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개발 꿈이 빚폭탄 악몽으로" 서부이촌동 절규

변태섭기자 2013. 2. 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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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는 하나 둘씩 몰락.. 보상금마저 위태위태

우편집중국·철도공작창 등 이전

인근 상권 붕괴로 거리 을씨년

주민들 "고래싸움에 새우등" 원성

"집 경매로 넘어가 거리 나앉을 판"

식당 "하루 찌개 2, 3그릇 팔아"

사업시행자 드림허브 부도위기

'제2 용산참사' 후폭풍 우려도

"큰 욕심 안 부리고 열심히 살았는데, 어찌된 건지 빚만 남았어요. 앞으로 살아내야 할 삶의 무게가 참 버겁습니다."

가게 문을 닫은 지 벌써 한 달. 일감이 있을 때마다 막노동, 식당 설거지를 전전하며 '하루살이 인생'을 사는 조영구(가명ㆍ48)씨의 목소리는 어둡고 무거웠다.

조씨는 2006년 12월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에 66㎡ 크기 한식당을 열었다. 정육점을 운영해 모은 종자돈으로 식당을 낼 때만 해도 그는 '희망찬 미래'를 기대했다. 인근에 서울우편집중국, 용산역 철도공작창 등이 있어 장사도 제법 잘 됐다. 적지 않은 돈인 7,000만원을 권리금으로 덥석 주고 가게를 인수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건 '빛 바랜 잿빛 미래'였다.

"가게 투자비용으로 친구에게 3,000만원을 빌렸어요. 지금까지 못 갚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열심히 일해도 빚은 날로 늘었다. 지금은 8,000만원에 달한다. 친구에게 꾼 돈과 생활비 명목으로 은행에서 빌린 5,000만원이다. 가겟세도 10개월 밀렸다. 그는 "밀린 가겟세로 벌써 보증금(3,000만원)의 절반을 까먹었다"며 "가게 임대료 내고 음식 재료비, 각종 세금 내면 오히려 적자라 버티고 버티다 지난해 12월 30일 가게 문을 닫았다"고 했다.

조씨의 장밋빛 꿈이 잿빛으로 변한 건 단군 이래 최대 민자사업이라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본격화한 2009년. 총 사업비 31조원을 투입, 서부이촌동과 용산역 일대 317만㎡ 부지를 서울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개발계획이 시작되자, 사업지구에 편입된 우편집중국, 철도공작창이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 인근 상권이 급속히 무너졌다. 음식점, 부동산 등이 하나 둘 문 닫은 길은 점차 을씨년스러운 '죽은 거리'가 돼갔다.

조씨는 "하루에 된장찌개 2, 3그릇 판 게 전부인 날도 여러 번"이라며 "누가 들어와야 권리금이라도 받아서 뭐라도 해볼 텐데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아 걱정"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지지부진한 용산개발사업은 이곳 주민들의 삶에 크나큰 생채기를 냈다. 상권이 죽으면서 자영업자들은 몰락했고, 개발이익 때문에 불어난 담보가치에 기대어 무리하게 대출 받아 투자한 이들 역시 이자 부담에 억눌린 생활을 살고 있다.

서부이촌동 주민대책협의회에 따르면 이곳 2,200여 가구 중 65%가 평균 3억5,000만원의 은행 빚을 지고 있다. 10억원 이상 대출받은 고액채무자도 250여명이다.

서부이촌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김찬(45)씨는 "은행이자를 갚으려고 은행에 또 다시 빚을 내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주민들 대다수가 신용불량자 될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곳에 갖고 있는 땅 30㎡을 담보로 2009년 제2금융권에서 4억원을 빌렸다. 주 고객인 철도공작창이 떠나 일감이 없어지자 다른 곳에 철거업체를 차리려는 요량에서였다.

"사업 시행자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가 이듬해 착공될 거라며 곧 보상이 된다고 설명했어요. 토지 보상금 받으면 갚을 수 있다 싶어 대출받은 거죠."

김씨의 바람과 달리 보상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겹쳐 철거사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현재 김씨의 월수입은 50만원 수준. 하지만 매달 은행이자만 400만원이다. 공과금마저 수 차례 밀려 집의 전기, 도시가스가 끊긴 적도 있다. 2007년 빚 한 푼 없던 그는 5억원의 채무를 갖고 있다.

빚을 내 이곳에 단독주택을 샀던 장모씨 역시 800만원을 매달 은행이자로 낸다. 개인택시 등을 담보로 돈을 대출받아 겨우겨우 이자를 막고 있지만 눈앞이 막막하다. 자칫 하다간 경매로 집이 넘어갈 수도 있다.

장씨는 "경매가격은 책정된 집값의 절반 수준이라 대출금 갚기에도 부족하다"며 "빚을 다 갚지도 못한 채 집만 잃고 거리로 떠밀릴 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이 지역에선 50여채가 경매로 넘어갔다.

이상규 주민대책협의회 위원장은 "벼랑 끝에 내몰린 주민들 사이에선 철길을 막자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며 "이 상태가 계속 된다면 제2의 용산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 시행자 드림허브가 부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라 보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업 시행사 드림허브의 자본금은 현재 5억원만 남았다. 자본금 확충에 잇따라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2월 각종 세금 82억원, 3월 어음 이자 59억원을 내야 한다. 세금은 벌금을 감수하고 연체하더라도 3월 어음 이자를 막지 못하면 부도 처리된다. 드림허브 관계자는 "사업이 부도나면 3개월 이상 은행이자가 밀린 가구에겐 은?쪽에서 가차 없이 경매 통보가 갈 가능성이 높다"며 "부도 후폭풍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라고 우려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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