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에 안전벨트를-팍팍한 서민의삶⑤]한때 잘나갔지만 퇴직 후 돈아까워 병원도 못가

최성욱 입력 2013. 1. 6. 06:38 수정 2013. 1. 6.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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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주역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수명은 늘었는데 먹고 살 길은 앞이 안보여"

【서울=뉴시스】최성욱 기자 = "아파도 웬만하면 참는 거죠. 나이 먹으니 치과니 안과니 치료받아야 할 때는 많은데 한 번 갔다하면 목돈 나갈 일이 생길까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질 않네요. 보험이라도 많이 들어놓을 걸 후회스럽기도 하고…."

서울 성동구 옥수동에 사는 김진웅(65·가명)씨의 얘기다. 김씨는 중견기업체 임원으로 일하다 5년 전 30년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 때 잘나가던 이사님에서 이제 말 그대로 동네 할아버지가 됐다.

그래도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자부했던 김씨는 막상 퇴직하고 나니 자식들 시집장가는 또 어떻게 보내야할지 한숨만 나온다. 주변 애경사 챙기는 것도 부담이지만 자식들 생각하면 이런 자리에 빠지기도 어렵다.

퇴직금의 일부는 직장을 그만둔 직후 사업에 투자했다 1년 만에 날려먹었다. 마지막까지 미련이 남아 억지로 끌고오다 오히려 손해만 봤다. 아끼고 살아 온 덕에 다행히 빚은 없지만 그렇다고 집 빼고는 가진것도 없다.

생활에 여유가 없어지면서 제일 먼저 줄인 게 병원비다. 요즘 들어 하는 일도 없는데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 최근에 앞이 잘 안 보이고 눈물도 자주 흘러 병원에 갔더니 백내장이라고 하는데 그냥 나이 먹어서 그러려니 한다.

허투로 새나가는 돈을 막아보려고 얼마 전부터는 휴대전화 요금제도 가장 저렴한 기본형으로 바꿨다. 가급적 외출을 줄이면서 꼭 나가야 할 일이 생기더라도 차는 두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남은 돈으로 아껴가며 살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언제 집을 내놔야할지도 모른다.

김씨는 "이제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앞으로 30년 간 벌어놓은 거 쓸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 돈 한 푼 쓰기가 겁난다. 그래서 뭔가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쉽지 않다. 집에서 가족들 눈치도 보이고 이러다 괜히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싶다"고 했다.

퇴직으로 내몰린 60대의 고통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소득은 끊겼는데 물가 상승으로 지출은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식들까지 부모 부양을 꺼리면서 기댈 곳이 사라졌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이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60대 이상 자살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기 시작해 2001년 3019명으로 30대 자살자 수(2546명)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60대 이상 자살자 수는 크게 늘어나면서 지금은 전 연령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최저생계비(4인 가구 기준 149만5550원) 이하로 생활하는 독거노인은 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라 절반 수준이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뿐 나머지는 적절한 정부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요즘 60대가 생활고 등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남 얘기 같지 않다"며 "우리 산업화 세대들은 한평생 죽어라 일만 했는데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고, 이제 쉬어도 되겠다 싶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씁쓸해했다.

secret@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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