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법 통과 후 밤11시 강남역 가보니

중앙일보

지난 4일 밤 11시 택시기사 이인수씨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강남역으로 향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지난 4일 밤 11시. 경력 20년의 택시기사 이인수(51)씨는 경기도 용인에서 손님을 내려주기 무섭게 시속 100㎞로 내달려 20분 만에 서울 강남역에 도착했다.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는 택시의 '하루 장사'를 결정짓는 황금시간대다. 기본요금 나오는 손님이라도 걸리면 낭패다. 이씨는 "장거리를 뛰면 한 시간에 2만원 이상 벌 수 있다"며 "승차거부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루 12시간씩, 한 달에 26일 핸들을 잡는 중노동을 하고도 손에 쥐는 돈은 고작 월 140만원 남짓. 이씨는 "하루 12만원을 회사에 '사납금'으로 내야 한다"며 "장거리 손님 태울 만한 곳을 찾아 부지런히 뛰지 않으면 사납금 채우기도 버겁다"고 말했다. 벌이가 시원찮아 두 아들을 키우면서 속셈학원 한번 못 보낸 게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일하고 16만원을 벌었다. 야간반이라 주간보다는 그나마 벌이가 나은 편이다. 유류비를 제하고 이씨 몫으로 떨어진 돈은 3만원이 전부. 그는 "택시법이 통과됐으니 정부가 관리를 잘하면 기본급도 올라가고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며 막연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에 현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중에는 '택시법'에 대한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이가 많았다. 택시기사 김계헌(56)씨는 "우리한테 돌아오는 건 별로 없고 결국엔 회사 업주들 배만 불려주는 거 아니냐"고 시큰둥해했다.

 4일 밤 같은 시각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 "아저씨, 서울 시흥동이요. 2만원에 어떻게 안 돼요?"

 회사원 박선형(37)씨가 요금을 놓고 기사와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주변엔 열 대 남짓한 택시가 '빈 차'로 대기 중이었다. 2만5000원을 달라는 기사의 요구를 들어주고 겨우 택시에 탈 수 있었다. 박씨는 "승차거부하거나 미터기 대신 가격을 맘대로 올려받는 게 대중교통이냐"며 "서비스 개선 없이 혈세로 지원만 하는 것에는 반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근처에서 대학원생 이영경(29·여)씨도 20분 넘도록 친구 2명과 택시를 잡고 있었다. 5000원 정도면 갈 수 있는 청담역이 목적지지만 거리가 짧다는 이유로 하나같이 승차거부를 하는 택시들뿐이었다. 이들은 결국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장에서 만난 승차거부 단속반원은 "매일 이 시각이면 승객과 택시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다"며 "택시법이 통과됐다고 당장 이런 풍경이 없어질지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준호·김한별·고성표·김혜미·김소현 기자 < deepjoongang.co.kr >

최준호.김한별.고성표.김혜미.김소현 기자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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