하는 것이다.

논리와 토론의 전성시대를 만들자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그저 장난이려니 생각하고 무시해버리곤 했는데, 최근 들어 부쩍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에 들어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자신들이 취하고 싶은 증거만을 엮고 엮어서 폭동이라고 말해버리면, 세상에 모든 혁명적인 운동은 대개가 그저 그런 폭동이 되고 만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여기서 길게 논하지 않겠다.) 치고 박고 싸웠던 두 집단의 한쪽만을 집중적으로 촬영하여 스틸 컷으로 연결해 놓으면, 한쪽의 일방적인 폭력행위였다고 재구성해버리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최근 개봉한 일부 영화에서 1980년 5월 광주의 진압부대를 고의적인 학살 세력으로, 사실보다 지나치게 과장되게 전달하였던 것은 약간의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딱 그 정도의 문제 제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걸 뒤집어엎는답시고 5.18을 폭동이라고 폄훼하면서, 게다가 특정 지역을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은어를 써가며 비하하면서, 그들이 정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과연 무엇일까? 나아가 "5.18 폭동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투입되어 일으킨 소행"이라니! 크크크, 그 정도면 연역적 추론이 아니라 판타지 소설의 수준이다.

장자연으로부터 인사청문회, 5.18에 이르기까지 거의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소재들을 이리저리 건너뛰었지만 이런 문제들을 관통하는 핵심이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 그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꿰어맞추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그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해 주어도 양심적인 가책을 느끼지 않고 이성적인 회의조차 해보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는 '쟤들도 저러는데 왜 우리만 갖고 그래?'라고 오히려 눈을 부릅뜬다는 것!

'국민통합'이 중요한 시대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정부에 국민통합을 위한 제안을 하나 내놓는다. 일선 학교 교육에서 논리와 토론 수업을 대폭 강화해 나가야 한다. 그런 수업을 진행할 교사들이 상당히 좌편향 되어 있는 현실이 걱정이라면 그에 대한 예방과 보완책을 마련하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논리와 토론의 전성시대'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이성적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훈련을 시작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20~30년 앞을 내다보는 중요한 투자가 될 것이다. 심각한 진영(陣營) 논리와 계속되는 음모론을 제어해 나갈 인내심 있는 노력을 시작할 때이다.

글/곽대중 자유기고가(http://www.story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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