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명물 호떡집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한국일보

14일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입구에 중구청 노점단속반 4명이 떴다. 이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시장 초입 구석에 자리 잡은 야채호떡 노점. 하루 전인 13일 오후에도 단속반의 방문이 있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주인 이길자(58)씨는 "수레를 수거해 가겠다"는 말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10분쯤 지났을까. 단속반 트럭과 함께 사라진 노점 빈 자리에는 새벽부터 준비한 수백명 분의 야채 소만 덩그러니 남았다.

상인들과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남대문 시장 일대에서 한 평 남짓한 이 '야채호떡집'을 모르는 이는 없다. 단돈 1,000원에 각종 야채를 듬뿍 담은 야채 호떡은 달지 않고 담백해 간식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입 소문을 타면서 노점 주변은 호떡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매스컴에 등장하고, 외국 가이드 북에도 소개되면서 남녀노소 국적을 망라해 30분을 기다려서라도 꼭 사 먹는 명물이 됐다. 전체 손님의 60%가 외국인 관광객이고 입맛이 딱 맞는지 일본인 관광객이 그중의 절반을 차지한다.

↑ 야채호떡 노점 바로 옆의 시중 은행 365코너에 붙어 있는 '호떡 반입 금지' 경고판. 은행 측은 "은행 고객들의 민원으로 경고판을 부착했다"고 밝혔다.

↑ 서울 남대문시장의 명물인 야채호떡을 먹기 위해 손님들이 노점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이 야채호떡 노점은 주변 상인의 민원에 따른 구청의 단속으로 14일 철거됐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assembler'

요즘 이 야채호떡 노점이 남대문 시장 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이날 구청 단속반이 뜬 것도 인근 상점 주인들이 불법과 불편을 이유로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남대문 시장 주변 인도에 늘어선 야채 호떡 가게는 3곳이 있지만 이 중 노점은 이씨 가게가 유일하다. 구청 직원들이 최근 한달 동안 이 노점만 대상으로 7차례 단속을 나왔다. 이 자리에서 영업을 한 3년 동안 두 번 정도 단속반이 가스통을 들고가 영업을 못하게 한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지속적인 단속과 함께 철거를 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구청을 상대로 한 주변 상인들의 민원과 압박이 심하다는 얘기다.

남대문에서 노점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자리를 잡아 든든한 생계 벌이로 키워낸 주인 이씨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주변 상인과 행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줄을 관리하는 사람을 따로 둘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한여름에는 손등에 땀띠가 나고 한겨울에는 꽁꽁 얼어가며 장사를 해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 어디로 가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이런 이씨에게 중구청 노점단속반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노점' 자체가 도로법상 불법이기 때문에 아무리 '남대문 명물'이라 해도 민원이 접수된 이상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청 관계자는 "'무단으로 인도를 점거하고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돈을 벌고 있다'며 특정 노점의 단속을 요구하는 민원이 접수되면 규정에 따라 집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시장 노점이 한두 군데도 아닌데 유독 우리 호떡집에 손님이 몰린다는 이유로 지목돼 철거를 당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며 "단골 손님들에게 '철거 반대' 서명이라도 받을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구청에 과태료를 내고 수레를 찾아올 수 있는 1주일 뒤 영업을 재개할 생각이다.

상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남대문시장 입구에서 10년 동안 노점을 해 온 김연자(73)씨는 "남의 장사 잘되는 걸 시기하는 일부 삐딱한 사람들 때문 아니겠느냐. 수백년 된 전통 시장에서 불법이라고 무조건 노점을 없앤다는 게 말이 되냐"며 안타까워했다. 반면 인근에서 30년 동안 상점을 운영해 온 음식점 주인 김모(68)씨는 "시장 입구라 안 그래도 혼잡한데 줄이 길어 인도를 점거해 지나다닐 때 불편했던 게 사실"이라며 "불황에도 비싼 임대료를 내며 고생하는 상인들 눈에는 임대료 한 푼 안내고 손님몰이에만 급급한 일부 노점들의 행태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대문 상인회 관계자는 "시장 노점상인들과 임대 상인들 간에 암묵적으로 존재했던 해묵은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상호간의 조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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