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정락인 기자 2012. 12. 1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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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어린 새싹들이 소리 없이 울고 있다. 불 꺼진 방 안에서, 캄캄한 이불 속에서, 인적 없는 옥상에서, 텅 빈 교실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어떻게 우리 아빠가 나한테 이럴 수가…'라며 수십 번을 되묻지만 답이 없다. 수없이 절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해도 내 편이 없는 것이 서글프다. 세상에 꺼내놓자니 부끄럽고 치욕스럽다. 10대 소녀들이 감당하기에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지만 가혹한 현실이다.

'친족 성폭행' 사건이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친아버지가, 의붓아버지가, 오빠가, 삼촌이, 여기에 할아버지까지 손녀를 짓밟는다. 딸을 짓밟은 아버지는 더 이상 보호자가 아니다. 아버지의 탈을 쓴 '악마'이자 '짐승'일 뿐이다. 소녀들의 신음소리는 처절하다 못해 분노를 부른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한 여고생은 한 상담센터에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아빠가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한다"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거부하면 때리고, 죽인다며 협박하고, 그래서 저항하지 못한 채 당한다고 했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여고생도 아버지에게 2년간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4년 전에 이혼했고, 아버지는 지금의 새엄마와 재혼했다. 아버지의 끔찍한 성폭행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 여고생은 그날 평소처럼 자신의 방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과일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오순도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런데 과일을 다 먹고 난 후 아버지의 태도가 돌변했다. 딸을 안방으로 끌고 가다시피 했다. 그리고는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 '말하면 죽여 버린다'라며 협박까지 일삼았다.

그렇게 2년 동안 딸은 아버지의 성노리개가 되었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친절하게 대한다. 그러다 보니 새엄마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신고하려고 해도 아버지가 무서워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딸 성폭행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올해 들어 아버지가 친딸을 성폭행한 사건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해보니 언론에 보도된 것만 30여 건에 이르렀다. 여기에 의붓딸 성폭행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훨씬 올라간다.

어린 딸 앞에서 짐승이 된 아버지들, 대체 누가 이들을 악마로 만든 것일까.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이라며 공분한다. 하지만 '인면수심'의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대체 그들은 왜 딸을 성적인 먹잇감으로 삼은 것일까.

올해 발생한 친딸 성폭행 사건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짐승 아버지'들의 연령대로는 40대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50대, 30대 순이었다. 이것은 피해자들의 연령대를 짐작하게 한다. 아버지에게 최초로 성폭행을 당한 시점에서 '초등학생 때'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피해자 30명 중 20여 명이 여기에 속했다. 아직 성(性)에 대한 인지 능력이 없을 때부터 아버지의 성폭행에 시달렸다는 것이 된다.

지난 2월 부산에서는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50대 남자가 경찰에 입건되었다. 이 남자는 초등학생 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한 후에는 전자발찌를 착용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또다시 딸을 성폭행했다가 철창 신세를 졌다.

5개월 뒤인 7월 서울 강북경찰서에 검거된 40대 남자는 노골적으로 어린 두 딸을 범했다. 이 남자는 2007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이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몸을 더듬으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니까 괜찮다"라며 성폭행을 했다. 딸은 아버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 채 한 시간이 넘도록 몸을 유린당했다. 이 비정한 아버지의 몹쓸 짓은 무려 4년 동안 이어졌다. 성폭행 장소도 방 안, 베란다, 옥상 등을 가리지 않았다.

지난 9월7일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 모임 '발자국' 회원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상습적이고 변태적으로 진화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성적으로 민감한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과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딸도 예외가 아니었다. 또, 한번 시작된 성폭행은 피해자의 나이가 들어도 멈추지 않았다. 이처럼 '친딸 성폭행'은 마약과도 같다.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제어가 되지 않았다. 올해 경찰에 입건된 친딸 성폭행범 모두가 상습적으로 범행을 저질러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아버지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면 "잘못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라는 말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어느 순간 아버지는 또 '성폭행범'으로 돌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성폭행범들의 범행 수법도 점점 더 대담해졌다. 범행 횟수가 늘어날수록 강도가 세졌다. 처음에는 성추행을 했다가도 어느새 직접 성관계를 맺는 단계로 나아간다. 성폭행하기 전에 포르노 영상을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 하기를 강요하거나 성 보조 기구를 이용한 변태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딸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성노리개'를 키우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7월 서울 강서경찰서는 2010년부터 두 딸을 성폭행한 김 아무개씨(46)를 붙잡았다. 김씨는 딸을 성폭행하기 전 방에 성인용 비디오를 틀어놓고 딸의 몸을 쓰다듬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 김씨는 이혼한 아내 대신 딸들을 대상으로 욕구를 채웠다.

같은 달에 부산지방법원은 친딸 성폭행범인 김 아무개씨(38)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 2010년 당시 13세이던 딸을 성폭행한 후 지속적으로 성을 유린했다. 김씨의 휴대전화와 컴퓨터에서는 근친상간을 다룬 영상 등 아동 음란물이 다수 발견되었다. 그는 변태 성욕 때문에 아내와 이혼한 후 딸을 대상으로 한 패륜을 저질렀다.

친족 성폭행은 전염성이 강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부전자전'이 통했다. 아버지가 성폭행을 저지르면 아들과 친인척들도 따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친족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제주에서는 친딸을 성폭행한 아버지에게 징역형을, 동생인 피해자를 다시 성추행한 오빠에게는 소년부 송치 명령을 내렸다. 아버지는 아들이 딸을 성추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방치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딸은 신고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11월 충북 괴산경찰서는 지적장애 1급인 딸(14)을 성폭행한 아버지(54)와 큰아버지(55), 작은아버지(50) 등 세 명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딸이자 조카인 피해자를 2009년부터 올해 1월까지 11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아버지 형제들도 서로 성폭행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묵인했다.

심지어 아빠와 엄마가 함께 미성년자인 딸을 성폭행한 '최악의 부모'도 있었다. 이처럼 딸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이유도 여러 가지이다. 이혼, 가정불화, 음란물 중독, 성(性)장애 등일 때 친딸을 성 욕구를 해소하는 창구로 이용했다. 어린아이들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는 '소아 기호증'을 보이는 친족 성폭행범도 있었다.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후 이웃집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곽 아무개씨의 수배 전단지(왼쪽)와 자살한 용의자의 시신(오른쪽). ⓒ 연합뉴스

지금까지 드러난 범죄는 빙산의 일각

사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친족 성폭행의 특성상 외부로 드러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아버지의 성 노예로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성폭력상담소 사이트나 각종 상담코너에는 친아버지나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글이 적지 않다.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방적으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혼자서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일상의 삶은 무너지고 대인 관계 등도 원만하지 못하다.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올해 25세인 한 여성은 성인이 된 후에 아버지의 성추행이 시작되었다. 그는 인터넷 상담 코너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냥 혼자 묵혀두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술이 만취해 오셔서는 혼자 집에 있는 저를 불러다 앉히고 제 가슴에 손을 대고 주무르시는 겁니다. "왜 이러냐?"라며 화를 냈더니, "아빤데 딸 좀 만지는 게 어떠냐"라고 합니다.

당시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후에도 아빠라는 이유로 가슴을 만지는 성추행 시도가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가족들에게 털어놓았지만 민감한 부분이라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당신이 잘못했다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했지만, 단둘이 있을 때에는 은근히 스킨십을 시도하였습니다. 현재도 둘이 있을 때는 입에다 뽀뽀하는 등의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일을 돌이켜봤자 소용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아 혼자 집에 있는 것이 극도로 무섭고, 아버지 연배의 남자들만 보면 전부 변태같이 느껴지고 가까이 있는 것이 무서워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현재 투병 중인 어머니가 계신데 병원에 일절 발걸음도 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언제나 당당하신 분, 가엾은 이분에게 형벌을 내릴 수는 없을까요?'

이 여성은 아버지의 거듭된 성추행으로 인해 삶이 통째로 무너졌다. 아버지 또래의 남성들만 보아도 같은 사람으로 치부하게 되고, 또 경계심까지 들 정도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 되고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아버지에 대한 격리와 처벌이다.

기자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고통받고 있을 성폭행 피해자를 만나보기로 했다. 이들을 통해 '아버지 성폭행범'의 실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곧 난관에 부딪혔다. 인터넷 상담센터, 카페, 성폭력 상담센터 등을 통해 피해자와 연결을 시도했으나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글을 남기거나 쪽지를 남겼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가정 성폭행을 방치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 199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보은·김진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보은씨는 의붓아버지로부터 12년간 성폭행을 당했다. 남자친구가 생겼어도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은 그칠 줄을 몰랐다.

급기야 김보은씨가 남자친구와 함께 '성폭행을 멈추어달라'라고 하소연했으나 소용없었다. 오히려 의붓아버지는 '죽이겠다'라며 폭언과 협박을 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결국 친족 성폭행이 살인을 부르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과거에 묻힌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제2·제3의 김보은·김진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피해자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상담소에 따르면, 피해자는 가해자와 빨리 분리시켜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가 가출한 후 방황하지 않도록 쉼터 등과 연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자 대다수는 가출 이후의 삶이 막막해서 피해를 참고 견디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에는 어렸을 때 삼촌 등 친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엄마 등에게 털어놓았지만 외면받는 일이 있다. 그러면 평생 침묵하며 상처를 안은 채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때문에 가족들은 평소 성(性)과 관련된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언제든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친딸을 성폭행 대상으로 삼는 이유

모든 아버지가 딸을 성(性) 먹잇감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어린 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는 일종의 '병'을 앓고 있다. 특히 지나칠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애정 결핍인 경우가 많다.

아내의 가출과 이혼, 가정불화, 실직 등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경우 아이를 성적으로 정복해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성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을 때에도 딸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은 피해 아동들에게 자신의 범행을 폭로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면서 상습적인 범행을 저지른다. 가해자들은 딸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들 대다수는 아주 어린 나이에 성폭행을 당한다. 때문에 아버지의 성폭행이 시작될 때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한다.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어도 아버지의 성폭행에 반항하거나 주변에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딸을 성폭행한 아버지들은 '엄마에게 말하면 죽인다' '누가 알면 우리 가정은 끝장난다' 등의 협박을 한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가족 붕괴'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게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게 된다.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어도 아버지의 성폭행에 침묵하는 것은 이러한 두려움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런 것을 십분 이용해서 자신의 범행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간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범행을 알면서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침묵하는 엄마들도 있다. 오히려 딸이 도움을 요청하면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한다. 그러면 딸은 어머니나 가족들의 묵인 아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가해자가 학력이 높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은 가해자의 이중적 모습을 알기가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에 세상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동안에는 친족, 특히 아버지의 성폭력에 대해 그저 당하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피해자들이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성폭력 처벌이 강화되고 친고죄가 폐지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해진 것도 이유이다.

여기에다 성폭력상담소 등 각종 단체의 상담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피해자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피해자들에게 세상 문은 여전히 좁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에 변화가 있어야만 가정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친족 성폭행'을 막을 수 있다.

정락인 기자 / freedom@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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