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생 100만명 시대] (4) 휴학해도 답이 안보인다

엄보운 기자 2012. 12. 11.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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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해 스펙쌓기 양파처럼 끝없어.. 우린 '밥' 고민하는 불행한 세대"

경남의 한 국립대 중국학과는 전체 정원 200명 중 56명이 휴학 중이다. 졸업을 앞둔 4학년은 정원 50명 중 24명이 휴학을 하고 있다. 이 학과 4학년 동기 6명은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함께 영어와 상식을 공부한다. 대학 동기 6명이 '휴학 동기'가 돼 휴학 생활의 고락(苦樂)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휴학은 했지만, 앞날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휴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민웅(25)씨는 "휴학 안 해도 (취업) 되나요?"라고 반문했다. 김재록(25)씨는 "휴학해서 스펙 올리는 거 말고 취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웅씨는 "명문대 다니는 친구들도 여기랑 마찬가지로 휴학하는 건 불공정 경쟁이라고 우리끼리 얘기하죠"라며 "휴학해서 남보다 좀 더 준비해보려는데 이젠 모두가 다 휴학하고 스펙 쌓으니까 이길 방법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 학과에서 작년에 휴학하지 않고 졸업한 학생은 10여명이다. 김민웅씨는 "취업한 선배들은 다 휴학했어요. 그 선배보다 잘나지도 않은 제가 휴학까지 안 하면 취업은 꿈도 못 꾸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다들 휴학하니까 휴학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어요. 4학년 되면 당연히 휴학하는 분위기니까요"라고 말했다.

휴학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해, 자발적으로 휴학을 택한 이들이지만 '불안감'은 여전했다.

"아프리카 물소 떼처럼 앞서나가는 소를 따라서 뛰는 건데, 맞는 방향인지도 모르겠어요. 휴학을 하고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만, 이게 맞는 방향인지 모를 때 가장 힘들어요.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 준비하는 게 회사에서 요구하는 건지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한 학기 동안 휴학하고 스펙을 쌓아놓으면 뭐가 또 추가로 생기죠. 마치 양파속처럼 까면 깔수록 할 일이 더 생겨요. 휴학해서 스펙을 쌓는 속도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채우기에는 어림도 없으니 답답하죠." 김지만(24)씨의 말이다.

김재록씨는 "휴학한다고 뾰족한 돌파구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 막상 휴학하고 몇 달 지나면서 더 불안해졌어요"라고 말했다. 김민웅씨는 "휴학하기 전엔 휴학이 불안한 미래의 해결책으로 생각됐는데, 막상 해보면 그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죠"라면서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고, 생각보다 공부가 잘 안 되니까 그때부턴 고민이 깊어져요. 고민하다 지치면 좀 쉬고, 그러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다 보내죠"라고 말했다.

이들을 더욱 옥죄는 것은 휴학생으로서 어려움을 토로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김재록씨는 "학교에선 휴학생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라든지 휴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도 없어요. 힘에 부쳐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려 하면 막상 학교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휴학생 제외'를 내걸고 있어서 철저히 배제되거든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버지, 어머니도 이해 못 하죠. 아버지 땐 일자리가 많았다는데, 요즘 우리 세대 고민은 진짜 현실적인 거거든요. 집에서 엄마한테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말 하면, 엄마도 그런 고민 예전에 많이 했대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 들으면 되게 추상적으로 들려요. 엄마 내가 하는 고민은 그런 철학적인 게 아니야. 현실적으로 밥 벌어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거니까. 불행한 세대에 태어난 거 같아요."

휴학에 들어가는 '돈'도 문제였다. 휴학 기간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교재도 사야 하는데 필요한 돈은 고스란히 부모에게 손을 벌려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재록씨는 "휴학하고 처음 두 달간은 용돈을 받아 썼지만, 집안사정 뻔히 아는데, 계속 그럴 수 없어서 대형마트 카트 정리 보조 일로 돈을 벌었죠"라고 말했다. "시간이 필요해 휴학한 건데, 휴학에 필요한 돈을 구하려면 또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이 다 가요. 그럼 또 공부가 안 되죠." 김민웅씨는 "휴학 기간을 자기가 원하는 걸로 채우려면 그게 다 돈이에요. 돈 없이 시간을 채울 수는 없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휴학뿐"이라고 말했다. 김재록씨는 "결국 휴학하고 최대한 하는 데까지 하는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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