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유턴' 목숨 걸고 넘어왔다 울며 돌아간다

일요신문

[일요신문] 탈북자들의 '탈남'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탈북자 박인숙 씨가 재입북을 한 것을 시작으로 6월에는 전영철 씨, 최근에는 김광혁 씨 부부가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광혁 씨 부부가 재입북을 선택한 배경에는 '북한 측에서 공작을 벌였다'라는 의혹이 있지만, 남한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게 대부분의 추측이다. 실제로 기자와 만난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김광혁 씨를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탈북자들이 재입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나원에서 한국에 대해 교육받는 탈북자 출신 교육생들. 사진공동취재단

김광혁 씨의 입북 이유에 대해 결핵을 앓고 있던 김 씨가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지난 1월 탈북자 82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가 넘는 6 500여 명이 월평균 소득이 150만 원 이하라고 답했다. 심지어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 안 되는 이들도 2500여 명에 달했다. 기자와 만난 탈북자 A 씨(43)는 "남한에 와서 초기에 받는 정착금은 탈북을 도와준 브로커들에게 거의 쓰기 때문에 남는 돈이 없다"며 "나 같은 경우 브로커에게 쓴 돈이 1500만 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현재 탈북자 지원제도는 탈북자가 남한에 들어오면 1인당 정착 기본금 600만 원을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주고 주거지원금으로 1300만 원을 준다. 이밖에 지원은 취업과 관련한 지원금이 대부분이다. 취업을 준비할 경우 취업훈련장려금 120만 원, 취업에 성공할 경우 고용지원금으로 기업에 월급 절반을 지원해 주는 식이다. A 씨는 "취업훈련장려금은 직업훈련을 모두 이수해야 지급되기 때문에 사정이 생길 경우 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업훈련장려금은 직업훈련을 500시간 이수해야만 지급되어 혜택을 받는 탈북자 비율이 10명 당 2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다.

2010년에 탈북한 A 씨는 북한에서 넉넉하게 사는 축에 속했다. A 씨가 탈북한 이유는 가정형편보다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였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북한보다 남한이 훨씬 발전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중국을 거쳐 어렵게 온 남한 사회는 결코 녹록치 않았다.

일단 취업 자체가 쉽지 않았다. 지게차 운전을 하는 업체에 가더라도 운전 실력과 관계없이 "말투가 왜 그러느냐"며 탈락시키기 일쑤였다. A 씨는 "탈북자 출신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며 "비정규직도 이렇게 취업하기 어려운데 정규직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취업이 어렵기는 대학을 졸업한 탈북자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을 졸업한 B 씨는 지금까지 30여 곳의 기업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면접 때 받는 질문은 "거기(북한)보다 여기가 좋죠?", "탈북자 출신인데 이곳을 지원한 이유는 무엇이냐" 등 실력과 관계없는 출신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B 씨는 "직무적성 시험은 거의 붙는데 면접에서는 항상 떨어지는 이유가 탈북자라는 꼬리표 때문인 것 같다"면서 "출신보다는 실력에 더 비중을 두는 풍토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취업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뚫어도 탈북자를 보는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A 씨가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군복을 만드는 한 업체였다. 아내와 함께 반나절이 걸리는 머나먼 길을 출퇴근했다. 하루 일당은 A 씨가 4만 5000원, 아내가 3만 5000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을 하던 한국 청년들의 일당은 6만 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A 씨는 "일도 우리 부부가 오래하고 훨씬 많이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탈북자 출신이라 무시하나 싶어 분통이 터져 일을 당장 그만뒀다"고 말했다.

이후에 취업한 페인트칠 업체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방을 다니며 페인트를 칠하던 A 씨에게 사장은 자금 사정으로 임금을 못 준다며 버텼다. 임금을 달라고 따지는 A 씨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억울했던 A 씨는 변호사와 경찰서를 찾아다녔다. 경찰의 답변은 노동부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근로감독관에 온갖 사정을 말하고 사건을 접수하니 한 달 후에 사장과 겨우 대면할 수 있었다. 당시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던 A 씨에게 사장은 40만 원을 들고 왔다. A 씨가 받아야 할 금액은 67만 원이었지만 몸도 마음도 지친 A 씨는 40만 원을 받고 일을 마무리지었다.

A 씨는 현재 간암을 앓고 있다. 국정원에 있을 때 발병했던 B형 간염이 암으로 발전한 것이다. A 씨는 "탈북자들 대부분은 병이 하나씩 있을 것"이라며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은 있는 대로 하니 어쩔 수 없이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A 씨의 가장 큰 고민은 생활비를 벌지 못한다는 점이다. 몸이 안 좋다보니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만치 않은 치료비에 빚까지 진 A 씨의 가정은 낭떠러지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한 달 전부터 아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A 씨는 "탈북 여성들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걸 창피하게만 생각했지 막상 내 일이 될 줄 알았겠느냐"며 "아내는 매일 울면서 다니는데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올해 들어 연이어 일어난 탈북자들의 재입북과 관련해서는 탈북자들 대부분은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0년에 탈북한 C 씨(여·22)는 "언론에 나왔던 대로 북한이 사주했다기보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을 것 같다"며 "기사를 보다가 '빨갱이는 돌아가라', '배신자' 같이 김광혁 씨 부부를 욕하는 댓글을 볼 때는 화가 났다"고 말했다.

탈북자 A 씨와 B 씨는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한두 번 드는 게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향에 돌아가면 알고 지낸 이웃들이나 친척들이 힘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A 씨는 "입북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이민가는 탈북자가 주변에 3명이나 된다"며 "캐나다로 이민 간 지인이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이민을 간 탈북자는 42명이지만 위장 망명이나 난민 신청을 통해 남한을 빠져나간 탈북자들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숫자가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탈북자 시민단체 대표는 "탈북자들은 신분 노출을 꺼려하고 정부에서도 모든 탈북자를 세세히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탈북자들의 '탈출'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2005년에 탈북한 D 씨(35)는 "어차피 북한에서 사나 남한에서 사나 어려운 것은 똑같으니 고향에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탈북자가 많다"며 "입북을 선택하는 탈북자는 또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B 씨는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세계 1위인데, 탈북자들은 이중에서도 자살률이 3배에 이른다"며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 질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인턴기자 kulkin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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