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30일, 대한민국 검찰이 무너진 날

정제혁 기자 입력 2012. 12. 1. 00:01 수정 2012. 12. 1.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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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검찰총장이 검사들의 잇단 추문과 검찰 분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30일 불명예 퇴진했다. 한 총장에게 반기를 들어 몰아내는 역할을 주도한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도 사퇴할 뜻을 내비쳤다. 대검 간부들과 법무부는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승자는 없었다. 검찰조직 전체가 이전투구식 '검란(檢亂)'의 패자로 남았다.

한 총장은 이날 오전 대검 청사에서 사퇴를 발표했다. 그는 "최근 검찰에서 부장검사 억대 뇌물사건과 피의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하는 등 차마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러운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검찰총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한 총장은 당초 이날 오후 대검 중수부 폐지가 포함된 검찰개혁안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재신임 여부를 묻는 조건부 사표를 낼 예정이었으나 돌연 취소했다. 한 총장은 "밤새 고민하다 결국 깨끗이 사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누를 안 끼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총장의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 이로써 한 총장은 취임 1년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퇴임한 11번째 검찰총장으로 남게 됐다.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러모로 송구하다. 감찰 문제가 종결되는 대로 공직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감찰이 끝나는 대로 사표를 제출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한 총장의 지시를 받은 대검 감찰본부는 지난 28일 '9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김광준 부장검사에게 언론대응 방안을 조언한 의혹이 있다'며 최 중수부장에 대한 공개 감찰에 착수했다. 최 부장은 그러나 "승복할 수 없다"고 정면으로 맞서면서 사상 초유의 '검란'으로 번졌다.

대검 간부들은 이날 "검찰 내부의 혼란으로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앞으로 자숙하고, 또 자숙하면서 뼈저린 반성을 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도 '검찰총장 사퇴에 대한 입장'을 내고 "최근 검사 비리에서 검찰총장의 사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사태에 대해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54명과 86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총체적인 부정·비리와 난맥상은 단순히 검찰총장 한 명의 사퇴만으로 무마될 일이 결코 아니다"라며 "무소불위인 검찰 권력을 분산시키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참여와 통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제혁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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